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4(2019.9.22)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09-20 , 조회 (879)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4
  
우리의 영은 다양한 상태 안에 있음
 
   우리는 영과 혼과 몸의 차이를 보았으며 우리의 영이 전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으로서 영을 통해 영 안에서 영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을 처리하는 것은 양심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깊다. 우리는 육체, 자아, 양심을 처리해야 할 뿐 아니라 가장 깊은 부분인 우리의 영을 더욱 처리해야 한다. 
   영을 처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영적인 사역, 영적인 봉사, 심지어 영적인 생명의 흐름이 우리의 영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사역한 것은 영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즉, 영에 의해, 영 안에서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영에 의해 사역하는 것은 음료를 봉사하는 것에 예시되어 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이에게 음료를 대접하기 전에 손을 씻고 컵을 씻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손 또는 컵이 더럽다면 음료를 더럽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육체, 자아, 양심을 처리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손과 컵을 씻은 후에 우리는 또한 물 그 자체를 정결케 해야 한다. 우리의 손과 입은 절대적으로 깨끗할지 모르나 물 그 자체는 더러울 수 있다. 물을 처리하는 것이 양심을 처리하는 것의 그림이다. 우리가 육체, 자아, 양심을 처리하는 법을 배운 후에 어떻게 영 그 자체를 처리하는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우리의 영은 순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것은 영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영이 순수하지 않거나 올바르지 않다면 아무리 우리가 다른 것들에서 깨끗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더러운 것이 있을 것이다. 
   시편 51편 10절은『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말한다. 우리의 영은 견고해져야 한다. 육체에 문제가 없고 자아에 어려움이 없으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지 모르나 우리의 영이 견고한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겁내는 영이 아니라 능력의 영과 사랑의 영과 맑은 생각의 영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영은 성령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의 영이다. 대적에 대하여 능력의 영이요, 다른 이들을 향하여는 사랑의 영이요, 자신에 대하여는 진지한 생각의 영이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은『형제님들, 어떤 사람이 어쩌다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영적인 여러분은 온유한 영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온유한 영은 영의 어떤 상태이다. 우리의 영은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온유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3장 4절은『온유하고 정숙한 영의 썩지 않을 장식으로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단장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값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잠언 16장 19절은『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영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奪取物)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원문참조)』고 말한다. 낮추는 영은 영의 또 다른 상태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은『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가난한 영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영 안에서 가난해 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7장 1절은『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런 약속들을 가졌으니, 육체와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라고 말한다. 우리는 육체 뿐만 아니라 영의 온갖 더러움에서 깨끗케 해야 한다. 영에 관한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이러한 몇 구절들은 영이 다양한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올바른 상태 안에 유지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영은 견고해져야 하며 능력과 사랑과 진지한 생각의 영이여야 한다. 온유하고, 조용하고, 낮추고 깨끗케 되어야 하며 영 안에서 가난해야 한다. 

혼과 몸을 통한 영의 통과

   사람의 영은 혼과 육체에 의해 더럽혀지고, 영향받고, 손상받고, 망쳐지게 되었지만, 영 그 자체는 육체와 혼처럼 죄 있지는 않다. 우리의 큰 문제는 영 안에 있지 않고 혼과 육체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육체 안에는 죄를 가지고 있고 혼 안에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죄와 자아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큰 문제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영에 직접적인 문제가 있다고 추정할 수 없다. 이 같은 것을 시사해 주는 유일한 구절은 고린도후서 7장 1절로 육체와 영의 더러움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영의 더러움은 영 그 자체의 더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혼과 육체에 속한 것으로서 영에 영향을 준다. 우리 사람의 영이 혼의 영향과 육체의 손상 아래 있으므로 더렵혀진다. 
  우리는 이것을 물의 흐름을 지닌 원천에 비유할 수 있다. 원천과 물 자체로는 깨끗할지 모르나 물은 통로를 통해 흘러야 한다. 통로가 깨끗하다면 물의 흐름은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물은 통로에 의해 더럽혀질 수 있다. 통로가 문제이다. 우리의 영이 우리 온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이지만 우리가 영을 해방하기 위하여 영은 혼과 몸을 통과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이 혼과 몸은 영의 통로들이다. 몸은 거처요 처소로서 혼을 위하고 영을 위한 그릇이다. 영은 혼 안에 포함되어 있고 혼은 몸 안에 거한다. 그러므로 영이 해방될 때 혼과 몸을 통과한다. 심지어 영에 문제가 없을지라도 영의 통로들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우리의 혼이 순수하고 육체에 문제가 없을 때 영은 합당한 방식으로 해방된다.

