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생활 안으로 - 10(2019.3.31)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04-05 , 조회 (21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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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복음을 생활 안으로 - 10

합당한 일상생활과 보편적인 사랑

합당한 일상생활

   복음 전파를 위해 우리에게는 입으로 말하는 말씀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빛 비추는 생활이 필요하다. 이 장에서 나는 실제적인 복음 전파는 증인이 되는 문제임을 당신으로 보게 할 부담을 가지고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증인들은 생활 가운데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간증을 지니며, 단지 문자로 된 교리를 전하는 전도사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복음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우리 인격은 우리가 전파하는 것과 일치되어야 한다. 우리의 전파는 어떠한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의해 사는지를 전파해야 한다. 우리의 생활이 곧 우리의 전파함이요, 우리의 복음이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우리의 일상생활이어야 한다. 이것은 오늘날 단지 행사에 불과한 종교 단체의 전도와는 전혀 다르다. 연기자는 그가 신사가 아닐지라도 신사인 것처럼 연기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생활에서는 복음에 따라 살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파할 때, 이것은 주님과 주님의 이름과 주님의 복음에 부끄러움이 된다. 우리의 복음 전파는 말씀과 함께 해야 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은 말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합당한 일상생활은 중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이웃, 친구, 친척, 동료, 동급생들과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에 관해 말한 그날부터 그들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설득력 있는 요인은 우리의 말이 아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요인은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복음과 일치하는 일상생활이 필요하다. 우리의 행동과 태도는 주 예수의 증인들인 우리에게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복음 전파에 일치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일상생활을 가져야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엄격한 율법적인 행동 규범을 가져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어떤 종류의 율법도 믿지 않으며 좋아하지도 않는다. 일전에 한 형제가 나에게 말하기를, 그가 젊었을 때 애미쉬(Amish)교회에 나갔었는데, 거기에는 모자 차양 넓이에 관한 규제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형제는 차양이 좁은 모자를 준비했었다. 목사가 이것을 알았을 때, 그는 그 형제의 집에 가서 그에게 모자 차양이 좁은 것을 쓰지 말하고 권했다. 이것은 율법적인 행동 규범을 갖는 것의 한 예이다. 우리는 교회 생활에서 형제의 머리길이나 자매의 스커트 길이에 관해 율법적인 규범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보다 높은 어떤 것-하나님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율법적인 규범도 필요치 않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서는 우리가,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는 신성한 본성이 있다. 신성한 본성이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 옷, 행동 등을 고치기 위한 바깥의 규제가 필요치 않다.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어떤 교정도 안에 계신 하나님의 본성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은 신성한 본성에 의해 점검받아야 한다. 갓 태어난 모든 아기에게는 사람의 본성이 있다. 작은 아기가 바깥의 규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그들의 먹는 것을 규제하는 사람의 본성이 있다. 비록 그들이 ‘달다’, ‘쓰다’라는 말은 모르지만 쓴 것은 입에서 뱉고 단 것을 입에 넣어주면 그것은 삼킨다. 그들은 사람의 입맛을 가진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들에게 달고 쓴 것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사람의 본성보다 훨씬 더 높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신성한 입맛을 지닌 신성한 본성이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본성과 일치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신성한 본성은 우리의 머리와 옷과 행동을 규제할 것이다. 우리가 내적으로 신성한 본성을 따를 때 우리는 어떻게 옷을 입으며 처신할 것이지를 알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2절부터 8절에 의하면, 신성한 본성에 참여함은 많은 열매를 낳는다. 4절에서는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크신 약속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8절에서는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 안에 존재하고 또 계속해서 많아지면, 여러분을 게으르거나 열매 없는 사람으로 조성되게 하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온전한 지식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신성한 본성에 동참함으로써 모두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다. 안에 있는 신성한 본성에 의해 사는 생활은 열매 맺는 생활이다.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옷 모양이나 머리길이에 관해 바깥의 어떠한 규제도 필요치 않다. 바깥의 규제와 조직에 관한 한 우리는 그것들에 어떠한 주의도 기울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조직을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예수의 단체적인 간증으로서 살아있는 증인들로 구성된 산 간증을 원하신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본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복음 전하러 갈 때, 당신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당신의 생활에 달려 있다. 당신에게는 복음과 일치되는 일상생활이 필요하다. 당신이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고 안에서부터 규제를 받을 때, 당신은 말로만이 아니라 당신의 생명과 생활에 의해서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들 스스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했다. 우리에게는 복음과 일치되는 생활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복음을 살아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복음에 의해 살아야 하고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 결국 우리의 전파함은 우리의 생활이 될 것이고, 우리의 생활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내가 복음에 관해 기도하고 있는 동안 주님은 여러번 나를 감동시켰다. 내가 어떤 사람에 관해 기도하려고 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응답하셨다. “너는 지금의 그 상황에 대해 관심할 필요가 없다. 너는 너 자신을 관심하라.” 그리고서 주님은 내안에 있는 신성한 본성을 따르지 않는 몇 가지 문제들을 지적해 주고자 하셨다. 내가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있을 때 주님은 나의 일상생활 속에 있는 문제들을 더 염려하셨다. 
