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 3(2019.4.21)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04-19 , 조회 (40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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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목양 - 3

다른 이들을 돌보는 법

   교회생활은 목장과 같아서 우리는 양들을 돌보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집회를 하거나 실지적인 봉사를 수행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문제이기도 하다. 주님에 대한 우리 봉사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소금과 빛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도록 우리는 
빛 비춤받고, 부름받으며,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되어야 함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비결을 배우려면 주님의 말씀 안에 있는 주님의 빛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지 교리적인 가르침에 불과한 것보다 더 깊은 것이다. 마태복음 4장과 5장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지 그 비결을 계시한다. 마태복음 4장 13절은 주님께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오셨다고 말한다. 15절은 이사야서 9장 1절의 예언을 언급하면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해변 길, 요단 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리야”라고 말한다. 그것은 많은 이교도들이 유대인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 지역이어서 이방인의 갈릴리라 불린 지역이었다. 마태복음 4장 16절은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빛이 죽음의 땅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비추었다.”라고 말한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비로소 선포하시기 시작하셨다. ‘회개하십시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17절을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큰 빛이심을 알 수 있다. 
   주님은 큰 빛으로 오셨고, 그분의 행하심은 그분의 빛 비춤이었다. 이 빛 비춤이 두 형제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임했고, 이어서 다른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임했다(18-22절). 이 네 사람은 주님의 빛 비춤에 사로잡혔다. 주님의 사역의 시작과 첫 번째 제자들에 대한 부름을 기록하는 마태복음 4장에 있는 이 말씀들은 보다 깊은 의미가 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잡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었다. 그들은 주님께 부름 받았을 때, 즉시 직업과 소유와 가족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갔다. 이것은 주님의 빛 비춤이 강력하고 마음을 끌며 매혹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태복음 4장을 볼 때, 왜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만이 주님의 빛 비춤에 사로잡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갈릴리 바닷가에는 고기를 잡고 그물을 깁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절은 “예수님께서 … 산에 올라가시어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분께 나아왔다.”라고 말한다. 주님은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사로잡으신 후 산에 올라가셨고,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분을 따라갔다. 거기서 주님은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3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또한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8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영 안에서 가난했고 마음이 순수했기 때문에, 주님의 빛 비춤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겉으로 보면, 그들은 고기를 잡고 그물을 깁고 있었다. 그러나 내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바다에 남아서 고기를 잡은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생계만을 관심했지만, 주님을 따라 산에 간 사람들은 천국과 하나님을 관심했다. 그들은 영 안에서 가난했다. 곧 그들은 영 안에서 비어 있었고, 추구했으며, 굶주렸다. 그들은 또한 마음이 순수했다. 곧 자신의 생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께서 관심하시는 것만 관심했다. 
   영 안에서 가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고, 마음이 순수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내적 존재를 소유하실 기회를 드리게 된다. 주님은 먼저 영 안에서 가난한 것에 대해 말씀하시고 이어서 마음이 순수한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영이 먼저 오고, 마음이 뒤따른다. 우리의 영은 받아들이는 기관, 곧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기관이다. 4장 17절에서 선포하시기 시작하신 분은, 마태복음 1장 23절에 의하면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하나님께서 오신 것이었다. 따라서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영이 비워져 그분께서 들어오실 공간이 있어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배고프고 목말랐기 때문에 영 안에서 가난했다. 하나님은 들어오신 후 우리의 마음에 퍼져 나가시기를 갈망하신다. 영은 받아들이는 기관이고, 마음은 생명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자라시는 밭이다(비교 13:19). 그리스도는 비추시는 큰 빛으로 오셨다. 또 다른 의미에서 그분은 자신을 그분의 믿는 이들 안에 뿌리시려고 생명의 씨로 오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영에 의해 받아들인 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자라신다. 
   영 안에서 가난한 것과 마음이 순수한 것에 대해 말씀하신 후, 주님은 제자들에게 “여러분은 땅의 소금입니다. …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5:13-14).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서 자라심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실 때, 우리는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된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비결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도록, 빛 비춤 받고, 부름받으며,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큰 빛이신 주님의 빛 비춤으로 비춤을 받을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는 주님께 부름받고 사로잡힐 필요가 있다. 주님께 사로잡힐 때 우리는 생계와 소유와 가족을 떠나 주님을 따라간 제자들처럼 주님만을 관심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어리석게 처신하여 주님을 따라갔지만, 그들은 주님께 부름받고 사로잡혔기 때문에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교회생활의 회복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 부름받고, 심지어 주님을 위해 ‘부서지는’ 문제이다. 우리의 장래는 유일하게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 부서져서 다른 모든 것에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와 교회에게만 쓸모가 있다. 주님께 빛 비춤을 받고, 부름받으며, 사로잡히고, 부서지는 것에 더해 우리는 또한 그분으로 충만하게 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영 안에서 가난하고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께 우리 안에서 자라실 입지를 드릴 때, 우리는 땅의 부패시키는 균을 죽이는 소금과 어둠의 세상에서 빛나는 빛이 된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려면, 우리는 땅의 소금이 될 필요가 있다. 소금은 세균을 죽인다. 오늘날 땅은 부패시키는 세균으로 가득하다. 젊은 세대는 낡은 유행을 내던져버리고 새로운 유행을 취한다. 하지만 옛것이 되었든 새것이 되었든 유행은 동일한 근원인 사탄에게서 비롯되고, 죽음을 가져오는 부패시키고 파멸시키는 세균들로 가득하다. 1918년에 제 일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래로 나는 세계정세를 주시해 왔다. 나는 오늘날의 청년 세대만큼 부패하였고 또 부패시키는 세대를 결코 본 적이 없다. 음행은 흔한 일이 되었고, 염치라곤 전혀 없다. 이것은 죄가 가득한 것이고 하나님께 혐오스런 것이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부패시키는 균을 죽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려면 우리는 소금의 맛이 있어야 한다. 먼저 우리 안의 모든 세균들이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세균을 죽이는 소금이 될 것이다. 우리는 바깥의 규율을 주의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이 주변 사람들에게 소금의 요소가 되는지 아니면 부패시키는 요인이 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빛 비춤 받고, 부름받으며, 사로잡히고, 부서지며, 넘겨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분으로 충만해질 때 그분은 우리 안의 모든 부패시키는 세균들을 죽이시고, 소금과 빛이 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이다. 그분은 큰 빛이시고, 우리는 결국 이 빛의 일부가 된다.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돌볼 자격을 얻는다. 

