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9(2019.10.27)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10-25 , 조회 (22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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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9
  
바울의 사역의 필요성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하늘에 속한 사역이 수행될 길이 없다. 물론 그리스도의 하늘에 속한 사역이 없다면 바울의 사역은 근거를 갖지 못할 것이다. 이 두 사역은 함께 역사한다. 전자는 하늘에서, 후자는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바울의 사역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사역하신 것들을 반영했다.
   그리스도의 하늘에 속한 사역은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되었다. 2장과 9장 사이에 그리스도의 사역은 진행되고 있었으나, 바울의 사역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뭔가가 빠졌다. 물론 베드로가 사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을 바울의 사역과 비교할 때 우리는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사도행전 9장에는 바울의 중대한 회심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전환은 어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 예수님의 직접적인 관여에 의해 된 것이다.

하늘로부터의 부르심

   히브리서 3장 1절에서 바울은 그의 편지를 받은 히브리인들을, ‘하늘에 속한 부름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님들’이라고 불렀다. 이 ‘하늘에 속한’이란 말은 바울의 부르심이 특별했음을 보여준다. 저 히브리인들은 하늘에 속한 부르심을 받은 동반자들이었다. 
   이것은 땅에서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바울과 비교해서 베드로의 부르심을 생각해 보라.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그의 형제와 고기를 잡고 있었고, 그때 나사렛에서 어떤 사람이 다가와 그들을 불렀다. “나를 따라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람 얻는 어부가 되게 하겠습니다.”라고 주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마 4:18-19). 어렸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 역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를 갈망했다. 물고기를 낚는 어부보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지!
   그러나 바울의 부르심을 상고한 후에, 우리는 그 둘을 비교할 수 없음을 볼 것이다. 베드로의 부르심이 놀라왔으나, 그것은 단순했고 땅으로부터의 부르심이었다. 베드로는 육체 되심 안에 계신 주 예수님에 의해 부르심 받았다. 그 부르심은 이해하기 쉽다. 반면, 바울의 부르심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 다소(Tarsus)의 사울에 대한 부르심은 하늘로부터 왔고, 이 땅 위의 예수님으로부터 오지 않고 승천하시고 영광스럽게 된 하늘에 계신 분으로부터 왔다. 다소의 사울은 강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체포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가 다메섹에 도착했을 때는 한낮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한 줄기의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추므로”(행 22:6). 그는 땅에 엎드러져,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7절)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나는 베드로와 요한과 스데반을 핍박했다. 그러나 내가 핍박한 그들은 다 땅에 있었다. 나는 하늘에 있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내가 그를 핍박한다는 말을 하는가?”
   그래서 그는 물었다. 이 보이지 않는 분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주님, 누구십니까?”(8절)라고 말했다. 대답이 왔다. “나는 예수다!” 사울은 소스라치게 놀랐음에 틀림없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고 장사되었다. 어떻게 그분이 하늘에서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가 살아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울의 부르심이었다. 얼마나 비밀한가!

바울에게 전파된 복음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종교를 끝내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종교는 하나님의 경륜의 대적이다. 당신은 이것을 메시지로 전하는 복음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의심할 바 없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죄 많음과 세상적인 것으로 인해 당신을 정죄한다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당신은 종교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종교는 하나님의 대적이다. 당신이 복음으로 들은 것은 완성하는 사역이 아니다. 복음은 단지 죄와 세상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그는 그의 아들을 당신 안에 계시하시기를 원하신다(갈 1:16). 이것이 완성하는 사역이다. 바울은 부르심 받았을 때 도박을 하거나 남을 속이지 않았다. 그는 곧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율법의 의로 말하자면,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빌 3:6). 그러나 사울은 온통 종교 안에 있었다. 그는 구출될 필요가 있었다. 그에게는 계시가 필요했다. 왜 주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러 오셨는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모두 복음을 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복음 전함은 죄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들은 아마 사울처럼 열성적인 종교인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사울이 주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복음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하늘로부터 온 빛은 먼저 그를 땅에 쓰러뜨렸다. 그리고 한 음성이 물었다.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이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반문했을 때 그 목소리는 대답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사람 예수다.”
   베드로가 그러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자신만이 하실 수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 다소의 사울은 죄가 많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대적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열심이었고 율법에 따라 의로웠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경륜을 대적했다.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가 율법과 종교를 저버리고 우리 안에 계시된 그분의 아들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사울이 부르심 받았을 때 베드로는 이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요한과 야고보도 역시 이것을 충분히 몰랐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 자신이 직접 그를 만지셔야만 했다.