   만약 주님이 기도를 통해 우리 양심을 만지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 안에서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비록 많이 기도할지라도 우리는 지성소 안에 계신 주님의 임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주님은 우리의 양심을 결코 만지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는 지성소 안에서 기도한다면, 주님은 우리가 어떠하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를 만지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 속을 만지시도록 허락해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방종케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진지하다면, 주님은 그분의 생명에 의해, 그리고 그분의 신성한 본성을 따라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그분의 내적인 규제를 통해서 우리를 만지실 수 있도록 기도로 우리 온 존재의 각 부분을 그분께 열어드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생활은 우리의 전파와 일치 될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바로 우리의 전파가 될 것이다. 
   몇 해 동안 줄곧 나는 복음을 전하는 다양한 형제들을 보아왔다. 어떤 사람들은 능변가였지만, 그들이 전한 복음은 자주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들의 전파는 바로 소리 나는 구리와 같았다(고전 13:1). 나는 말이 유창하지 않은 다른 형제들도 보아왔다. 그들은 말은 잘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전파와 일치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음과 일치되는 생활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사람들로 믿게 해준다. 좋은 양심이란 그 사람의 어떠함에 따라 무게를 재는 저울과 같다. 저울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시험한다. 일단 당신이 복음을 전파하면 사람들은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불의는 용인하면서도 당신 쪽의 불의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좋은 양심은 그들에 관한 요구는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당신에게서는 합당한 일상생활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복음과 일치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은 우리에게, 우리는 세상의 빛이며 우리는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14~16). 우리는 빛으로 충만하여 사람들을 비추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으로부터 빛을 비추어야 한다. 빌립보서 2장에서도 바울은 똑같은 것을 강조했다. 바울은 우리에게 “그러면 여러분은 나무랄 것이 없고 순결하여,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대 가운데서 세상의 발광체들로 빛나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십시오.” 라고 말한다(빌 2:15~16). 생명의 말씀은 단지 우리의 말로만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로도 밝혀진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 전파에 합당한 일상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인상을 받기 바란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완전한 점검을 받기 위해 주님께 가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주여, 나는 당신의 복음을 전파하러 가고자 합니다. 당신의 임재 안에 내 자신을 열어 드립니다. 내 온 존재를 완전히 비추어주는 ‘X-레이’를 갖기 원합니다.” 우리의 생명과 생활의 모든 것을 점검받아야 한다. 너무 작아서 점검받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복음 전파하는 동안 착용하는 시계까지도 주님께 점검받아야 한다. 심지어 그것까지도 합당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너무 율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 점검을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비추시는 빛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부주의하고 느슨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복음 전파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의 복음 전파는 어떠한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다. 초기의 사도들은 주님의 구원에 있어서 견고한 회심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복음 전파는 견고하고 남아 있는 열매들을 산출했다. 내가 생명과 생활에 있어서 그처럼 견고했던 한 젊은 자매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은 주님께 감사하고 너무 기쁘다. 그녀가 나에게 준 감명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가 전하는 복음과 일치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 역시 우리의 복음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청년들은 그들의 머리길이에 관해 다른 사람을 상대로 점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주님을 상대로 점검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러 가기 전에 주님께 가라. 만약 청년들이 그들의 머리를 일정한 길이로 자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것은 외적인 율법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렇지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은 어떤 것이라도 아름답다. 만약 당신이 주님으로부터 점검받는다면 당신은 머리 모양을 교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정은 외적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신성한 본성에 따른 것이다. 