영은 우리 존재의 실재요 신실함임

   영은 우리 존재의 가장 내적인 부분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바로 중심이요 실재이다. 우리는 종종 마음의 신실함에 관해 말하지만 참된 신실함은 마음 안에 있지 않다. 영은 마음보다 더 깊으므로 참된 신실함은 영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들을 감정들이나 생각으로 접촉할 때 우리는 그들에 대해 신실하지 않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잘 대할 수 있다. 이것은 신실함이 아닌 감정들로 그들을 접촉하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생각이나 논리들로 다른 이들을 접촉할지 모르나 이것 또한 신실하지 않다. 우리가 영 안에서 그들을 접촉할 때 우리는 신실함 안에서 그들을 접촉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 온 존재의 가장 내적인 부분으로부터의 접촉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의 영으로부터 어떤 이를 접촉하고 있다고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는 화를 낼 때이다. 어떤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가장 신실한 접촉이다. 왜냐하면 화를 낼 때가 영을 해방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가장하면서『오 형제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가장이다. 그것은 말에 있는 사랑이요 적어도 이해와 감정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느 날 화를 낼 때 우리 안에 참으로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해방될 것이다. 
   사람들이 영을 해방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영의 해방 없이 감정들이나 생각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 때때로 연단에서 사역하는 한 형제는 오직 그의 생각이나 감정으로부터 사역하며 영의 해방이 거의 없다. 말씀의 사역자들이요 주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우리들은 영을 어떻게 해방하는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심지어 기도집회 안에서도 기도로 말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고려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아-의식, 다른 이들에 대한 고려, 다른 것들 가운데서 언어, 문법, 구성, 내용의 문제들을 갖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고려들 안에 있어서 기도를 표현하는 것을 방해받는다. 때때로 우리는『주여, 나는 너무 약합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말함으로써 단지 제한된 방식 안에서 기도를 표현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입과 생각에서 나온 것이며 영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많은 때 우리에게 성령의 쏟아 부어짐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 영의 부어짐이 우리 위에 임할 때, 우리는 영을 해방하고 우리 온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기도한다. 우리는 단지『주여, 나에게 긍휼을 배푸소서』라고 기도할지 모르나 우리의 영은 이런 기도에 의해 해방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큰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영을 해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은 많은 감정 없이 표현되어 질 수 있다.  
 
순수하고 깨끗한 영을 갖기 위해 영을 처리함

    주님을 섬기고 교회생활을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배워야할 가장 큰 공과가 영을 처리하는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 방식에서 예로 들 수 있다. 한 형제가 성경으로부터 어떤 빛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그를 매우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여서 집회에 올 때 그는 흥분해서 자신을 거의 통제할 수 없었다. 그는 첫 번째 기회를 잡아서 일어나 그의 계시를 해방한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하늘에 속하고 신령한 빛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메시지는 순수하지 않은 영, 정결케 되지 않고 인간적인 흥분, 인간적인 본질과 요소로 충만한 영을 전한다. 그의 메시지는 하늘에 속한 빛 중의 하나이며 심지어 크고 전례 없는 계시이며 교회가 이전에 본적이 없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한 영이 해방되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매우 영적인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해 형제에게 갈 수 있으나 그것을 온유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고, 사랑이 없는 영 안에서 말할지 모른다. 우리의 메시지는 전적으로 올바르고, 선하며 필요한 것일지 모르나 우리의 영은 잘못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영을 처리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볼 수 있다. 우리가 영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사람들에게 순수하고 신성한 물의 순수한 흐름을 줄 수 없다. 우리는 속 생명의 순수한 흐름을 위해 순수한 통로가 결코 될 수 없다. 순수한 통로가 되기 위해 우리 영을 처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메시지에 잘못된 것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우리의 빛은 잘못되지 않으며 우리는 죄가 많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종류의 영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온유하지 않고 순수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고 사랑이 없는 영일 수 있다. 때때로 우리의 영은 진지한 생각의 영이 아닐지 모른다.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의 영일 수 있다. 어떤 형제들이 집회에서 어떤 것을 말할 때 그들이 영의 해방을 갖지만 그들의 영은 어리석음의 영이며 영과 함께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다. 

