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생활 안으로 - 2(2019.2.3)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01-31 , 조회 (189)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복음을 생활 안으로 ? 2

모든 죄들을 덮는 사랑

   단체 생활에 대해 여러분 중 몇몇이 교통한 방식은 나를 편치 않게 했다. 잠언 10장 12절은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서로를 미워한다면 우리는 끝없이 싸울 것이지만 사랑은 단 하나의 죄나 몇 번의 죄들을 덮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들을 덮는 것이다. 야고보는 그의 글을 이렇게 마친다. “나의 형제님들, 여러분 가운데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로 간 사람을 누군가가 돌아서게 한다면, 죄인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한 그 사람은 그 죄인의 혼을 죽음에서 구원할 것이고, 많은 죄들을 덮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5:19-20). 우리는 표준에 못 미치는 자, 진리를 떠난 자를 미워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랑해야 하는가? 우리는 단체 생활을 하지 못하는 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집에서 합당하게 생활하는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만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은 다 성경에 계시된 주님의 영을 따른 것이 아니다. 어떤 형제가 좋다면, 그는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은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하지만 진리로부터 길을 잃은 자는 어떠한가? 한 형제가 진리를 떠나 교파에 나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면 우리 소그룹은 그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고 그가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를 받지 않는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미움이다. 사랑은 많은 죄들을 덮는다. 그가 영화를 본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다하더라도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그를 덮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를 드러내거나 노출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드러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 우리는 차라리 술취함으로 인한 그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덮은 노아의 아들들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덮는 것은 축복을 가져오지만 들추어내는 것은 저주를 가져온다.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폭로하는 자는 저주로 고통을 받으나 다른 이들의 죄들과 흠과 결점을 덮어주는 자는 축복을 누리고 얻고 받는다. 야고보서 5장 20절에서의 “많은 죄들을 덮을 것이라”는 것은 잘못 행하는 형제를 돌아오게 하는 것은 그가 정죄 받지 않도록 그의 죄들을 덮는 것임을 가리키기 위해 야고보가 쓴 구약의 표현이다. 여기의 “죄들을 덮는”것은 “허물의 사람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는 시편 32편 1절에서와 같이 15절의 “죄들이 … 사람을 얻는”것과 동일하다. 시편 85편 2절에서도 그러하다.

의인이 아닌 죄인들을 부르시러 오시는 주님

   디모데전서 1장 15절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믿을 수 있고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죄인들의 우두머리입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가 보았듯이 적극적인 용어가 아닌 세상 안으로, 타락한 인류 안으로 들어왔다. 다소의 사울인 바울은 죄인 중에 우두머리였다. 만일 그리스도가 신사들, 의로운 사람들만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면, 바울은 끝났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심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그분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그분의 마음은 세상에서 죄인들인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요한일서 4장 10절은 “사랑은 이렇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분의 아들을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로 보내신 것입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구절들의 내재적인 중요성에 한 번도 감동되지 않았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가 우리를 사랑한 것이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관심하지 않았고 그분을 저버렸다. 이 구절의 “우리”는 세상을 말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셨다. 더 나아가, 그의 사랑은 그가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심으로 나타난바 되었다. 
   마태복음 9장 10-13절에서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그 집에 앉으시어 음식을 드실 때,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왜 여러분의 선생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십니까?”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강건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십시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여기서 언급된 집은 단체 생활을 하는 집이 아니다. 죄인들과 세리들의 집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람이었지만 거기서 식탁에 앉아 그들과 함께 잔치를 누렸다. 그분은 그 시간을 누리셨고 고대의 ‘깡패’인 세리들과 죄인들도 모두 그분과 함께 누렸다. 그것이 바리새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여기서의 바리새인들은 단체 생활의 집들을 규제하는 이들에 비유될 수 있다. ‘단체 생활의 바리새인들’은 와서 왜 예수님이 ‘깡패들’과 ‘은행 강도들’과 잡수시고 계시는지 물었다. 주님은 강건한 자는 의원이 필요 없다고 대답하셨다. 누가 단체 생활에서 합당하게 살 정도로 건강하다면 그는 ‘병원’으로서의 활력 그룹이 필요하지 않다. 강하고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강한 사람들을 위해 오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분은 병든 자들을 위해 오셨다. 활력 그룹들은 건강하고 튼튼하고 단체 생활에서 살 수 있는 자들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형제의 집에 밤 12시가 넘어서 돌아오는 자들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닌 긍휼을 원하신다. 우리가 만일 긍휼이 없이 그분께 많은 것을 희생으로 바치고 드린다며 그분은 그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3장 3절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먹이기 위하여 나의 모든 소유를 다 나누어 줄지라도, 또 내가 자랑거리가 되도록 나의 몸을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고 말한다. 사랑이 없이 다른 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긍휼은 사랑의 안내자이다.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요구한다. 주님은 의인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시기 위해 오셨다. 이것이 그분의 마음이다.(사랑의 말씀 27-36쪽)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나아갈 영을 가짐