보편적인 사랑

   청년들이 복음 전하러 갈 때 합당한 일상생활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도 필요하다. 이 보편적인 사랑은 사탄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온 우주 가운데 사랑해서는 안 될 존재가 오직 하나 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탄이다. 우리는 주님과 주님 안에 있는 모든 형제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함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우리 혼을 다하고, 우리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신 6:5, 마 22:37).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겉으로는 그들이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을 일종의 미신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깊은 속에서는 주님을 향한 우리 사랑을 감상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는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만큼 우리의 생활 규범을 높이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인간 규범의 최고봉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락과 죄 있는 것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는 우상숭배는 사람들을 음란하게 하고, 사람들의 도덕규범을 낮아지게 한다(계 2:14, 20).
   당신이 주 예수를 조금이라고 사랑하면 당신의 표준은 들어 올려질 것이다. 주 예수를 사랑한다는 바로 그 생각만으로도 당신의 표준은 들어 올려질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최고의 도덕규범을 가져온다. 요셉이 보디발의 사악한 아내로 인해 곤경에 빠졌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은 항상 그와 함께 계셨다. 요셉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최고봉의 도덕규범을 지켰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당신은 오늘의 요셉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높다. 이것은 더 높은 경지에서 더 높은 삶을 살게 하는 주요인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다하고, 우리 혼을 다하며, 우리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힘이란 말은 우리 신체의 힘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온 존재를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서로 사랑함

   둘째로, 성경에서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요일 3:11, 14). 주 예수님은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이것으로써 여러분이 내 제자인 줄을 알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3:35). 그리스도인 형제들 사이의 사랑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강한 간증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참된 사랑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 있는 사랑은 종종 거짓된 것이지만 성도들 사이의 사랑은 실제적이고, 참되며, 믿을 수 있고, 매혹적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신성한 공동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공동생활이란 우리 모두가 한 지붕 아래 함께 모여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합당한 공동생활이란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으로 사는 생활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우리 가정에 초대해서 그들에게 사랑의 공동생활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우리 친척들과 친구들로 하여금 믿게 할 것이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이켜 믿게 할 것이다.(캠퍼스 복음 전파 32-42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금주의 추구

■ 기도의 부담
1. 북한 땅에 복음을 확산하도록
   (3) 탈북 대학생 교육 지원의 일을 통하여 젊은이들을 얻으시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성도들 소식
1. #3 - 침례
이진석 형제님, 황미정 자매님이 3/24(주일) 침례 받았습니다.
2. #4 
① 결혼 - 천해경 자매님의 아들 박재홍군과 조균선양의 결혼식이 4/6(토) 오후 1시, 아모르하우스(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13길 33)에서 있습니다.
② 이사 - 정지석 형제님(김춘자 자매님) 가정이 4/6(토), 금정구 청룡동(3구역)으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수 10:1 ~ 수 24장
2. RSG(신약 회복역) : 눅 18:1 ~ 눅 23:25
3. 라이프-스타디 : 요한복음 M37 ~ M38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눅 22

알리는 말씀

■ 전국 특별집회 안내
▷ 일시 : 5/2(목) ~ 5/4(토), 등록은 2일(목) 오후 4시부터 시작
▷ 장소 : 성경진리사역원
▷ 강사 : 제임스 리(James Lee) 
▷ 대상 : 각지 교회에 있는 모든 성도들
▷ 비용 : 숙박 91,500원 / 출퇴근 30,500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4/22(월)까지 입금 후 집사실로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취소 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으니, 신중히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접수 마감일 이후에는 추가 신청이 없으며 집회 당일 현장에서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 한국복음서원 안내
▷ 다음세대를 위한 성경(초급) 데살로니가전서 ~ 빌레몬서 편 신청 안내
▷ 가격 : 9,000원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에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부산교회 4월 일정 안내
① 춘계 영남권역 청년직장인 특별집회 [4/6(토)~4/7(주일)] 
② 미얀마 성도(40여명) 3구역 방문 [4/29(월)~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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