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 5(2019.5.5)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05-03 , 조회 (23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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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목양 - 5

가지들이 열매 맺음으로 
신성한 생명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 사랑함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요한복음 15장의 두 번째 부분-12절부터 17절-은 우리들 서로의 관계를 보여 준다. 15장의 이 부분에서 우리는 가지들이 열매 맺음으로 신성한 생명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 사랑해야함을 본다. 우리는 생명 안에서, 즉 생명에 의한 사랑 안에서 서로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우리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또 우리 안에 있는 생명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이 생명은 주님 자신이시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교회 생활이요, 몸의 생활이다. 몸의 생활은 사랑의 생활이요, 사랑 안에서의 생활이다. 우리는 인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지 말아야 하며, 신성한 생명 안에서 그리고 신성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분리된 많은 나무들의 가지들이 아니고, 같은 나무의 가지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나무와 좋은 교통을 유지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가지들과도 좋은 교통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본 장에서 주님은 또한 서로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일러 주셨다(12절, 17절).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열매 맺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포도나무와 우리의 교통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매 맺을 길이 없는 것이다. 열매 맺으려면 반드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 모두 속에 있는 생명은 한 생명이다.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은 내 안에 있는 생명과 정확히 똑같다. 이것은 물질적인 몸 안에 있는 피의 순환과 유사하다. 우리 몸 안의 피는 우리 몸의 모든 지체들 구석구석에 순환된다. 이처럼 모든 가지들의 속 생명은 하나이다. 이 생명은 모든 가지들을 통해 끊임없이 순환되어야 한다. 그럴 때 모든 가지들이 열매 맺도록 매우 활기 있게 되고 생명의 풍성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가지들은 남아 있는 열매들을 맺도록 택함받고 세워졌음

   가지들은 남아 있는 열매를 맺도록 택함받고 세워졌다. 16절 흠정역은 「세워졌다(appointed)」 대신 「정해졌다(ordained)」는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정해졌다는 용어를 좋아한다. 우리 모두는 정하심을 받았다. 정해졌다는 것은 세워졌다는 뜻이다. 당신은 우리 모두가 정하심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열매 맺도록 정해졌다. 당신은 이렇게 하기에 너무 어리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이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당신은 남아 있는 열매를 맺도록 택함 받았고 정함 받았다. 
   본 장에서는 네 가지 방식으로 열매를 언급하고 있는데, 열매 맺음(2절), 많은 열매(8절), 더 많은 열매(2절), 남아 있는 열매(16절)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열매가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 있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그 안으로 넣어주었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새 신자들 안으로 넣어준 생명의 양에 달려 있다. 이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이 남아 있는가를 결정짓는다. 흔히 우리는 사람들을 주님 안으로 인도할 때 단지 소량의 생명만을 그들 속에 넣어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의 남아 있지 못한다. 그들이 보다 오랫동안 남아 있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들의 이름 안에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가지들은 아들의 이름 안에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남아 있는 열매를 맺으라고 택하심을 받았다. 열매 맺음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반드시 아들의 이름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주의 이름 안에서 간구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그분과 하나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또 그분과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럴 때 우리의 간구가 곧 그분의 간구가 될 것이다. 이런 류의 구함은 열매 맺음과 관계있으므로 분명히 아버지에 의해 응답받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아들과 하나라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구걸하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우리가 그분과 하나라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아들 자신의 어떠하심과 그분의 가지신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요, 우리는 그분의 이름 안에 있다.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아들과 하나 되고, 그분으로 인해 살고, 
그분으로 하여금 그들 안에 사시게 함으로써 

   우리는 아들의 이름 안에서 기도할 뿐 아니라 아들과 하나되고 그분으로 인해 살고 그분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해야 한다. 이 문제는 매우 중대하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생활에 좌우된다.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반드시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기도 안에서 그분과 하나 될 수 있고 또 그분의 이름 안에서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남아 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활과 기도에 의해서이다. 