고기 잡고 그물을 기움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봄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주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잡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었다. 주님은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람 얻는 어부가 되게 하겠습니다.”(19절)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의 사역은 베드로의 고기 잡는 사역으로 시작하였고, 요한의 깁는 사역으로 끝마쳤다(행 2:14-41, 요일, 요이, 요삼, 계 2-3장). 다른 사람들을 돌볼 때 우리는 고기를 잡는 사람이거나 그물을 깁는 사람이어야 한다. 고기를 잡는 것은 사람들을 이끌어 오는 것이고, 깁는 것은 성도들을 함께 건축하는 것이다. ‘깁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수리하다, 완전하게 하다, 완성시키다’의 뜻을 갖고 있다. 수리하는 것은 부서진 것을 고치는 것이고, 완전하게 하거나 완성시키는 것은 온전히 갖춰지게 하고 장비되게 하며 준비되게 하는 것이다. ‘깁다’라는 단어에 이 모든 뜻이 담겨 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형제님들, 어떤 사람이 어쩌다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영적인 여러분은 온유한 영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아 여러분도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바로잡아 주다’로 번역된 헬라어가 ‘깁다’의 헬라어와 동일하다. 형제를 바로잡아 주는 것은 그를 꿰매 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서 바울은 “형제님들,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같은 것을 말하고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게 하여, 같은 생각과 같은 의견으로 조율되도록 하십시오.”라고 권면한다. 이 구절에서 ‘조율되다’의 헬라어는 마태복음 4장 21절에서 ‘깁다’로 번역된 것과 같은 단어이다. 우리는 모두 조율될 필요가 있다. 두 형제가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툴지 모른다. 우리는 어느 편을 들것이 아니라 그들을 조율해 줌으로써 돌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조율해 주려면 체험과 배움과 실행이 필요하다. 어떤 형제에게 무언가 도에 지나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자. 우리는 마치 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듯이, 그 형제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도에 지나친 그것을 잘라 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형제에게는 무언가 부족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자. 우리는 그를 온전하게 해 줌으로써 그런 사람을 조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조율해 주는 사람과의 여러 차례에 걸친 교통을 통하여 그런 형제들은 같은 생각과 같은 의견으로 조율 될 수 있다. 이것이 건축하는 것이다. 요한의 사역은 어떤 것을 잘라 내거나 더함으로써 깁는 사역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고기를 잡는 사역은 깁는 사역만큼 어렵지는 않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고기를 잡는 사역을 하게 하신 것은, 그가 때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도로 투박하고 담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성격은 주로 고기를 잡는 데 적합했다. 그러나 후에 베드로도 깁는 사람이 되었는데 이것은 그가 정교하고 심지어는 유려하게 서신을 쓴 것에서 볼 수 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을 그분의 영원한 영광 안으로 부르신 분께서 잠시 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직접 온전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터를 튼튼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온전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깁다’의 헬라어와 같은 단어이다. 장로로서 베드로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함으로 기웠고, 다른 장로들에게 마찬가지의 일을 하라고 권면했다. 
   교회생활에서 우리에게는 고기를 잡는 사역과 깁는 사역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나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올 필요가 있다. 우리가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올수록 더 많은 깁는 것이 필요한데, 왜냐하면 새로운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의 배경과 기질에 따른 다른 의견과 관념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들어온 서로 다른 사람들을 모두 보존하려면 우리는 깁는 사역이 필요하다. 고기를 잡는 일을 통해 재료들이 들어오고, 깁는 일은 이 재료들을 건축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긴급한 필요이다. 건축함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오직 한 무더기의 재료들만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이끌어 올 필요가 있고, 또한 그들을 건축할 필요가 있다. 
   고기를 더 많이 낚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급한 필요는 깁는 것이다. 교회들 안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는데, 나의 마음은 그들에 대한 염려로 가득하다. 그들은 많은 기움이 필요하다. 깁는 것은 완전하게 하고 완성시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여러분의 얼굴을 직접 보고, 여러분의 믿음에서 부족한 것들을 완전하게 할 수 있도록, 밤낮 간절히 간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완전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깁다’로 옮겨진 헬라어와 같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믿는 이들은 주님 안에서 어렸기 때문에, 아직 믿음이 부족했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완성시키려고, 곧 온전하게 하려고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이 깁는 것이다. 
   히브리서 13장 2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온갖 선한 일에서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셔서 그분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라고 기도한다. 이 구절에서 ‘온전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장비시키다, 완전히 갖추게 하다, 깁다’의 뜻이 있다. 하나님은 지나친 어떤 것을 잘라 내시고, 부족한 어떤 것을 더하시어 온갖 선한 일에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심으로 깁는 일을 하신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마다 사람들을 이끌어 오는 고기 잡는 사역이 필요하고, 또 사람들을 건축하는 깁는 사역이 필요하다. 마태복음 4장은 주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부르신 것을 기록한다. 이것은 주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인 우리가 고기 잡는 사람이거나 깁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둘 다일 수도 있다. 우리가 고기를 잡는 것을 통해 어떤 사람을 이끌어 오든, 그를 기워 줌으로 건축해야 한다. 
   사람들을 돌보려면 우리는 빛 비춤 받고, 부름받으며, 부서지고,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며, 소금과 빛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우리는 고기 잡는 사역이나 깁는 사역이나 아니면 둘 모두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그물을 던져’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이끌어 와야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담대하고 진취적이어야 한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아”라고 명하신다. 우리는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가 있고, 깁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지체가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법을 배우고 
훈련받아야 함

