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 1(2019.4.7)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04-05 , 조회 (23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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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목양-1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양들을 먹임으로써 주님을 따름

주님의 위임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의 끝 부분 모두에 의미심장한 어떤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끝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께서 지시하신 산에서 집회를 가지셨다(28:16).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권위가 있는 높고 초월한 지점을 의미한다. 주님은 그분께서 지시하신 산에서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가 그분께 주어졌다고 말씀하셨다(18절). 그러고 나서 주님은 이 권위를 제자들에게 주셨고, 가서 모든 민족을 그분의 제자로 삼으라고 그들에게 명하셨다. 그분은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고”(19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그러므로’는 주님께서 그분께 주어진 권위에 근거해서(18절)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도록 그분의 제자들을 보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주님께서 정하신 침례는 천국을 위하여 사람들이 그들의 낡고 타고난 생명에서 나와, 삼일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도록 침례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침례를 받은 이 사람들에게 왕국이 있다. 이 왕국 안에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침례 받은 사람들을 가르침으로, 즉 그들에게 어떻게 하늘의 왕국의 시민들이 되는지를 가르침으로써 제자로 삼는 과정이 지속된다(20절). 오늘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와 함께 이 땅에 계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권위를 위임하시어, 우리가 이 땅의 천국을 위하여 민족들을 삼일 하나님의 실재 안으로 넣음으로써 그들을 제자로 삼는 책임을 짊어지게 하셨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교회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천국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사람이시자 구속자이시며 부활한 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과 사람과 구속자와 부활한 인격이 그분 안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전 존재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됨됨이 모두가 그분 안에 포함되어 있다. 모든 것을 포함한 그런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합당한 깨달음이 있다면,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게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그분의 위임, 명령, 부담의 느낌을 속에 가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작은 나사렛 사람이 아니시다. 그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지니신 분이다. 이분을 본다면, 우리는 잠잠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지니신 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해 줄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선포함으로써 우리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삼일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제자들은 생계의 문제에서 실패함

   마태복음 28장의 상황은 놀라웠다. 베드로와 다른 열 명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산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마태복음 28장에서 제자들은 주님의 지시에 따라 높은 곳인 산에 이르러 거기서 주님을 기다렸다(16절). 그러나 요한복음 21장에서 그들은 더 이상 산에 있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낮은 곳인 바닷가에 있었다(2-3절). 우리는 산을 좋아하지만, 우리의 대부분의 시간은 바닷가에 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바닷가는 긍정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지시하신 곳은 산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이 뒤로 물러나서 간 곳은 바닷가였다. 베드로가 그의 옛 직업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부름에서 물러난 것은 틀림없이 생계와 관련된 시련 때문이었을 것이다(마 4:19-20, 눅 5:3-11).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의 기간 동안 제자들은 먹을 것이 부족했을지 모른다. 베드로는 뒤로 물러나는 데 앞장섰다. 베드로는 그 상황을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 몇몇에게 자신은 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했고, 그들은 “우리도 함께 가겠습니다.”(요 21:3)라며 반응했다. 따라서 그들 모두가 바다로 갔다. 제자들이 바다로 간 것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들은 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3절).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요한과 야고보)은 직업이 어부였고, 디베랴 바다는 넓고 물고기가 가득하였으며, 밤은 고기잡이에 알맞은 때였지만, 온밤이 지나도록 그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주님께서 모든 물고기에게 그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이 틀림없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임을 관심하지 않은 채 생계를 돌보는 것에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생계를 돌보는 것이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위임을 수행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 우리가 주님께 진지하고 그분과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우리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위임을 수행하기 위해서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생활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곳에 있다. 베드로와 그 외 제자들은 주님의 위임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자신들의 생계만을 관심했다. 그들은 먹을 것이 떨어지자 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온밤이 지나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동이 틀 무렵에,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기다리고 계셨다(요 21:3).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곳에서 그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이 뒤로 물러난 곳인 이곳에서는 주 예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사실 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시간 내내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제자들이 바닷가로 떠났을 때, 심지어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에도 예수님은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께서 그곳에 계신지를 몰랐다. 아침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다. 예수님은 “어린 자녀들이여, 여러분에게 먹을 물고기가 좀 있습니까?”(5절)라고 물으셨다. 주 예수님은 제자들이 생계의 문제 때문에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단지 물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으신 것이 아니라 먹을 물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주님께서 회복하시고 공급하심

