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정하신 길 - 46(2018.11.25)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8-11-23 , 조회 (30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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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하나님의 정하신 길 - 46

기도-12

기도의 목적-A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임

   어떤 기도이든지 참되면서 하나님을 만질 수 있는 기도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있다. 한 면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지고 하나님을 접촉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신 안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면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서 표현되시도록 하여 하나님 앞에서 참된 기도를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에 대해 볼 것인데, 왜냐하면 참된 기도에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두 방면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은 사람의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도의 준비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의 목적을 완성하는가를 볼 것이다. 
   기도할 수 있는 사람, 참된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흡수하고 하나님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여 함께 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통역하는 형제와 강단에 섰다고 하자. 내가 말을 하면 그는 통역을 함으로써 우리 두 사람은 이렇게 동역, 즉 함께 일하는 것이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는 통역을 할 수가 없다. 그가 통역을 하지 않으면 나 역시 더 말할 수 없다. 우리 두 사람은 이렇게 맞장구를 치듯이 한 가지 일을 함께 한다. 이것이 바로 동역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메시지를 전하고 동역하는 것의 예는 동역하고 협력하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 강단에서 두 사람의 상호 작용은 동역하고 협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어떤 때는 통역을 하는 형제가 내 말을 통역할 때, 서로가 잘 협력하여 두 사람이 완벽하게 일치될 정도이다. 내가 몸을 흔들면 그도 통역하면서 그렇게 흔든다.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대로 그도 손가락을 움직이고, 내 목소리가 높아지면 그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내 말이 느려지면 그의 말도 느려지고, 내 태도가 엄숙해지면 그의 태도도 엄숙해진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면 그도 그 모습을 따라 한다.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여 사람들에게 하나의 완전한 협력과 동역을 보여 준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도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협력하고 동역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기도를 어떤 일을 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확실히 그런 면도 있지만, 실지로는 기도 그 자체가 일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몇몇의 성경 구절은 하나의 원칙을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바로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며,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도 할 일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땅에서 어떤 일을 하시거나 한 무리의 사람들 또한 특정한 사람에게 일하시려면, 그분은 반드시 먼저 그분과 동역하고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할 한 무리의 사람들 또는 적어도 한 사람을 얻으셔야 했다. 만일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할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은 동역할 사람이 없으신 것이며, 그 일 또한 하실 수 없다. 사람이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사람의 기도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같고, 하나님의 일은 통역을 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어느 단계까지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단계까지 일하신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을 그 사람에게서 일하신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다. 사람이 기도한 대로 하나님은 이루신다. 이것이 기도의 큰 원칙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일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시려면 우리가 기도한 만큼 일하신다. 우리가 어떤 일을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신다. 마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일을 이끌어 오고,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기도를 따르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오늘 하나님의 일이 부족함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늘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것도 오늘 교회 안에서 이 일을 위해 기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사람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볍게 일하신 것은 사람이 무거운 부담을 가지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적게 일하시는 것은 사람이 기도를 충분히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코 하나님의 일이 먼저이고 우리의 기도는 그다음이라고 여기지 말라. 그렇지 않다. 기도가 우선이고 하나님의 일이 그 뒤를 따른다. 열쇠는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신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신다. 
   기도는 이처럼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지고 받아들이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도는 참된 기도라고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만들 수 있는 기도가 아니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질 수 없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다면, 그 기도는 당신의 표현이지 하나님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결국 당신이 기도해도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으시고, 당신이 하나님께서 일해 주시기를 원해도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시므로 효과가 없는 기도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당신의 기도에 따라 일하시고 당신이 기도한 만큼 하나님께서 당신을 따라 일해 주시기를 바란다면, 당신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지고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하며 더욱 하나님을 표현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당신에게서 나오는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표현이다. 당신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기도하시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을 입고 기도하시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당신이 하나님과 동역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이럴 때 당신이 어디까지 기도하든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일하신다. 따라서 참된 기도는 하나님께서 따라오시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당신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따라오시도록 하지 않는 기도라면, 그 기도는 참된 기도가 아니며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예증

