17주 5일
오늘의 양식
Antipas 2018-08-31 , 조회 (504)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레 14:8-9 정결하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옷을 빨고 털을 모두 민 다음 물로 목욕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정결하게 된다. 그런 후라야 그는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천막 밖에서 칠 일 동안 머물러야 한다. 칠 일째 되는 날에 그는 다시 털을 모두 밀어야 한다. 그는 머리털과 턱수염과 눈썹까지 모든 털을 밀어야 한다. 그런 다음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는 정결하게 된다.

“정결하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옷을 빨고 털을 모두 민 다음 물로 목욕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정결하게 된다.”(레 14:8상) 이것은 한 면에서 정결하게 되려고 하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체험해야 하며, 또 다른 면에서 그에게 자신의 옛 생활과 타고난 생명에 속한 모든 것을 처리하고 끊어 버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레위기 라이프 스타디, 42장, 424쪽)

오늘의 읽을 말씀
레위기 14장 8절 하반절 말씀은 정결하게 되려고 하는 죄인이 아직은 형제들과의 교통을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는 깨어서 기다려야 하며 더 처리를 받아야 한다. 나병 환자는 그의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목욕한 후에도 아직은 기다려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하며 더 처리를 받아야 한다. … 사탄에게서 온 우리의 죄, 즉 우리의 나병, 우리의 거역을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엄중한 문제이다. 죄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죄를 느슨하거나 가볍거나 부주의하게 처리해서는 안된다.(레위기 라이프 스타디, 42장, 425쪽)
나병 환자는 ‘털을 모두 밀고 물로 목욕을 해야 정결하게 되었다’(레 14:9). 털은 사람의 몸에서 자라나는 것으로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어려움들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털을 민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자아의 어려움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를 처리하는 십자가의 일이다. 사람이 십자가의 처리를 받은 다음에는 그 사람 전체가 실지적으로 정결하게 된다. 이러한 처리는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철저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계속 반복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여러 종류의 털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머리털은 사람의 영광을 상징하고, 턱수염은 사람의 존귀를 나타내며, 눈썹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온몸의 털은 사람의 타고난 힘을 나타낸다. 모든 사람은 자랑할 만한 어떤 부분들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혈통을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교육을, 어떤 사람은 자신의 미덕들을, 어떤 사람은 주님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자랑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며 과시할 만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이것을 머리털로 예표했다. 더욱이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나 가문의 배경을 존귀하게 여긴다. 그들은 항상 남들보다 높다는 우월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이 턱수염이다. 또한 사람은 어느 정도의 타고난 아름다움, 다시 말하면 선천적으로 장점과 강점을 갖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출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눈썹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으로서 우리는 타고난 힘, 천연적인 방법과 의견으로 가득하여, 자신이 주님을 위해 이런저런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우리의 온몸에 매우 긴털이 있으며 이것을 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외적인 오염이 아니라 타고난 출생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외적인 오염은 다만 물로 씻기만 하면 되지만, 우리 자신의 타고난 문제는 십자가의 처리를 의미하는 삭도로 밀어야 한다. 이러한 처리는 깊고 철저하여, 우리 속에 상처를 주고 많은 고통을 당하게 한다.(생명의 체험(하), 18-19쪽)
나병 환자가 칠 일 동안 기다리고 지켜본 후에 다시 한번 온몸의 털을 밀고 옷을 빨고 목욕을 하는 것(레 14:9)은, 정결하게 되려고 하는 죄인이 그의 타고난 생명과 일상의 행동의 각 부분을 처리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와 죄가 가득한 자아를 구체적이고 철저하며 절대적인 방식으로 진지하게 처리할 때 우리가 정결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레 14:9 각주 2)
추가로 읽을 말씀: 생명의 체험(하),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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