가지들이 서로 사랑함

   생명은 근원이고 사랑은 조건이고 열매 맺음은 목표이다. 만일 우리 모두가 주님의 생명의 근원에 의해, 주님의 사랑의 조건 안에서 열매 맺으려는 목표를 위해 산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서로 다른 생명의 근원들, 서로 다른 조건들, 서로 다른 목표들은 우리를 서로 사랑하는데서 떨어져 나가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만일 우리가 인간의 생명 안에서 서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초래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감정적인 방법으로나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로 사랑한다면 그것 역시 사망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위임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천연적인 생명 안에서, 우리의 감정으로,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로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신성한 생명 안에서, 신성한 사랑으로, 아버지가 영화롭게 되시도록 많은 열매를 맺으려는 목적을 위해 서로 사랑해야 한다(8절).(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2) 양장 신국판 138-142쪽)

요한복음의 만유를 포함한 그림

   이 복음서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며(1:14), 이 육신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다(1:29).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분은 구속을 성취하기 위한 어린 양이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분은 뱀의 형체 안에 계셨다(3:14). 그분은 옛 뱀을 처리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 달리셨다. 그분의 죽음 안에서 그분은 단지 어린 양과 뱀의 형체 안에 계셨을 뿐 아니라 또한 한 알의 밀의 형체 안에 계셨다(12:24). 한 알의 밀로서 그분은 우리를 포함하는 많은 밀알을 산출하기 위해 죽으셨다. 요한복음 1장 4절에서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생명의 빛이었다(8:12). 말씀이 육신이 되었을 때 그는 은혜와 실재 곧 진리가 충만했다. 
   이제까지 우리는 열 가지의 의미있는 단어들을 보았다. 말씀과 하나님과 어린 양과 뱀과 밀알과 생명과 빛과 은혜와 진리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말씀으로 육신이 되셨다. 이 육신은 우리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어린 양이셨다. 그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심 안에서 그리스도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 뱀의 형체 안에 계셨으며, 그분의 죽음 안에서 그분은 한 알의 밀알로서 많은 밀알들을 산출하기 위해 땅에 떨어지셨다. 이 많은 밀알들은 이제 그분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 생명은 그들의 빛이 되었다. 그들에게 이 생명은 은혜이며, 이 빛은 그들에게 실재를 가져다준다.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은 
우리를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의 부분이 되게 함

   주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여 아버지께 비밀리에 승천하시고 난 후, 그분은 같은 날 육신적인 몸을 갖고 잠겨 있는 방에 비밀스럽게 들어오셨다(20:19). 어떠한 과학자나 학자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 방 안으로 들어 오셨는지 설명할 수 없다. 또한 20장 22절의 제자들 안으로 내쉬어진 주님의 호흡은 이 비밀스럽고 만유를 포함한 분이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20장에는 주님이 제자들을 떠나셨다는 기록이 없다. 그분이 오셨지만 그분은 떠나지 않으셨다. 그들에게 숨을 내쉰 후에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잘 있거라. 다음에 다시 오겠다.” 젊어서 이 장을 읽을 때 나는 여기에서 주님이 제자들을 떠나셨다고 말하는 기록이 없는 사실로 인해 난처했었다. 후에 나는 주님이 그들 안으로 호흡되셨을 때, 그분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분은 더 이상 제자들 밖에 있지 않다. 그분은 그들 안에 있었다. 
   태초에 즉 영원 과거에 그리스도는 공간과 시간에 관계가 없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표현이신 말씀으로 존재하셨다. 그러나 요한복음 끝에서 그분은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 누구도 접촉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육신적인 몸을 가진 분이 닫혀 있는 방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누구도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원칙은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동일하다.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은 비밀스럽다. 이 책의 서두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지금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한 더 이상 그분과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그분과 우리는 하나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분 자신의 일부로 만들었다. 이 하나 됨은 포도나무에 의해 예시된 유기체로서 거룩한 분배 안에 있는 인성을 가진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유기체 안에 있다. 우리 모두는 이에 대한 분명한 이상이 필요하다. 

