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 6(2019.5.12)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05-10 , 조회 (21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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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목양 - 6

양육함의 보상 

양육하는 사역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어린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양육함이다. 이 장에서 바울은 믿는 이들을 양육하며 소중히 기르고 있다. 그의 글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 유모와 권면하는 아버지처럼 처신했다. 한편으로 그는 양육하는 어머니였고, 다른 한편으로 그는 권면하는 아버지였다. 그의 주된 관심은 가르침이 아닌 어린 성도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양육하는 사역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은 그들의 사역이 주로 가르침의 사역이 아닌 양육하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부족하다. 사역에 관한 바울의 관념은 믿는 이들을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고린도전서 3장에서, 그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사역에 대한 바울의 관념은 그것이 생명의 사역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학교에서의 사역이 아니라 반대로 농장이나 과수원이나 정원에서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주로 다른 이들을 가르치거나 그들을 교육시키는 사역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은 주로 교육과 어느 정도 교화를 위한 것이다. 이 교화는 직접적으로 생명에 관계된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것은 윤리와 도덕과 성격의 개선에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사역에 대한 관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바울은 믿는 이들을 대가족의 구성원들로 간주한다. 물론 가정에서도 어느 정도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어머니나 아버지 모두 그의 자녀들을 가르친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초점은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소중히 기르고 자양분을 공급하며 양육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라게 하는 데 있다. 그들의 성장은 주로 지식에 있지 않다. 대개는 생명 안에서 성장한다. 아이들의 생명이 성장할 때 동시에 그들은 더 많은 교육을 받는다. 그들이 습득하는 지식은 항상 그들의 생명의 성장과 함께 병행한다. 그들에게 조숙한 지식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지식이 그들의 생명의 성장을 앞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사역에 대한 합당한 관념이다. 
   이 문제에 관해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는 우리의 관념을 바꿔야 한다. 회복 안에서 우리가 생명보다 일을 더 높게 여긴다고 생각지 말라. 아니다. 우리는 생명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가족이다. 교회는 또한 농장이나 정원에 비교할 수 있다. 가정은 자녀들이 자라나는 곳이며 과수원은 나무들이 자라 열매를 맺는 곳이다. 2장에 있는 바울의 관심은 그의 자녀들의 성장에 있다. 그는 어린 신자들이 자랄 수 있도록 그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우리는 또한 그가 연하고 어린 식물들이 생명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그것에 물을 주고, 자양분을 공급하며, 양육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믿는 이들에게 많은 양의 가르침을 주는 대신 생활의 본을 제시한다. 이러한 합당한 생활의 본은 사실상 바울 자신이다. 

본받음으로 성장함

   어떤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믿는 이들은 자신에 대한 간증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 교사들에 의하면 우리의 체험을 간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회개하여 주님을 믿었으며 은혜를 받고 구원받았는가를 말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들 교사들은 우리는 단지 주 예수를 전파하고 성경을 가르쳐야 할 뿐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바울은 분명히 자신에 대해 말한다. 그는 데살로니가인 가운데서 그의 생활의 강한 간증을 보여 준다. 그는 그들 가운데 사도들이 온 것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그들로 기억하게 한다. 왜 바울은 이것을 강조했는가? 그가 이것을 강조한 것은 어린 신자들에게 합당한 생활의 본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장로들과 인도하는 자들이 바울의 예로부터 우리가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기 바란다. 각 지방 교회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있기 위한 몇몇의 본, 곧 몇몇의 모형이 있어야 한다. 
   1장 6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라고 한다. 본받음은 성장과 관계된다. 사실 여러 가지 면에서 본받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와 형들이나 누나를 본받는다. 어린 자들은 어떤 것도 발명해내지 않는다. 대신에 다른 이들을 본받는다. 이에 대한 아주 좋은 예로는 언어의 구사가 있다. 자녀들은 그의 부모들이 말한 언어를 배운다. 그들은 동일한 억양으로 동일한 언어를 말한다. 자녀들은 모방함으로 언어와 억양을 배운다. 이것은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를 본받음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예시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본받는 것은 실제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들은 많은 것들, 즉 몸짓과 대화와 심지어 성품에 있어서도 그들의 부모를 모방한다. 부모는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본이요, 모형이다. 부모의 모든 어떠함은 또한 자녀의 어떠함이 될 것이다. 