바울의 사역의 필요성

   왜 주님은 바울을 찾고 계셨는가? 주님에게는 그분의 계시를 완성시킬 사도가 필요했다. 많은 가르침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충분히 완성시키지 못했다. 바울을 부르신 목적은 그 계시를 완성할 한 사람을 얻는 것이었다.(골 1: 25).
   바울의 사역이 없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부족했겠는가? 우리는 구약 삼십 구 권과 최소한 신약의 사복음서는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놓쳤겠는가?
   첫째로,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마흔 세 권의 책에서 이 점은 명백하게 강조되지 않았다. 물론 요한복음은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해야 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과 그분이 사시므로 우리가 살 것임(요 14:19)을 언급했다. 그러나 바울의 글이 없다면 이 말씀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셔야 하고 우리 영 안에 사셔야 하며 생명 주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바울이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고 우리의 생명 공급이시며 그분 자신이 우리 안에서 형상을 이루신다.
   둘째로, 바울의 글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으로 계시한다. 성경에서 다른 어떠한 책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체현이나, 모든 창조물 가운데 먼저 나신 자나,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나, 모든 적극적인 것들의 실제로 계시하지 않는다.
   셋째로, 다만 바울의 글들에서만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를 발견한다. 이런 생각은 바울의 사역 전에는 없었다. 이 진리들을 발전시킨 것은 그의 서신서들이다.
   이 세 가지 요점이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이다. 바울의 글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라는 것과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교회는 몸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우리 모두가 바울의 부르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완성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그 둘을 비교할 수 없다. 천주교는 베드로를 높일지 모르나, 그는 결국 다만 사람을 낚는 어부에 불과했다! 나는 바울을 더 높이 평가한다.
                         
나중에 부르심받은 우리가 더 큼

   우리의 부르심도 그와 같다. 우리는 육체 되심의 기간 동안 땅에 계셨던 예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갈릴리 바다로부터가 아닌 하늘로부터 왔다!
   나중 난 자가 더 크다는 것은 하나의 원칙이다. 당신은 침례자 요한에 관한 주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도 요한보다 큽니다.”(마 11:11) 요한은 과거의 신언자들보다도 더 컸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만 못하다. 당신은 자신을 아담이나 모세나 아브라함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들 모두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중에 왔기 때문이다. 나중일수록 더 크다. 먼저 난 사람들은 초기 단계에 있으나 지금 당신은 완성 단계에 있다.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이천 년이 있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까지 또 이천 년이 있었다. 지금 그리스도로부터 우리까지 또 다른 이천 년이 있다. 확실히 우리는 첫번째 이천 년과 두번째 이천 년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데 동의한다. 심지어 세번째 이천 년에서도 처음에 난 자들이 마지막에 난 자들만큼 복되지 않았다! 왜 우리가 가장 복된 자들인가? 우리가 이미 지나간 모든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노아는 아담의 어깨 위에 서 있었고 아브라함은 노아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 모세는 아브라함의 어깨 위에 있었다. 또한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성도들의 어깨 위에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베드로, 바울, 마르틴 루터의 어깨 위에 서 있다! 사실대로 말해, 나는 내가 더 나중에 왔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랬더라면 여러분이 내 위에 있듯이 내가 여러분 어깨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주님의 경륜이 완성되는 시대에 있다. 주님의 회복은 오늘날 그분의 경륜을 완성하고 있다. 회복에 오기 전에 당신이 이 세 가지, 즉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으로서 당신 안에 계심,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심,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몸인 교회를 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오십 년 이상 나는 회복에 있었다. 내 때는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완성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당신의 어깨 위에 놓일 것이다. 당신은 이 완성하는 사역을 계속할 것이다. 그 사역은 주로 우리가 이미 언급한 이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그의 속에서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갈 1:15-16) 말했다. 그가 회심했을 때 하나님은 바울 안에 그리스도를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복음을 전파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예수가 필요한 죄인들이며 하나님께 회개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예수님이 그들의 생명으로 그들 안으로 오셔야 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 안에 사실(live) 그분이 필요하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복음은 불완전한 것이다.
   우리가 말했듯이 다소의 사울은 죄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흠이 없고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이었으나, 그 안에 그리스도가 없었다. 그가 회심할 때 하나님은 특별히 그분의 아들을 그 안에 계시하셨다. 그 후로부터 바울은 달랐다. 그는 문제가 되는 것이 율법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선한 일도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그의 안에 그리스도를 산 인격으로 가져야 했다.
   삼일 하나님의 두번째가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또 하나의 신성한 인격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고 우리 안에 형상을 이루고 우리와 하나 되어 심지어 우리 자신이 되고 우리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하여 우리가 그분이 되도록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야 한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사람들에게 묻는다. “구원받았습니까? 거듭났습니까? 성령을 받았습니까?” 나는 심지어 오십 년 전에도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질문을 하는 것은 좋을 것이다. 복음의 중점은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인격으로 당신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복음 전파가 이것을 놓친다면 당신은 충분하게 전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바울이 회심할 때에 주 예수님은 어떻게 바울에게 그분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심을 가르쳐 주실 수 있었는가? 그분이 하늘에서,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사울이 핍박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일부분이었음을 암시하셨다. 베드로, 야고보, 스데반이 그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사울이 그들을 핍박한 것은 예수를 핍박한 것이었다.
   사울 생각에는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된, 땅에 있는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바로 이 분이 하늘로부터 그에게 오셨다!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심을 더더욱 나타내는 표시가 있다. 그분의 모든 제자들이 그분 안에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은 또한 어디에나 계신다. 그분은 땅 위에 계신다. 그러나 여전히 하늘에도 계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 메시지를 주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전파하셨는지! 그 말씀들은 단순하고 문장은 짧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지! 사울은 자신이 대항했던 이 분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심을 깨달았다. 그분은 믿는 모든 자들일 뿐 아니라 하늘과 땅 어디에나 계셨다. 사울은 그가 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무소부재하신 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머리와 그분의 몸