   교회생활을 새로 시작한 형제는 영과 마음과 혼의 차이 등 많은 기본적인 것들을 모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람을 가르침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깁는 것이다. 교파에서는 성직자가 일을 도맡아 한다. 그러나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에서는 모든 지체가 일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간의 시간을 들여서 모든 성도를 훈련시키고 온전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주님을 위해 수고할 자격을 갖추게 해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마음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또한 역량이 있어야 한다. 다른 이들을 돌볼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낙담할 수 있다. 우리는 배우고 훈련받음으로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지방에 있는 교회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고 기워 주며 조율시키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기워 주도록 훈련시키는 집회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있어야 한다. 교회생활의 회복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와 사람의 영이 기본 요소들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것들을 철저히 배워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 줌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영과 마음과 혼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 합당한 교회생활을 하려면, 영과 혼과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이것들은 사역의 출판물들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성도들은 소그룹에서 적합한 부분들을 읽고 교통함으로 분명해져야 한다. 그럴 때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위트리스 리 전집 1991년 2권 575-584쪽).

기도의 부담, 금주의 추구

■ 기도의 부담
1. 교회들이 새 길을 실행하여 새로운 부흥에 이르도록
   (4) 교회마다 기도그룹, 활력그룹, 제사장 체계를 세우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삼상 5:1 ~ 삼상 19장
2. RSG(신약 회복역) : 요 7:37 ~ 요 12:24
3. 라이프-스타디 : 요한복음 M43 ~ M44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요 1

알리는 말씀

■ 2019년 전반기 전국 특별집회 및 전국 봉사자, 전 성도 온전하게 하는 훈련 안내
① 전국 특별집회 : 6/2(주일) ~ 6/9(주일)

내용

일시

메시지

시간

장소

인천, 경기

6/2(주일)

C1

10:00-12:00

성경진리사역원

서울, 강원

6/2(주일)

C2

14:30-16:30

경기 남부

6/2(주일)

C3

18:30-20:30

광주, 호남

6/7()

C4

19:00-21:00

장성문화예술회관

대전, 충청

6/8()

C5

10:00-12:00

대전교회 학생센터

대구, 경북

6/8()

C6

16:00-18:00

대구 호텔인터불고

부산, 경남

6/9(주일)

C7

10:00-12:00

부산교회 교육관

② 봉사자 및 전 성도 온전하게 하는 훈련
▷ 일시 : 6/4(화) 오후 4:00 ~ 6/6(목) 오후 1:30 
▷ 장소 및 강사 : 성경진리사역원 / 란 캔거스 형제님
▷ 비용 : 숙박 91,500원 / 출퇴근 30,500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5/18(금) 오후 2시까지 입금 후 집사실로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취소 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 한국 복음서원 안내
▷ 2019년 봄 장로들과 책임 형제들을 위한 국제 훈련 집회 양식 및 미니스트리 다이제스트 신청 안내
(전체 주제 :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에서의 하나님의 왕국의 발전)
한글 - 7,500원 / 영어 - 9,500원 / 미니스트리 다이제스트 - 10,000원 / 집회 녹취 음성 SD카드(한글, 영어) - 각 16,000원
※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께서는 4/22(월)까지 한국복음서원으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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