   이사야 62장 6절과 7절에서 여호와는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 찬송을 받기까지 일하시려면, 먼저 그분은 그 위에 파수꾼을 세워 그가 이 일을 위하여 주야로 쉬지 않고 여호와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쉬지 않고 기도하면, 여호와를 쉬지 않고 일하시게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원칙을 보는데, 만일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없고, 사람이 쉬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려면, 사람이 기도함으로 그분과 동역하고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사야서 45장 11절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일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명령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명령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주인이고 하나님이 종인 것 같다. 보통은 항상 주인이 앞서 명령하고 종은 뒤에서 명령을 따라 일한다. 주인이 종에게 명령하면 종이 와서 일을 하고, 주인의 명령이 없으면 종은 할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기도 안에서 우리의 위치는 능동적이고 하나님의 위치는 피동적이다. 좋은 기도, 높은 수준의 기도는 모두 하나님께 명령하는 기도이다. 당신이 하나님께 어떤 일을 하시라고 하면, 그분은 그 일을 하신다. 당신이 그분께 어떻게 하시라고 하면, 그분은 그렇게 하신다. 
   그러므로 여기에 한 가지 크나큰 영적인 원칙이 있는데 우리의 기도가 앞서고 하나님의 일이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이다. 기도할 때 우리는 주도적이어야 하며, 그럴 때 하나님의 일은 그것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도의 위치가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 동역하고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는 것이다. 이 동역과 협력이 어떤 단계까지 이르다 보면 능동적으로 하나님께 어떤 일을 성취하시도록 하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당신이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것이다. 당신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명령하고 분부를 내리는 것과 동등하다.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것은 당신의 명령과 분부를 들으시는 것과 같다. 당신이 명령하는 대로 하나님은 들으신다. 
   에스겔서 22장 30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황폐함 가운데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했으나, 그들 가운데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사람을 찾지 못하셔서, 하나님은 손쓰실 도리가 없으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집회 장소에 통역하는 형제가 있어도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다만 그곳에서 누군가 일어나 말하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비록 집회 장소에 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일어나서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통역을 하는 사람은 통역할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해도, 그분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분 앞에서 그들을 위하여 무너진 곳을 막아서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사람을 찾지 못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일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기도하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하실 수 없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일하시려면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절대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분께 간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늘 가지고 있는 잘못된 관념 한 가지는 하나님은 원래 교회에게 은혜를 베푸실 뜻이 없으셨는데, 우리가 그분 앞에서 간절히 구하였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원래부터 교회의 상태를 알고 계셨고 교회를 축복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없고 이 일에서 하나님과 동역하여 그분을 위하여 선주자가 되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은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반드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어나거나 혹은 적어도 한 사람이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호소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길을 열고 인도하는 이가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실 수 있다. 마치 이곳에서 누군가가 말을 하기 시작해야 통역하는 사람이 비로소 통역할 것이 있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일단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도 할 일이 있으시다. 사람의 기도가 하나님의 일을 이끄는 선주자이다. 
   다니엘서 9장 3절부터 4절까지는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이라고 말한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일을 위해 기도했다. 다니엘이 실지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과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하여 알고 있었고, 또 하나님께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도록 허락해 드렸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분량에 대한, 그 중점은 그가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있지 않고, 그가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있다. 그가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을 만지고 하나님을 표현했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기도였다. 
   다니엘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동역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관심하고 하나님을 접촉했다. 그가 하나님 안에 살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사시도록 했다. 그는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땅이 크게 동요하고 하나님께서 땅에서 크게 움직이실 때, 다니엘은 하나님과 동역하여 하나님의 표현이 되고 하나님께 협력해 드릴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칠십 년 동안 황폐한 가운데 있다가 칠십 년의 기간이 다 찰 때 하나님께서 포로 되었던 땅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재건하게 하실 것을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이 뜻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시려는 것을 알고 이 일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는 땅 위에 하나님의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을 알고서, 하나님의 표현이 되고 하나님과 동역하여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래서 그가 기도한 만큼 하나님께서 일하셨고, 그가 기도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기도를 이루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귀환은 다니엘의 기도의 결과였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동역이고, 하나님의 일을 인도한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이끌어 온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길을 연 것이다. 
   땅에서의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기도의 동역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언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라고 말했다. 사무엘의 말은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거절할지라도 땅 위에 그 혼자 남아 하나님을 위하여 살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나실인으로 줄곧 하나님 앞에 살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땅에서 그는 하나님의 동역자임이 틀림없었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일하고자 하셔도 시작조차 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하나님께 손실을 입게 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출애굽기를 읽고서, 하나님은 이집트에 있던 타락한 이스라엘 자손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거절하셨는데, 어느 날 그들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압박을 당하게 되자 하나님께 애원했고, 그제서야 하나님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그렇지 않다. 출애굽기 3장 7절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간청하지 않고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간청과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게 한 단초(端初)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려고 하셨지만, 그들의 애원과 기도가 필요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가 바로 하나님의 일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셨다.(기도의 의미와 목적, 53-63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 기도의 부담
1. 만명의 다음세대 제사장들을 얻도록
   (4) 열린 가정들과 차상위봉사자들이 다음세대를 목양하도록
2. 2018년 부산교회 봉사 방향을 위하여
   (1) 진리 추구(회복역 성경)
   (2) 활력그룹 실행(소그룹별 1개 이상 산출)
   (3) 지역 실행 강화
3. 2018년 부산교회 소그룹별 목표를 위하여
   (1) 아침 부흥 80% 도달
      - 11월 세째 주 : 78%
   (2) 주중 복음실행 30% 도달
      - 11월 셋째 주  : 14%
   (3) 침례인수는 주일 평균인수의 30% 도달
      - 11월 셋째 주 : 6%(현재 42명)

■ 성도들 소식
1. #3 - 침례
최동욱 형제가 11/18(주일), 침례 받았습니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부산교회 대학생 섞임집회 안내
▷ 일시 : 12/1(토) 오후 5:00 ~ 6:30(집회 후 식사 제공)
▷ 장소 : 3구역 집회소
▷ 대상 : 부산 각 구역 대학생 및 열린가정, 예비 대학생(고3 및 수험생), 캠퍼스 봉사자

■ 한국복음서원 안내
▷ 다음세대를 위한 성경(중급) 로마서 신청 안내
▷ 가격 : 8,000원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에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겔 29:1 ~ 겔 40:27
2. RSG(신약 회복역) : 요일 5:1 ~ 계 1:8
3. 라이프-스타디 : 요한복음 M1 ~ M2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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