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1(2019.9.1)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08-30 , 조회 (18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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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1
  
생명과 생명의 말씀

   요한일서 1장 2절은『이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난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는 보았으며, 이제 증언하며 여러분에게 전해 줍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의 「생명」은 앞 구절의 「생명의 말씀」과 동의어이다. 생명과 생명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인격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분은 영원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시간 안에서 육체 되심을 통해 나타나셨는데, 사도들이 보고, 믿는 이들에게 증거하고 전해 주었다. 1장 2절에서 요한은 생명이 나타났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영원한 생명의 나타나심은 그리스도의 육체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요한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시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단을 대항하여 믿는 이들에게 예방 접종 하기 위한 해독제로서 그것을 그의 복음서에 강하게 역설했다(요 1:14). 그러한 나타나심은 생명의 말씀이 만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부합되며(1:1), 주님의 인성의 실체적인 본질을 거듭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약 경륜 안의 신성한 생명의 나타남이다.

영원한 생명

   나타나신바 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영원한」이라는 말은 비단 영존하고 끝없는 시간의 지속을 의미할 뿐 아니라 어떤 부족이나 결함이 전혀 없는 절대적으로 온전하고 완전한 질(質)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표현은 신성한 생명 곧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영원한 본질을 강조한다. 사도들은 이 영원한 생명을 보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전했다. 그들의 체험은 어떠한 교리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속한 것이며, 그들의 증거와 말씀 전파는 신학이나 성경 지식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견고한 생명에 속한 것이었다. 이미 지적했듯이 영원한 생명이란 시간상으로 영원할 뿐 아니라 질(質)의 면에서도 그러하다. 이 생명은 또한 그 영역의 면에서도 영원하다. 그러므로 영원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시간, 공간, 질-를 나타낸다. 시간의 요소에 있어서 이 생명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 공간, 즉 영역에 있어서 이 생명은 광대하고 한계가 없다. 질(質)에 있어서 영원한 생명은 결함이나 부족함이 없이 온전하고 완전하다. 영원한 생명의 영역 혹은 범위는 전 우주를 에워싼다. 영원한 생명은 매우 광대하므로 생명의 범위 전체를 망라한다. 생명의 범주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 영원한 생명에 싸여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 생명은 매우 다르다. 우리의 생명은 일시적일 뿐 아니라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은 일시적이지도 않고 제한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시간상으로 영존하며 공간상으로 무한하다. 더욱이 우리의 생명은 많은 결함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성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은 결함도 부족함도 없다.

파괴될 수 없음

   영원한 생명은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이다(히 7:16). 그 무엇도 이 생명을 파괴하거나 해체할 수 없다. 그것은 무궁한 생명으로서, 영원하고 신성하며 피조되지 않은 생명이요, 죽음과 음부의 시험을 통과한 부활 생명이다(행 2:24, 계 1:18).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은 이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끝내버렸다고 생각했다. 종교 지도자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졌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힘은 이 생명이 번성되고 번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이 생명은 무한하기 때문에 결코 정복되거나 굴복되거나 파괴될 수 없다.

하나님의 생명임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다(엡 4:18, 벧후 1:3). 우리는 이 생명이 사실상 신성한 사랑과 신성한 빛을 내용으로 가진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생명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것인데(롬 8:2), 특히 그것이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의 생명이 될 때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심

   영원한 생명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생명은 단지 어떤 사물이나 물체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이다. 신성한 생명은 아들 안에 표현되신 하나님 자신이다. 요한일서 5장 12절은,『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라고 말한다. 체험 가운데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 자신의 아들이심을 안다.

영원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심

   요한일서 1장 2절은 영원한 생명이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고 말한다.「함께」라고 번역된 헬라어는「프로스(pros)」(직접 목적격에 쓰임)이다. 그것은 행동의 전치사로서 누구와의 연합 안에서, 누구와의 교통 안에서 살고 행동하는 것을 암시한다. 아들이신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 안에서 아버지와의 연합과 교통 안에서 살고 행동하셨다. 이 말은 요한복음 1장 1절과 2절에 일치한다. 아버지는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데 그분으로부터, 그분과 함께 아들은 아버지께서 이 생명에 참여하고 누리도록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생명으로서 나타나셨다. 영원한 생명의 이러한 측면들을 분석하려고 애쓰는 대신에 우리는 그것들을 영적인 요리의「코스들」로서 누려야 한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원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누림을 위해 최소한 네 가지 요리 코스를 갖는다. 그것은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 영원(永遠)이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 이 모든 놀라운 요리 코스들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내 체험에 따르면, 그것들을 누리는 최상의 방법은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4장 18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란 말씀을 기도로 읽어 보라. 당신은 기도로 읽을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오, 하나님의 생명! 아멘! 지금 나는 하나님을 누립니다. 나는 그분을 내 생명으로 누립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할렐루야, 생명! 할렐루야, 하나님의 생명! 할렐루야, 하나님의 생명의 누림! 생명이신 하나님의 누림!』

사도들에게 나타나심

   요한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던 생명이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영원한 생명의 나타남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계시하고 분배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이는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 안으로, 즉 아버지와의 연합과 교통 안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전에는 감추었던 것이 사도들에게 나타났다. 사도들 중 하나인 요한이 지금 우리에게 신성한 비밀들을 밝히고 있다. 만일 우리가 말씀을 기도로 읽기를 통해 먹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나타남이라는 은택을 받게 될 것이다.