   누가복음 7장 34절-54절 또한 주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34절은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니, 여러분이 ‘보아라, 탐식가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라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있는 술주정뱅이를 보면 분명히 그로부터 떨어져 있으려 할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단체 생활에서 합당하게 생활하는 성도에게 갈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영이 지금 온 지구상에 주의 회복 안에서 퍼지고 있다. 우리는 합당한 단체 생활 안에 있는 자들은 사랑하지만 영화를 보러 가거나 맥주를 마시는 이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그들에 대해 험담할지 모른다. 이것이 모든 교회들에 가득한 영이다. 어떤 이들은 “맥주 마시는 것에 관해 당신이 우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이것에 관해 가르쳤지만 또 다른 면이 있는 것이다. 나를 믿으라, 새 예루살렘에서는 아무도 다시 맥주를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맥주 마시는 자들이 모두 불못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사닥다리이시다. 그는 평평한 계단이 아니라 서 있는 계단이다. 전에 우리는 ‘지옥’에 있었다. 스무 살 이전에 나는 어머니 몰래 마작을 했다. 중국인들은 모두 마작하기를 좋아하는데 하루는 나에게 하늘에 속한 사닥다리가 나타났고 나는 그 위를 올랐다. 나는 마작 테이블을 버려두고 새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나는 어떤 목사를 결코 잊지 못한다. 내가 마작을 하는 동안, 그는 매주 나를 방문했다. 나의 누이는 중국에서 가장 좋은 여성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당시 주님을 사랑했고 내가 주님으로부터 얻어진바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 목사에게 나를 맡긴 것이다. 그러한 부탁을 받은 후, 그는 약 3-4 개월 동안 매주 나를 찾아왔지만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결국 12월말에 그는 “당신은 연말에 사업 때문에 할 일이 많아 바쁘지요. 그래서 다음 주에는 당신을 방문하지 않겠습니다. 설날이 지난 후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하늘에 속한 사닥다리는 왔다. 모든 중국인들이 아는 대로 중국의 새해에 두 번째 날은 타락과 노름과 모든 형태의 오락의 날이다. 그날 나는 일어나 가장 좋은 새 옷을 입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새 옷을 입고 서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오늘 무엇을 할 계획이니?”라고 물으셨다. 그녀의 질문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생각 없이 바로 나는 “전 유 목사님의 교회에 가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나의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셨다. 그리고서 나는 그 교파 교회에 갔다. 그 때가 내가 하늘에 속한 사닥다리를 처음으로 오른 때였다. 그리스도는 죄인과 세리가 가득한 집으로 가셨다. 활력 그룹들, 동역자들, 장로들은 이러한 영,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그 영,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얻고 그들이 그분 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늘에 속한 사닥다리이신 자신 위에 그들을 두시려고 가장 안 좋은 집들을 방문하시는 그 영을 취해야 한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목양하고 찾는 영을 가짐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동역자들과 장로들과 활력 그룹들 가운데서 이러한 영을 잃어 버렸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가장 나쁜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하는 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누가 좋은 자들인지 고르면서 사람들을 분류한다. 수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좋은 자들을 많이 보았다. 결국, 좋은 자들 중 아주 소수만이 주의 회복 안에 남아 있다. 오히려, 나쁜 자들은 아주 많이 남아 있다. 처음엔 나도 그들을 나쁜 자로 분류했으나 오늘날 많은 나쁜 자들이 아직 여기에 있다. 우리의 관념대로라면, 하나님의 선택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의 선택은 세상의 기초가 놓여 지기 전에 그의 백성들을 선택하신 하나님께 달렸다. 성경은 하나님이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 중 아무도 야곱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은 너무나 나빴다. 우리는 신사인 에서를 택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태 안에서부터 야곱은 싸우고 있었고 그가 태어났을 때는 형의 발꿈치를 잡아 당겼다. 결국 그는 에서로 하여금 그를 죽이고 싶게 만드는 모든 일을 했다.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이것을 알았기에 그를 삼촌의 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 곳에 갔을 때, 그는 똑같은 일을 했다. 그는 삼촌으로부터 네 명의 아내들을 취함으로 삼촌을 속였다. 이것이 마치 깡패처럼 사는 것이다. 우리 중 아무도 야곱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선택, 우리의 택함에 달린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택함에 근거한 것이다.
   사람들을 분류하지 말라. 그 누가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될지 말해줄 수 있는가? 내가 열여덟 살이나 열아홉 살에 마작 놀이를 하고 있을 때 누가 이 사람이 수년 후에 미국에서 사람들에게 주님에 대해 말하고 있으리라 생각했겠는가?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왔는가? 하늘에 속한 사닥다리이신 그리스도였다.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를 데려 올라가셨다가 자신과 함께 땅으로 내려오게 하셨다. 하늘에 속한 사닥다리는 많은 계단이 있고 하나님은 나를 1년이 아닌 수년에 걸쳐 오르도록 하셨다. 정점에 도달했을 때 나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는 나를 장비시키어 다시 밑으로 보내셨다. 나는 내려와 처음엔 대만으로 그 다음엔 남아시아 섬들로 그리고 이 나라로 오게 되었다. 지금은 여기 있다. 내 고향마을의 목사는 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을 안다. 그는 도박꾼, 마작꾼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고 그러한 자를 내 교회의 교인으로 원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나를 방문했고 하루는 아주 비밀스럽게, 누가복음 15장의 여인처럼, 찾으시는 그 영이 내 안에서 찾고 계셨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왜 이렇게 시간을 많이 보내겠는가? 나는 여러분이 이 문제를 보고 변화를 가질 수 있기 위하여 성경으로부터 여러분을 목양하고 제자화시키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갖고 있는 관념을 바꾸도록 여러분을 제자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사람의 관념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특히 죄인 중에 우두머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는 ‘깡패들’, 심지어 ‘깡패들’중 두목인 다소의 사울을 구원하신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믿을 수 있고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죄인들의 우두머리입니다.”(딤전 1:15)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죄인 중에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대적했으나 그가 대적하는 중에 그리스도는 그를 무너뜨리셨고 구원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시길, “강건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마 9:12-13). 그러하기 때문에 그분은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먹고 잔치하며 식탁에서 그들과 함께 쉬고 누리며 거기 그들 가운데 계셨던 것이다. 
   이러한 영을 잃어버린다면 우리가 장로든 동역자든 봉사자이든 간에 우리는 끝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렇게 열매가 없는, 그렇게 수년 동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주된 이유이다. 최근에 한 형제가 한 부부를 돌보러 갔는데 그는 이러한 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열 번 이상 방문하지 않고 실망하게 되었다. 그 부부가 이 형제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더 이상 방문하는 것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유 목사가 나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는 3개월에서 4개월 동안 주마다 계속해서 왔다. 우리는 이러한 영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교만은 하나님의 가장 큰 대적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약 4:6, 벧전 5:5).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마다 우리는 은혜를 잃어버리고 대신 하나님의 대적하심을 겪는다. 우리 모두는 서로 목양하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내가 당신을 목양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목양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목양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결점과 부족함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결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자신을 낮춰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영을 강건케 하여 그들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우리로 사람들을 방문하고 돌보게 한다. 그들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들을 방문하며 계속해서 방문해야 한다. 그들의 통계에 의하면, 여호와의 증인들은 한 사람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방문하는데 육 천 개의 문을 두드린다. 그들은 이것을 율법적으로 행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밖으로 나갈 것을 강요하는 그러한 율법이 없다. 그러나 교회가 사랑과 다른 이들을 향한 돌봄으로 가득한 이러한 목양의 영으로 활력 그룹을 건축하도록 돕는 것에 나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교회가 그들을 정죄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물러간 모든 형제들에게 교회는 아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러 갈 필요가 있다. 오히려, 교회는 물러간 모든 이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그들 모두가 돌아온다면 나는 주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사랑의 말씀 27-44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금주의 추구