영에 의해 사람의 참된 존재를 앎

   어떤 사람들이 한 형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물을 수 있으며 우리는 그가 좋은 형제요 그에게 문제가 없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영을 느낄 줄 안다면 우리가 사실상 그 형제가 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묻는다면 나는『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마치 베드로의 갈릴리의 말소리가 그를 표명한 것처럼 나의 어조와 말소리가 중국인임을 인지할 수 있다(마 26:73). 이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들을 때 말뿐만 아니라 그의「어조」, 즉 그의 영을 들어야 함을 예시한다. 많은 때 어떤 사람들은『나는 당신과 어떤 형제에 관해 교통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와 문제가 없고 그를 참소하기 위해 오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그가 참소하고 있음을 분변한다. 그의 말은 참소하지 않지만 그의 영은 그렇다. 만일 우리가 미움의 영을 갖고 있다면 심지어 우리가 그 형제를 사랑한다고 백 번 말한다 할지라도 미움의 영이 여전히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내가 어떤 것을 말하기 전까지는 내가 중국인이라는 것을 확신 할 수 없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우리의 영을 아는 것이 어렵다. 우리의 영을 드러내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표현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은 더욱 드러난다. 사람을 다루는 한 가지 비결은 그들로 말을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로 많이 말하도록 하라 그들이 말하면 말할수록 그들에 관해 더욱 분명해 진다. 그들이 말하면 말할수록 그들의 영이 더욱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들을 뿐 아니라 그들의 영을 듣고, 그들의 영적인「어조」와「목소리」를 듣는다면 우리는 그들이 어떤 영 안에 있는지 알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사람이 모든 것을 분별하는 길이다. 
   우리의 어떠함은 말에 있지 않고 우리의 영에 있다. 우리가 소유한 영의 종류가 우리의 어떠함이다. 우리는『나는 겸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르나 여전히 교만한 영을 가질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교만의 영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결코 참으로 겸손해질 수 없다. 한 면에서 우리가 교만한 영을 갖고 있지 않다면, 교만한 영을 처리했다면 심지어 우리는『나는 아주 교만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매우 겸손하다고 느낄 것이다. 말에서 우리는 교만할 수 있지만 실재에 있어서, 영 안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겸손하다고 볼 수 있다. 때때로 부모는 그의 자녀에게『나는 너를 미워해』라고 말하면서 놀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하면 말할수록 자녀는 더욱 그에게 올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는 부모가 실제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 어떤 사람은『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사랑이 없다. 그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우리는 그가 우리를 향한 사랑이 없음을 더욱 느낀다. 그것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처리해야 한다. 