   제자들이 밤새 수고했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후, 주님은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십시오. 그러면 잡힐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6절). 이 일이 일어나자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9절은 “그들이 육지에 올라와서 보니, 거기에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으며, 떡도 있었다.”라고 말한다. 주님은 고기를 잡도록 제자들을 도와주셨지만 그들이 잡은 고기로 그들을 먹이지 않으셨다. 주님은 바닷가에 그들을 위하여 이미 생선과 떡을 준비해 놓으셨다. 이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위임을 위한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먹을 것을 돌보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은 일거리가 없을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떡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봐 염려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님의 위임을 위한다면, 우리는 염려할 것이 전혀 없다. 우리는 생계를 챙기려고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곳에 있다. 우리는 바다를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한다. 바닷가에서 주님은 이미 생선과 떡을 마련해 두셨다. 그분은 우리의 먹을 것을 돌보신다. 우리가 이 말을 주님 앞에서 고려해 보기를 바란다. 제자들이 육지로 올라왔을 때, 예수님께서 어디서 물고기를 가져와 요리해 놓으셨는지, 어디서 떡도 구해 놓으셨는지 궁금했을 수 있다. 이것은 제자들의 상태를 폭로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로서 바다를 의지할 필요가 없다. 대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바다가 이곳에 있든 없든, 주님은 우리에게 생선을 주실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 바다를 의지한다면, 아무리 고기를 잡는 데 능숙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공과를 배울 필요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바다, 곧 자신의 일자리에 매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일자리가 아니라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자신의 생계에 대해 다소 염려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생계에 대한 염려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세상을 위한다면 자신의 생계에 신경을 써야 하고 자신의 일자리에 매달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예수님께 위임을 받은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면 자신의 생계를 염려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님의 위임에 신실하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생계를 돌보실 것이다(마 6:32-33). 

주님의 양을 먹임

   제자들이 먹고 배부른 후, 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이여, 이 사람들보다 그대가 나를 더 사랑하십니까?”(요 21:15)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그분께 대한 베드로의 사랑을 회복하고 계셨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자신의 타고난 힘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했다.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귀한 것이었지만, 그의 타고난 힘은 부인되고 다루어져야 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세 번 하시자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말했고,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양들을 먹이십시오.”(17절)라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베드로여, 내가 여기서 생선과 떡으로 그대를 먹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대는 내 어린양들뿐 아니라 내 양들도 먹여야 합니다. 베드로여, 내 양 떼를 먹이십시오. 그대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는 목양의 위임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마태복음 28장이 필요하고, 또한 요한복음 21장도 필요하다. 요한복음 21장은 마태복음 28장에 있는 주님의 위임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위임은 이 땅에 천국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가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삼일 하나님의 실재 안으로 침례를 주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주님의 어린양들과 양들을 먹임으로 그분의 양떼를 목양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신의 생계를 잊어버리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위임을 단지 교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부담으로 취해야 한다. 미국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만 우리는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은 여전히 이방 땅, 이교국이다. 가서 민족들을 제자로 삼도록 주님께 위임을 받을 수 있는 얼마간의 신실한 제자들이 주님께 필요하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갈 때 단지 미국 내의 이교도들을 제자로 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세계 여러 곳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따라서 미국 내의 이교도들을 제자로 삼을 때, 우리는 실상 세계 곳곳의 민족들을 제자로 삼는 셈이다. 
   마태복음 28장은 단지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위임이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위임을 받아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이 땅에 천국을 세우려는 부담을 가져야 한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요한복음 21장의 명령이 필요하다. 요한복음 21장의 주님의 명령이 없다면 마태복음 28장의 위임은 온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이교도들을 삼일 하나님의 실재 안으로 침례를 주어 제자로 삼은 후, 어린 양들을 먹이고 양들을 목양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많은 어린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먹여야 할 어린양들이다. 이 일을 위해 신학교 졸업생들을 고용할 수는 없다. 한 무리의 소수의 형제들에게 이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는 법이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어린양들과 양들을 돌보고 먹이는 일은 반드시 교회 전체가 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위임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그들이 이 땅의 천국의 시민들이 되게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이들을 어린양들, 곧 왕국 안의 어린 사람들, 작은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먹일 필요가 있다. 이런 종류의 목양과 먹임은 단지 인도하는 이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의 모든 성도의 책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이들을 목양하는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나는 우리 가운데 증가가 있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지만 새로운 이들에 대한 염려의 마음도 있다. 우리가 온전한 방식으로 이들을 먹이는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증가는 오히려 교회생활에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교회생활은 전진하는 대신 가라앉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부담을 받아 마태복음 28장만이 아니라 요한복음 21장의 주님의 위임도 수행해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 곧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어린양들을 먹이는 것이다.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려면 우리에게는 권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린양들을 먹이려면 우리에게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어린양들을 돌볼 때 우리는 자신의 권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들을 두렵게 하여 도망치게 만들 것이다. 대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랑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더 어린 이들과 더 연약한 이들을 돌보고 먹이는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와 동기는 주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어야 한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없다. 