사도들이 보았고 믿는 이들에게 증거하여 전함 

    사도들은 영원한 생명 곧 나타난바 된 생명을 보았고, 그런 다음 이 생명을 믿는 이들에게 증거하고 전했다. 그들이 전한 것은 그들이 듣고 배운 신학이나 교리가 아니라 그들이 실지 체험에서 보았고 증거한 신성한 생명이었다. 이 신성한 생명은 하나의 인격이시며, 삼일 하나님의 바로 그 체현으로서 우리의 생명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것임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것이다. 요한일서 2장 25절은,『그분께서 직접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은 3장 15절, 4장 14절, 10장 10절 같은 구절에 약속되었다. 디도서 1장 2절에서 바울은,『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를 말한다. 이 영원한 생명의 소망은 영원 가운데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하신 약속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영원 전에 아버지께서 그분의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아들에게 약속하셨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해방됨 

   영원한 생명은 약속되고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해방되었다(요 3:14-15). 신성한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졌고 제한되었었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을 통해서 이 신성한 생명이 그분 속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믿는 이들에게 분배됨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그분 속으로부터 해방된 영원한 생명은 그분의 부활을 통해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되었다. 이에 관해서 베드로전서 1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크신 긍휼에 따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살아 있는 소망을 갖도록 하셨으며,』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이들에 의해 영접됨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해방되었고 그분의 부활을 통해 분배된 영원한 생명은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이들에게 영접된다. 요한복음 3장 15절, 16절, 36절에 따르면, 아들을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믿는 이들의 생명이 되심

   믿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영접한 후에는 이 생명이 그들의 생명이 된다(골 3:4).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그분 자신의 모든 것을 누리고 그분을 표현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분의 신성한 본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분의 생명을 우리의 생명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믿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에 의해 구원받고
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함

   로마서 5장 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면, 이미 화목하게 된 우리는 더욱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화목된 것은 이미 성취되었지만, 수많은 소극적인 것들로부터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는 것은 여전히 매일의 문제이다. 날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 안에서 구원받는다.
   로마서 5장 17절에서 바울은 계속 말한다.『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을 하였다면, 은혜를 넘치게 받고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사람들은 더욱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릴 것입니다.』우리 속에 신성한 생명을 가졌으므로 우리는 이 생명에 의해 구원받을 수도 있고 또한 그 안에서 왕 노릇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신성한 생명 안에서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다스리는 왕들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신의 성질을 다스리기란 어려울 것이다. 많은 이들이『나의 성질을 왕처럼 다스리기는커녕 성질이 나를 다스린다.』고 말하곤 한다. 많은 성도들이 그들의 성질을 다스릴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결코 성질을 내지 않겠다고 결심하거나 굳게 작정하지 말라. 그런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의 성질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이 생명을 잔치로 누리라. 나는 당신이 주님의 이름 부르는 것과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을 섞어서 하도록 권하고 싶다. 만일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주님을 누릴 것이다. 당신이 그분을 누릴 때에 그분은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다스리는 분이 되실 것이다. 그분이 당신 속에서 왕 노릇 하실 때 당신도 그분의 왕 노릇 하심 안에서 왕 노릇 할 것이다. 이것이 당신의 성질을 생명 안에서 다스리는 합당한 길이다.
   단지 성경의 교리와 가르침을 배워서 당신의 성질을 다스릴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을 들을 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당신은 성경 교리를 무시하고, 주님을 부르는 것과 말씀 먹는 것만 높이 올린다. 당신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이 부름과 먹음에 의해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들에게 성질을 이기는 데 교리나 교훈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고 질문함으로 답변하겠다. 성경의 교리들을 아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거듭거듭 성질을 낸다. 나는 당신에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있는 상황을 살펴보라고 청하고 싶다. 그들은 성경 교리나 지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주의 이름 부르는 것과 말씀 먹는 것이 부족하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받고 말씀을 먹음으로써 영양 공급 받는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성질을 내려는 유혹을 받을 때,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 그분께 말하라.『오 주 예수여, 저를 성질내는 데서 구원하소서!』당신이 성질을 내기 전에 주님을 부르고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 훨씬 더 좋다. 당신이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영양 공급 받는다면, 당신 안의 영원한 생명은 소극적인 것들 위에서 왕으로서 다스릴 것이다. 많은 경우에 이것은 당신의 성질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당신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다스림을 체험할 때, 당신의 성질은 죽게 된다.