본을 제시함

 새로운 믿는 이들이나 어린 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은 그들을 돌보는 합당한 방법이 아니다. 그들을 양육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이다. 본을 보임으로 당신은 그들에게 물을 주고, 공급하고, 자양분을 주며, 그들을 소중히 기른다. 이것이 양육이다. 만일 당신의 체험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새 신자들에게 성경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지적해 보여 주라.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다윗 등이며, 신약에서는 베드로, 요한, 바울, 디모데 등이다. 우리는 어린 신자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성경에 있는 인물들의 생애를 이 같은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자들이나 어린 자들에게 너무 많은 가르침을 주면 그들을 손상시킬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합당하게 먹이는 것임을 안다. 자녀를 돌보는 것은 구십 퍼센트가 먹이는 문제이며, 십 퍼센트가 가르치는 문제이다. 이것은 또한 교회 안에서 새로운 믿는 이들을 돌보는 데 있어서 우리의 실행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구십 퍼센트는 먹이고 십 퍼센트만 가르치기를 배워야 한다. 먹이는 것은 성경이나 교회 역사로부터 본들을 제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수세기에 걸친 성도들의 전기를 읽음으로 우리는 스스로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일종의 양육을 체험한다. 여기에서의 요점은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그들을 양육하는 가장 좋은 길은 그들에게 합당한 본을 보이는 데 있다는 것이다. 만일 본이 없다면 양육이 있을 수 없다. 오직 본을 가짐으로만 우리는 다른 이들을 먹일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자신을 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자신이 그리스도를 산 것으로 그의 영적인 자녀들을 먹이고 있었다. 이것은 바울의 생활 방식이 그의 영적인 자녀들을 먹이는데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그가 자신이 데살로니가에 온 것과 그의 전파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길과 그의 생활 방식을 강조했던 이유였다.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

2장 13절에서 바울은 사도들의 전파의 근원과 기원이 하나님이지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사도들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가 전파하거나 가르칠 때 우리가 말하는 것이 사람의 말이 아닌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통제하는 원칙을 본다. 1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이들 안에서 역사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으며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히 4:12) 그것은 믿는이들 안에서 역사한다. 우리가 말씀을 영접하고 받는 순간 그것은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교회들을 본받는 자들

   14절에서 바울은 모든 교회들 안에서 같은 것을 가르쳤다(고전 4:17, 7:17, 11:16). 이것은 모든 교회들이 똑같은 예수의 간증을 지녀야 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는 동일한 종류의 등대들이다(계 1:9, 20).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는 유대에 있는 교회들을 본받았다. 유대에 있는 교회들에 관한 보고가 데살로니가에 있는 믿는 이들에게 도착했음에 틀림없다. 만일에 데살로니가인들이 유대에 있는 교회들에 관해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들이 유대에 있는 교회들을 본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교회들과 성도들에 관해 들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보고는 데살로니가의 믿는 이들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다시 한번 우리는 어떤 것도 다른 성도들과 교회들에 관한 참된 이야기만큼 교회나 성도를 양육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본다. 
   14절에서 바울은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은 것처럼 데살로니가인들이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것은 안위하고 힘을 주며 양육하는 말씀이다. 바울이 이 글을 썼을 때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는 고통과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핍박 가운데서 그들은 유대에 있는 자들의 고통에 대해 들었다. 이 보고는 그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그들을 안위했고 견고케 했다. 이것은 그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소망과 기쁨과 면류관

   19절과 2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 앞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19절에서 강림(coming)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임재를 의미하는 파루시아(parousia)이다. 주님의 강림하심은 우리와 함께하는 그분의 임재이다. 이러한 빛 가운데서 이들 초기의 두 서신이 쓰여졌다. 첫 번째 서신의 각 장은 주님의 다시 오심으로 끝맺는다. 
   20절은 사도들이 믿는 이들의 유모이고 권고하는 아버지이기 때문에(7, 11절) 그들의 자녀인 믿는 이들은 그들의 영광과 기쁨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을 떠나서는 사도들에게 소망이나 영광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없었다. 
   여기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희는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의 기쁨이며 자랑의 면류관이다. 형제들아, 우리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무 것도 위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에게 너희들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너희는 우리의 소망이며 너희의 소망은 바로 주님의 다시 오심이다. 너희가 없다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기쁨이나 영광이 부족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는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면류관이며,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주 예수 앞에 우리의 영광이다.” 다시 한번 바울은 그의 자녀들을 돌봄에 있어서 깊은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실로 그의 자녀들을 권면하는 아버지였다. 권면하는 아버지로서 바울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이들아, 우리는 오직 너희를 위해 여기에 있다. 너희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만일 너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심지어 살기조차 원치 않는다.” 부모로부터 나오는 이 같은 말은 깊은 곳을 만진다. 그것은 자녀들의 마음을 만진다. 
   만일 당신의 부모가 당신에게 이러한 말을 썼다면 당신의 깊은 곳에 느낌이 없겠는가? 너희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며, 이 땅에서 오직 너희만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의 깊은 곳에 느낌이 없겠는가? 틀림없이 이러한 말을 듣거나 읽을 때 당신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자녀들을 양육하며 그들을 성장하도록 돕는다. 
   좋은 아버지로서 바울은 자녀들의 마음을 만지는 법을 알고 있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만질 수 있다면 당신은 그들을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다른 이들을 양육하는 가장 좋은 길은 그들의 마음을 깊이 만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

   12절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왕국을 그 목표로 하는 생활임을 가리킨다. 우리는 우리를 그분의 왕국과 영광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합당히 행할 필요가 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목표가 있으며 이 목표는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이 목표, 이 목적지를 향해 행동하고 있다. 우리의 목적지와 우리의 장래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신약에 있는 주요 항목인 왕국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함의 유일한 목표이다. 
   우리의 목표는 하늘이 아니다. 신약에 의하면 왕국이 우리의 목표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셨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를 그의 왕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부르셨다고 말한다. 이 왕국은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다. 우리가 왕국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확실히 영광 안에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하나님의 왕국은 소위 천당이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 
   새 신자들에 대한 바울의 사역은 그들을 자양분으로 공급하고 그들을 소중히 길러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도록 양육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그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이다. 