주님을 따름

   마태복음에는 산이 있는데, 산은 왕국을 위한 권위가 있는 가장 높은 장소를 상징한다. 요한복음에는 바다가 있는데, 바다는 세상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장소를 상징한다. 베드로와 그 밖의 제자들은 생계를 유지하려고 바다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했다. 주님의 주권 아래서 그들은 실패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바닷가에서 그들을 기다리셨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시므로 그들이 자신의 생계를 돌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우시기 위해서였다. 세상 사람들이 생계를 꾸려 가는 곳에서 제자들이 해야 했던 일은, 민족들을 제자로 삼고 제자가 된 사람들이 주님의 양들을 먹이는 것이었다. 오늘날 로스앤젤레스는 사람들이 생계를 꾸려 가는 장소이다. 이곳은 커다란 ‘디베랴 바다’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물고기를 잡고 있는지 아니면 주님의 위임을 수행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는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의 위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이 문제에서 주님께 진지하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실 것이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을 먹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을 따를 것이다. 주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고 심지어 우리 안에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한 주 동안이나 심지어 일 년 동안도 아닌,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온 일생 동안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임으로 그분을 따르기를 갈망하신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곧 산에 있든지 아니면 바닷가에 있든지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산에 있다면 주님의 위임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가 바닷가에 있다면 우리의 생계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양 떼를 먹임으로 그분을 따른다면, 그분께서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실 것이다.(위트리스 리 전집 1991년 2권 287-297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 기도의 부담
1. 모든 성도들이 참된 제사장 직분을 회복하도록
   (4) 기도, 찬송, 찬양, 신언을 통해 거룩한 빛을 밝히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성도들 소식
1. #2 - 결혼
이중희 형제님(정인숙 자매님)의 아들 이다윗 형제와 임은진 자매(거제교회)의 결혼식이 4/13(토) 오후 1시, 부산교회 교육관 3층(부산 해운대구 청사포로 68)에서 있습니다.
※ 점심식사는 2시부터 가능합니다.
2. #3 - 입원
온천 소그룹 박정수 자매님이 3/31(주일) 대동병원 557호에 골반 골절로 입원하였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3. #6 - 결혼
박구영 형제님(장말선 자매님)의 아들 박지훈 형제와 이령경 자매의 결혼식이 4/13(토) 오전 11시 30분, 팔레드시즈 지하1층 웨딩홀((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8번길 24)에서 있습니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전반기 전국 자매 온전하게 하는 훈련 USB 신청 안내
▷ 가격 : USB(영상+MP3+개요 포함) - 70,000원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4/12(금) 오후 1시까지 입금 후 집사실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2019년 대학 3, 4학년생 및 대학 졸업생 초청 섞임집회 안내
▷ 일시 : 5/17(금) 16:00 ~ 5/19(주일) 점심식사
▷ 대상 : 대학 3, 4학년생, 대학 졸업생, 대학 봉사자
▷ 장소 : 성경진리사역원
▷ 비용 : 50,000원{식비(6식) 39,000원 + 숙박비(2박) 11,000원(50% 할인 금액)}
▷ 문의 : 1544 - 0031(내선 2번 → 3번)
▷ 계좌번호 : 농협 247-02-295-423 최명원
※ 각 구역 대학부 봉사자들은 취합하여 5/3(금)까지 최명원 형제(010-3838-6740)에게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부산교회 4월 일정 안내
① 춘계 영남권역 청년직장인 특별집회 [4/6(토)~4/7(주일)] 
② 미얀마 성도(40여명) 3구역 방문 [4/29(월)~4/30(화)]
③ 서울교회 마포대지역 공덕지역 성도(12명) 5구역 방문
   [4/27(토)~4/28(주일)]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삿 1:1 ~ 삿 15장
2. RSG(신약 회복역) : 눅 23:26 ~ 눅 24:12
3. 라이프-스타디 : 요한복음 M39 ~ M40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눅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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