믿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취함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영원한 생명을 붙잡으십시오. 그대는 이 영원한 생명 안으로 부름 받았으며,라고 명한다. 디모데전서 6장 19절에서 그는『참된 생명을 붙잡으라』고 촉구한다. 영원한 생명을 붙잡는 것은 모든 것에서-우리의 일상생활, 사역, 직업 등에서-우리 자신을 신성한 생명에 고착시킬 필요가 있으며 또 우리의 인간 생명을 신뢰하지 말고 모든 상황에 신성한 생명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믿는 이들이 왕국의 나타남 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음 

   마태복음 19장 29절에서 주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는 것을 말씀하신다.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는 것은 오는 시대에 천국의 나타남 가운데서 신성한 생명의 누림을 상으로 받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영접한 어떤 믿는 이들은 어느 정도 그것을 누린다. 그러나 그들은 충분한 정도까지 그것을 누리지 않는다. 그 결과 주 예수님이 왕국의 나타남 안에서 다시 오실 때 그들은 천년 왕국에 대한 누림을 놓치게 될 것이다. 장차 올 왕국 안에서 신성한 생명의 누림을 놓치는 것은 그 기간 동안 영원한 생명의 누림을 놓치는 것이다.

믿는 이들이 영원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충만히 누림

   영원 안에서 모든 믿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충만히 누릴 것이다. 계시록 22장 1절과 2절에 따르면,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믿는 이들은 신성한 생명을 흐르는 강과 자라는 나무로 누릴 것이다. 강과 나무는 둘 다 우리의 누림을 위한 것이다. 영원토록 우리는 이 신성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계 22:14, 17, 19). 영원한 생명은 현 시대와 장래 왕국 시대와 영원 시대와 관련이 있다. 현 시대에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영접하고 신성한 생명을 산다. 우리가 주님의 갈망에 따라 이 생명을 산다면 또한 장차 올 왕국 시대에서도 신성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결국 모든 믿는 이들은 영원 시대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극도로 누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시대에 영원한 생명을 영접한 사람들이 그것을 합당하게 살지 않고 소홀히 한다면 장래 시대 곧 왕국 시대에서 그들은 신성한 생명의 누림을 놓칠 것이다. 왕국 시대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누림을 놓침으로써 그들은 어떤 공과들을 배우고 훈련받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영원한 생명의 누림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런 다음 궁극적으로 영원 시대에 모든 믿는 이들은 신성한 생명을 충만히 누리게 될 것이다.(요한 일서 라이프 스터디 메시지 4번)

기도의 부담, 금주의 추구

■ 기도의 부담
1. 만명의 다음세대 제사장들을 얻도록
   (4) 열린 가정들과 차상위봉사자들이 다음세대를 목양하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시 132:1 ~ 잠 9장
2. RSG(신약 회복역) : 엡 5:1 ~ 빌 2:30
3. 라이프-스타디 : 사도행전 M29 ~ M30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요 20

알리는 말씀

■ 2019년 후반기 부산교회 성경 세미나 재 안내
▷ 일시 : 9/3 ~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 12시
▷ 장소 : 남구학생센터(경성대부경대역 5번 출구)
▷ 대상 : 부산교회 성도와 진리를 추구하는 부산 시민
▷ 내용 : 빌립보서

■ 라오스 교회들을 위한 헌금 안내
  라오스 대학생들의 필요를 위해 건축된 학생센터 운영과 라오스 교회들 전체의 말씀 공급을 위한 문서 사역을 위해 한화로 연 1천만 원 정도의 재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부산교회는 라오스 땅에서의 주님의 회복의 움직임과 필요를 위해 9월 한 달간 헌금에 동참하기로 교통이 되었습니다. 
  라오스 교회들을 위한 필요가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시고, 부담이 있으신 형제?자매님들은 헌금봉투에 ‘라오스를 위한 헌금’이라고 기재하셔서 헌금하시면 됩니다.

■ 부산교회 대학생 집회 안내
▷ 일시 : 9/7(토) 오후 3시 ~ 5시
▷ 장소 : 남구학생센터(경성대부경대역 5번 출구)
▷ 대상 : 대학생 및 대학생을 관심하는 청년, 봉사자

■ 2020년 달력 및 교회 수첩 신청 안내 
1. 벽걸이용 달력 : 5,500원(예약가)
2. 탁상용 달력 : 5,000원(예약가)
3. 교회 수첩 : 5,000원(예약가)
※ 각 구역 도서 담당자들께서는 9/23(월)까지 수량을 파악하시어 한국복음서원으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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