빛과 순수한 영의 의해 사역함

   사람들을 돕기 위해, 주님을 섬기기 위해, 주님께 속한 것을 사람들에게 사역하기 위해, 교회 생활을 실행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처리해야 하는 참된 필요가 있다. 우리의 영이 옳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영이 올바를 때 우리는 충만한 자유, 충만한 자유로움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의 영이 올바르지 않다면 다른 이들에게 어떤 것도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것이 폭발하려고 하는 폭탄처럼 감추어져 있지만, 우리가 어떤 것을 표현하자마자 폭탄처럼 감추인 것이 나온다. 
   우리 안에 잘못된 것이 없고 우리 영이 다른 이들과 올바르다면 그토록 주의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어떤 것을 자유롭게 다른 이들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형제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와 즐겁지 않다면 우리가 그와 인사하자마자 그는 우리 영에 문제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처리해야 한다. 형제를 향해 우리의 영 안에서 잘못된 것이 있다고 느낄 때마다 주님께 가서『주여 나를 처리하소서, 내 영에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왜 나는 나의 형제를 접촉하기 위한 자유, 평강, 담대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왜 나는 나의 형제를 접촉하는데 있어서 그토록 주의해야 하고 그를 접촉하는 것이 왜 두렵습니까?』라고 말해야 한다. 이 문제의 답은 우리가 영에 잘못된 것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영을 처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동기들, 의도들, 갈망들을 처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을 높이려는 갈망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형제들로 하여금 우리가 위대한 계시를 얻었다는 것을 알게 하도록 하는 갈망을 갖고 있을 수 있으나 겸손하도록 가장하고 있다. 책임 형제들이 와서『말할 것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가장하면서『나는 확실치 않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 안에 모든 시간을 우리의 메시지를 위해 사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갈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 우리의 영은 결코 분명하거나 깨끗하거나 순수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생각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나 우리의 영은 결코 주님의 생각에 관해 분명해 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높이기 위한 기회를 찾기 위해 우리의 마음 안에, 감정 안에 있는 갈망에 의해 매우 난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가 가장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잘못된 영을 가지고 있다. 
   단지 겸손하게 되는 것은 역사하지 않는다. 우리의 갈망을 처리해야 한다. 이 갈망은 십자가 위에 두어져야 하며 십자가를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주여, 당신이 나에게 이 빛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주신 이 빛을 이용하려는 갈망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단순히 당신의 십자가를 이 갈망에 적용합니다. 주여, 그것이 당신께 속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당신이 내게 주신 빛에 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함으로서 이 갈망에 십자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형제들이 말할 것이 있느냐고 우리에게 물어본다 할지라도 우리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참이요 거짓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무엇인가가 있지만 현재 그것을 말할 갈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것을 말하도록 점차적으로 기회를 주실지 모르며 우리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것을 말하도록 내주 하는 그 영이 우리에게 내적인 기름 부음, 내적인 인도를 주실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에 의해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닌 성도들을 세우기 위해 말할 것이고 계시를 해방 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사역할 때 사역은 순수한 흐름이 될 것이다. 생수와 빛이 순수할 뿐 아니라 심지어 통로도 순수할 것이다. 우리는 매우 영적이고 빛이 있으며 하늘에 속한 메시지를 사역했을지 모르나 순수하지 않는 영을 가진 사람, 교만의 영, 자기를 갈망하고 자기를 사랑하며 자기 의도와 자기 높임의 영을 가진 사람일지 모른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 영을 처리하는 공과를 배웠다면 우리의 메시지가 영적이고 하늘에 속하지만 영이 더럽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속하고 영적이지만 순수하지 않은 것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자아로 인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영을 처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 주님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것들을 사역할 줄 아는, 즉 그리스도 주님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모든 것으로 사역할 줄 아는 영적인 형제자매를 필요로 하신다. 그러나 순수한 영 안에서 십자가에 의해 처리함 받은 영 안에서 사역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역하는데 있어서 어떤 잘못된 의도, 야심, 인간적인 동기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올바르고, 영적이며, 하늘에 속하며, 영원한 것을 사역할지 모르나 그것은 잘못된 영 안에 있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생수의 흐름이 해방되어질 수 있도록 영의 통로의 순수케 함의 문제이다. 이것이 우리가 통과해야할 십자가의 가장 큰 점검점이다. 이것이 처리의 마지막 항목이다. 우리는 육체, 자아, 양심, 세상 그리고 영을 처리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영을 처리하는 것은 우리의 동기, 의도, 갈망, 뜻, 관심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의 체험을 위한 기본원칙 218-230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 기도의 부담
1. 모든 성도들이 참된 제사장 직분을 회복하도록
   (5)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기도함으로 
       신성한 행정을 수행하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성도들 소식
1. #1 - 결혼 
이종철 형제님(김영애 자매님)의 장녀 이해인 자매와 조성은 형제(춘천교회)의 결혼식이 10/5(토) 오후 12시 30분, 포항교회집회소 2층(경북 포항시 북구 두호로 52번길 14)에서 있습니다.
※ 전세버스 출발 : 10/5(토) 오전 9시, 금련산역 6번 출구
(김영애 010-5693-1531)
2. #3
① 이사(전입) - 김헌필 형제님(엄경진 자매님)가정이 전남 나주에서 연제구 현대홈타운2차 아파트로 이사왔습니다.
② 침례 - 사직소그룹 김선규 형제(중1)가 9/7(토), 침례받았습니다.
3. #5 - 결혼
손원일 형제님(김혜경 자매님)의 장녀 손영은 자매와 강태영 형제 의 결혼식이 10/5(토) 오후 1시 30분, 아이스퀘어호텔웨딩 3층 클래식홀(경남 김해시 부원동 307)에서 있습니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한국 복음서원 안내
▷ ≪사역의 말씀 다이제스트≫ 창간 및 신청 안내
- 발간 부담 : 매달 정기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사역의 말씀을 제공
- 창간호 특별 예약가 : 7,000원(정가 9,000원)
※ 기존 정기구독자께는 창간호를 무료로 증정하므로 별도의 신청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에게 10/15(화)까지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사 4:1 ~ 사 27장
2. RSG(신약 회복역) : 살후 1:1 ~ 딤전 4장
3. 라이프-스타디 : 사도행전 M35 ~ M36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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