 유기체 안으로 들어감

   아마 당신은 어떻게 이 유기체를 체험할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이 살아 있는 유기체는 입구가 있는 건물과 같다. 이 복음서에서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유기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과 이 유기체를 체험하기 위한 길을 갖는다. 그 문은 3장 3절과 5절에 있다. 유기체는 왕국이며 왕국은 유기체이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영이 거룩한 영에 의해 거듭남으로 이 왕국, 이 유기체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새로운 출생은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유기체를 체험하는 길

   그 길은 4장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누리고, 그분의 어떠하심의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취해 들이는 문제이다. 그것은 단지 객관적인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주관적인 것이다. 이것은 한편 이 장에서 주님이 경배에 관해 말씀하시며, 다른 한편 생수를 마시는 것에 관해 말씀하시는(14절) 것에 의해 입증된다. 만일 우리가 14절과 24절을 함께 종합해 본다면 생수를 마시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영에 의해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신 생수를 마시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은 그 영이시며, 그 영은 생수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이 생수를 마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마시는 것과 그분을 경배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수 곧 그 영이신 하나님 자신을 마셔야 한다. 
   그 길에 대한 다른 방면은 6장에 계시되어 있다. 그 길은 생수이신 하나님을 마시는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산 떡이신 하나님의 체현인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다. 그분을 먹는 것에 관한 주님의 말씀은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걸림이 되었으며 그들은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60절). 63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 너희의 생명 공급으로 너희 안으로 분배될 수 있다. 이 살아 있는 말씀이 그 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흑백의 문자로 된 죽어 있는 말씀을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살아 있는 영이신 사신 말씀을 접촉해야 한다. 그러므로 유기체를 체험하는 길은 바로 하나님, 즉 그 영을 접촉하고 그분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흘러넘침
   만일 우리가 주님을 접촉하고 그분을 먹고 마신다면 우리는 7장 37절과 38절에서 말씀하신 흘러넘침을 갖게 될 것이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서서 이렇게 외치셨다. 이 어떠한 흘러넘침인가! 그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생수의 강의 흘러넘침을 갖게 될 것이다. 믿는 이들이 받아들인 그리스도께 속한 물은 흘러나는 강이 될 것이다. 이것이 이 메시지에서 우리가 말하는 흘러넘침이다. 
   생명의 흘러넘침은 15장이 아닌 7장에 있다. 그러나 7장에 있는 흘러넘침은 15장에 있는 열매 맺음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접촉하고 그분을 먹고 마심으로 우리는 이와 같은 흘러넘침을 갖는다. 이 흘러넘침은 다름 아닌 삼일 하나님 자신으로써 유기체의 구성 성분이며 우리로부터 나오는 살아 있는 그분 자신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흘러넘침은 우리로부터 살아 내어진 삼일 하나님 자신이다. 