■ 기도의 부담
1. 북한 땅에 복음을 확산하도록
   (1) 북한의 복음 확산의 길을 열어주시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성도들 소식
1. #6 - 장례
심명 자매님(김승태 형제님)의 모친 서유순님의 장례를 1/29(화), 영락공원 장례식장에서 무사히 치뤘습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출 23:1 ~ 출 40장
2. RSG(신약 회복역) : 마 22:1 ~ 마 25:30
3. 라이프-스타디 : 요한복음 M21 ~ M22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눅 14

알리는 말씀

■ 2019년 구역별 약정헌금 현황 (1/27 현재)        

                                                            (금액단위 : 천원)

구분

사역의

전시간

훈련

교육관

대출금

상환

합계

월구좌

월구좌

월구좌

월구좌

월구좌

월금액

1구역

29

35

27

23

114

1,140

2구역

30

41

35

28

134

1,340

3구역

49

116

37

22

224

2,240

4구역

17

17

13

10

57

570

5구역

26

51

35

21

133

1,330

6구역

12

15

14

9

50

500

(건수)

163

(76)

275

(78)

161

(68)

113

(65)

712

(279)

7,120

연필요액

45,000

73,059

84,627

43,257

245,943

연약정액

19,560

33,000

19,320

13,560

85,440

대비

43%

45%

23%

31%

35%

연부족액

25,440

40,059

65,307

29,697

160,503

※ 현재 전체 필요금액에서 약정헌금은 65% 부족합니다. 필요금액이 충분히 약정될 수 있도록 형제, 자매님들의 기도와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 한국복음서원 안내
① <민수기 LS 영상 -상> 앱 출시 안내
▷ 가격 : 21,000원
▷ 다운로드 방법 : 플레이스토어/앱스토어에서 “민수기 LS 영상”검색 후 다운로드
② <민수기 개관(상)> 출시 및 예약 안내
▷ 예약가 : 8,500원(정가 11,500원)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에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인수 통계, 헌금 입력 봉사 안내
▷ 설날 연휴로 인하여 2/3(주일) 인수 통계 및 헌금 내역이 2/7(목) 오전 10시까지 입력되어야 합니다. 주보 작업과 재정 마감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해당 봉사자들께서는 2/7(목) 오전 10시까지 입력을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 부산교회 2월 일정 안내
① 중고등부 섞임 [2/16(토)~2/17(주일)]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