   사울은 회심할 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어떻게 배웠는가? 반복하거니와,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는 주님의 말씀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라는 것을 그로 하여금 깨닫게 했다. 사울은 “나는 하늘에 있는 누구도 박해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그가 박해한 사람들이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라는 것을 보이셨다. 그들이 그분과 하나였기 때문에 사울이 그들을 건드린 것이 머리를 건드린 것이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의 팔을 때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왜 나를 때립니까?”라고 항의할 것이다. 만약 내가, “당신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팔을 때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보시오, 당신이 나의 팔을 때리면 나를 때리고 있는 것입니다. 팔은 몸의 지체이니까요.” 비슷하게,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사울은 모든 믿는이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다. 사울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난 후에 일어나 두번째로 이렇게 물었다. “주님,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은 그에게,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행 9:6). 이 말씀에 의해서 주님은 사울이 더이상 개인주의적일 수 없음을 보여주셨다. 그는 다메섹으로 들어가야 했다. 거기에서 그가 해야 할 다음 일을 아나니아라는 알려져 있지 않은 믿는이에 의해 보일 것이다. 지금 사울은 그 몸 안으로 인도되었다. 그가 주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 머리로부터 직접 듣기보다는 몸의 지체에게로 가야 했다.
   당신은 바울의 회심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보았는가? 베드로는 단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것을 들었다. 바울의 경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의 부르심에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몸인 교회와 함께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암시가 있다. 이것들이 바로 그가 전파한 세 가지가 되었다. 이 세 가지에 대한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점이 바울의 사역의 구성 요소이다.
   이러한 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볼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 안으로 인도하심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우리는 완성하는 사역이 있는 곳이 여기임을 알게 될 것이다. 바울이 오래 전에 전파한 것이 회복되고 있다. 완성하는 사역 -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 으로 인해 할렐루야를 외치자!(바울의 완성하는 사역 8-14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 기도의 부담
1. 만 명의 다음세대 제사장들을 얻도록
   (1) 다음세대들이 단계별로 그룹 짓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3. 대입 수험생들을 위하여
   1구역 - 이재민, 김가은, 장영주, 박지현, 황수연
   2구역 - 탁준오, 오유경, 김수언, 이채린
   3구역 - 문서원, 김종욱
   5구역 - 정연수, 송다은
   6구역 - 노재연, 김준성, 손세민, 남재현, 서혜성

■ 성도들 소식
1. #2 - 침례 
이순화 자매님, 손미자 자매님이 10/20(주일), 침례 받았습니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아침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변경 안내
  10/28(월)부터 2019년 가을 장로들과 책임 형제들을 위한 국제 훈련 양식(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한 새사람)으로 변경됨을 알려드립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렘 30:1 ~ 렘 43장
2. RSG(신약 회복역) : 약 1:1 ~ 벧전 1:12
3. 라이프-스타디 : 사도행전 M45 ~ M46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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