생명의 흘러넘침이 우리의 열매 맺음이 됨

   이제 우리는 생명의 흘러넘침에 의해 열매를 맺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상을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본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의 부분입니다. 날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접촉하고, 그분을 마시고, 그분을 먹고, 그분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바로 이 하나님이 나로부터 흘러납니다.” 이 생명의 흘러넘침은 우리의 열매 맺음이다. 우리의 열매 맺음은 우리로부터 살아 나오시는 하나님이다. 우리가 우리의 친척과 이웃과 동료와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이같은 부류의 생활을 살아야 하며, 이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근에 한 자매는 공항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녀의 풍성한 공급을 간증한 것에 대해 나누었다. 그 여자는 분명히 자매의 간증에 의해 인상 받았을 것이다. 우리 자매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단지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로부터 살아 나오는 삼일 하나님이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친척과 친구들에게 이같은 간증을 한다면, 그들은 생명의 흘러넘침으로 인상 받을 것이며, 이 흐름은 분명히 그들 중 몇 사람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그 흐름으로 주입될 것이며, 이 유기체에 의해 탄생된 열매가 될 것이다. 이것은 속 생명의 흘러넘침에 의한 열매 맺음이다. 
   만일 당신에게 이같은 흘러넘침이 있다면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죄 안에 살며 계속해서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할 것이다. 죄와 세상을 이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심지어는 주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필요조차도 없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이 유기체의 부분이라는 것과 삼일 하나님이 우리 존재 안으로 역사되었다는 것과 우리가 그분의 풍성으로 조성되어 그분의 부분들이 되었다는 것과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가 흘러나온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룩한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며,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의 부분이다. 생명과 본성과 지위에 있어서 우리는 그분과 동일하다. 할렐루야!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하나님을 접촉하고 있다. 그분은 다만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생수로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이시다. 우리가 그분을 마시고 먹을 때 우리에게는 생명의 넘쳐흐름이 있다. 이 흘러넘침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열매 맺음이다. 우리가 접촉하는 자들이 이 흐름을 영접할 것인지의 여부는 하나님의 선택의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선택된 자들은 그것을 영접할 것이며 거룩한 유기체에 의해 탄생된 열매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유기체가 증가하는 방법이며, 하나님의 왕국이 확산되는 방법이다. 이것이 속 생명의 흘러넘침에 의해 열매 맺는 것이 의미하는 바이다.(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2) 양장 신국판 400-407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 기도의 부담
1. 모든 성도들이 참된 제사장 직분을 회복하도록
   (5)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기도함으로 
       신성한 행정을 수행하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성도들 소식
1. #1 
① 침례 - 이남기 형제님이 4/21(주일), 침례 받았습니다.
② 결혼 - 최해선 자매님의 장녀 신영미 자매와 이승환 형제의 결혼식이 5/18(토) 오후 3시, 해운대 센텀호텔 카카오트리 4층에서 있습니다.
③ 결혼 - 송석종 형제님(박경자 자매님)의 장녀 송다은 자매와 이남기 형제의 결혼식이 5/25(토) 오후 1시 30분, 더에스웨딩홀 1층 그랜드홀(부산 남구 전포대로 26, 문현 지하철역 2번 출구)에서 있습니다.
2. #2 - 개업
육광석 형제님, 육형래 형제님이 5/3(금), 밀워키 부산서비스센터(부산 사상구 광장로56번길 60-10 3층)를 개업 했습니다.(육형래 010-5480-9144)
3. #3, #6 - 결혼
3구역 전인철 형제님(강미희 자매님)의 장남 전대웅 형제와 6구역 박정우 형제님(김상열 자매님)의 장녀 강지연 자매의 결혼식이 5/25(토) 오후 2시, 성경진리사역원(용인)에서 있습니다.
※ 전세버스 출발 : 5/25(토) 오전 8시 30분, 장산역 1번 출구에서 출발(김상열 010-6680-9669)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

■ 2019년 국제 가을 장로훈련 및 섞임여행 안내
▷ 일시 : 10/3(목) 오전 9시 ~ 10/5(토) 오후 7시
▷ 출국 및 귀국 예정 : 10/1(화) ~ 10/13(주일)
▷ 장소 : 인도 뱅갈로루
▷ 기부금 : USD 190
▷ 대상 : 동역자, 장로 및 책임형제들, 장로들에게 추천받은 형제
▷ 섞임 여행 : 뱅갈로루 (10/7~12, 566,400원(USD 472))
(섞임 여행은 신청접수 후,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단체항공 일정도 확정된 섞임 여행 일정에 맞춰 변경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상기 비용은 해당 섞임 여행에 7명 이상 참석 시 적용되는 금액입니다.)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5/20(월) 오후 2시까지 신청금 250,000원을 입금 후 집사실로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섞임 여행 신청자들은 신청 시, 상기 섞임 여행 비용을 추가로 입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취소 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으니, 신중히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아침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변경 안내
5/6(월)부터 2019년 봄 장로들과 책임 형제들을 위한 국제훈련 양식(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에서의 하나님의 왕국의 발전)으로 변경됨을 알려드립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삼하 9:1 ~ 삼하 22장
2. RSG(신약 회복역) : 요 17:14 ~ 요 21:14
3. 라이프-스타디 : 요한복음 M47 ~ M48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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