보상을 받음

   19절과 20절에서 바울은 믿는 이들을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도록 양육함에 있어서 주님과 함께 역사한 자들은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보상은 우리의 면류관과 영광과 기쁨이 되는 우리가 양육한 믿는 이들일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 사역자에게 있어서 그가 양육한 자들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성숙하게 자랐다면 그것은 그에게 어떠한 영광이 되겠는가! 이것은 그에게 어떠한 면류관과 기쁨이 되겠는가! 그러나 반대로 믿는 이들 가운데 아무도 자라거나 성숙하지 않았다면 어떠한 부끄러움이 되겠는가!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어린 성도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 믿는 이들의 성숙함이 우리 일의 결과이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합당하게 성숙한다면 그들은 왕국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 성숙은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주 예수 앞에서 우리의 면류관과 기쁨과 자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믿는 이들과 함께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상황이 이러하다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사역의 결과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일의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또한 우리의 보상과 우리의 면류관과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다. 
   베드로전서 5장 4절에서 우리는 똑같은 원칙을 본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장로들은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상은 그들의 장로 직분의 결과에 달려 있다. 그들의 장로 직분의 결과로 성도들이 성숙하게 된다면 그 성숙은 장로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은 그들의 상급이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은 우리 모두를 위한 건강한 말씀이다. 이 장으로부터 우리는 어린 자들과 새로운 자들이 자라 성숙하도록 양육하며, 또한 주님이 오실 때 주 앞에서 우리의 일이 적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어떻게 그들에게 사역하는지를 배운다. 그럴 때 이 결과는 오늘날 우리의 일의 보상으로 우리의 면류관과 영광이 될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3)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금주의 추구

■ 기도의 부담
1. 만명의 다음세대 제사장들을 얻도록
   (5) 모든 다음세대들이 기도와 말씀에 친근하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성도들 소식
1. #1 - 침례 
청대2 소그룹 이재민 형제가 4/27(토), 침례 받았습니다.
2. #3 - 득녀
장전1 소그룹 손경우 형제님(김지혜 자매님) 가정이 5/1(수), 득녀하였습니다.
3. #6 - 장례
최규호 형제님(정예원 자매님)의 모친 장영숙 자매님의 장례를 5/11(토), 경기 일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무사히 치뤘습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삼하 23:1 ~ 왕상 8장
2. RSG(신약 회복역) : 요 21:15 ~ 행 4:31
3. 라이프-스타디 : 요한복음 M49 ~ M50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요 4

알리는 말씀

■ 2019년 전반기 전국 특별집회 및 전국 봉사자, 전 성도 온전하게 하는 훈련 재 안내
① 전국 특별집회 : 6/2(주일) ~ 6/9(주일)

내용

일시

메시지

시간

장소

인천, 경기

6/2(주일)

C1

10:00-12:00

성경진리사역원

서울, 강원

6/2(주일)

C2

15:00-17:00

광주, 호남

6/7()

C3

19:00-21:00

장성문화예술회관

대전, 충청

6/8()

C4

10:00-12:00

대전교회 학생센터

대구, 경북

6/8()

C5

16:00-18:00

대구 호텔인터불고

부산, 경남

6/9(주일)

C6

10:00-12:00

부산교회 교육관

② 봉사자 및 전 성도 온전하게 하는 훈련
▷ 일시 : 6/4(화) 오후 4:00 ~ 6/6(목) 오후 1:30 
▷ 장소 및 강사 : 성경진리사역원 / 란 캔거스 형제님
▷ 비용 : 숙박 91,500원 / 출퇴근 30,500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5/18(금) 오후 2시까지 입금 후 집사실로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취소 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 부산교회 중고등부 봉사자 모임 안내
▷ 일시 및 장소 : 5/12(오늘) 오후 4시 남구학생센터
▷ 대상 : 각 구역 중고등부 봉사자 및 열린 가정(저녁 식사 제공)

■ 부산교회 중고등부 섞임집회 안내
부산교회 중고등부 섞임집회가 5/18(토) 당일로 2구역 하단집회소에서 오후 5시 30분부터 있습니다. 주변의 청소년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고, 집회 중 학부모 모임도 계획되어 있으니 학부모님들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 부산교회 청년직장인 연합집회 안내
▷ 일시 및 장소 : 5/18(토) 오후 6시 남구학생센터
▷ 대상 : 대학 졸업자 ~ 만 35세 이하, 열린 가정(저녁 식사 제공)

■ 한국 복음서원 안내
▷ 다음세대를 위한 성경(중급) 데살로니가전서 ~ 히브리서 편 신청 안내
- 가격 : 8,000원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에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부산교회 5월 일정 안내
① 구미교회 성도(30여명) 6구역 방문 [5/18(토)~5/19(주일)]
② 서울교회 성도(60여명) 4구역 방문 [5/25(토)~5/2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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