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10(2019.11.3)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11-01 , 조회 (20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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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10

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임

   우리의 속사람 역시 그릇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담는 그릇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탁월한 능력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5절과 6절에서 우리는 보배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심을 안다. 그분은 질그릇인 우리 안으로 그분 자신을 심으셨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내용인 하나님을 소유한 자들처럼 행하지 않는다.
   좀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상이 우리의 생각을 가로지르기 어렵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때에 우리 모두는 올바르고 공손하고 겸손하며 거스르지 않게 처신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날마다 우리는 부모님께 더 순종하지 못한 것과 급우들에게 더 공손하지 못한 것과 형제자매들에게 더 친절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여긴다. 우리는 영적인 노선들, 즉 새벽 시간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이나 성경을 읽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관하여는 훨씬 더 생각할 것이다. 항상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상에 대하여는 어떠한가? 이러한 생각이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우리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자매를 사랑할지라도 우리 안에 하나님이 담겨져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빈 상자와 같다. 잘못된 노선 안에 있는 자들은 불신자들만이 아니다. 노선을 벗어난 자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다.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도 역시 많은 때 노선을 벗어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나 친절한 것에 대한 용어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담도록 정하심 받았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너무도 쉽게 표적을 놓친다. 우리는 행위에 대한 이러한 모든 생각에서 돌이켜 오직 하나님으로 충만되는 것만을 주의하기를 배울 필요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음식, 물, 공기로 예시한다. 우리는 먹는 음식과 마시는 물과 숨 쉬는 공기를 받아들이듯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분으로 충만되어야 한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우리 중에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과 하나님을 호흡하는 것에 관해 찬송을 많이 지었다. 이 찬송 안에 있는 사상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찬송가에서는 빠진 것이다. 하나님을 먹는다는 사상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칠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는 그들에게 계시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생각하여 그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그분의 긍휼의 그릇으로 그분에 의해 선택되었다. 또한 우리는 긍휼의 그릇일 뿐만 아니라 영광받기로 예비 된 그릇이다. 바울의 글만이 아니라 신약 이십칠 권 전체가 우리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라는 사상을 전달해 준다. 

육체 안에 나타난 하나님

   “모두가 인정하듯이, 경건의 비밀은 위대합니다! 그분은 육체로 나타나셨고, 그 영 안에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모든 민족 가운데 전파되셨으며, 세상이 그분을 믿었으며, 그분은 영광 안으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딤전 3:16)
   이 하나님은 육체로 나타나신바 되셨다. 이러한 표현은 단지 그리스도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언급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나타나는 육체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단체적인 육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나타날 수 있는가? 우리가 그분을 취해 그분으로 충만 됨에 의해서이다.
   이것이 당신의 하나님이요 나의 하나님이다. 이것이 바울의 하나님이었다. 그가 회심하기 전에 바울의 하나님은 하늘에 멀리 떨어져 계셨다. 이제 바로 그 사도의 하나님은 부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존재 안에 그분의 집을 만드심으로 당신을 적시고 당신 안으로부터 그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이다.

반대되는 우리의 천연적인 관념

   이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계시하는 하나님에 관한 중심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중심 이상과는 다른 우리 자신의 천연적인 관념이 있다. 이에 대한 열한 가지 항목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을 ‘경배함’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천연적인 관념은 그분이 경배를 받으신다는 것이다. 피조물인 사람은 마땅히 전능한 창조자를 경외해야 한다. 이것은 고상한 생각이다. 그러나 좀 빗나간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외적으로 그분을 경배하는 자들로 만족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은 사람을 그분의 그릇으로 갖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주 예수님이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녀는 대화의 주제를 그녀의 죄 많은 삶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 돌렸다. 그녀와 대화하시면서 주님은, 하나님을 경배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신 생수를 마셔야 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합당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분을 마시는 것이다. 그분을 더 마실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 경배한다. 그분을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경배만 하는 것은 가련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으시다. 외면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사람의 천연적인 관념일 뿐이다.

2. 윤리적임

   사람은 동물이나 원숭이로 창조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 높은 생활의 형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높은 도덕 수준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 윤리적이고자 하는 이 갈망은 천연적이며 좀 벗어난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원하시는 것은 도덕적으로 처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수준은 당신의 수준보다 훨씬 높다. 그러할지라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갈망은 윤리적이고자 하는 관념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3. 종교적임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 원한다. 그는 그의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기 원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위해 하려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이 그분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벗어난 것이다.

4. 경건함

   당신은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가 경건의 시간 갖는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했을지도 모른다. 그 영 없이 경건하게 되는 것은 모두 빗나간 것이다.

5. 독실함

   독실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따른 어떤 방식으로 처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독실하게 되려는 관념은 갈망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매우 강하다. 독일에 경건주의자라 칭하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경건함을 실행하고자 추구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우리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경건은”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반박하려 할지도 모른다. 경건하고 독실한 양식으로 행해야 한다는 이 관념이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지! 그러나 그 영 없이 독실하게 되는 것 역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 노선에서 벗어난 것이다.

6. 거룩함

   종파는 이러한 관념으로 둘러싸여 형성되어 왔다. 그런 곳에 속한 자들은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불린다. 그들이 의미하는 거룩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일원은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아야 하고 화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자신을 잘 가려야 한다. 이러한 것이 거룩하게 되는 것에 대한 그들의 관념이다.

7. 성경적임

   형제회는 이것을 그들의 표준으로 삼는다. 그들은 일이 성경적인가 비성경적인가를 검토한다. 이는 옳은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당신의 이해가 옳다 할지라도 당신에게 그 영의 실재가 없다면 어쨌든 당신은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의 중심 이상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다.

8. 영적임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영적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있다. 사실상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말하기는 어렵다.

9. 능력 있음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적인 능력을 가진 것으로 자처하는 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들 보기에 어떤 복음 전도자는 능력 있는 전파자이다. 그에게 능력이 있을지 모르나 생활에 있어서는 여전히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의 중심 이상으로부터 거리가 멀다.

10. 기적을 높이 평가함

   병 고침과 방언 말하는 것과 신유도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기적에 빠진 자들도 거리가 먼 것이다.

11. 하나님을 섬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관념, 그리스도를 위해 영혼을 구원하려고 선교지로 나가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관념 역시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구약의 관념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리라고 여긴 어떤 형제가 최근에 우리를 방문하여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에덴동산은 기쁨의 동산이다. 이는 생명나무와 흐르는 강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곳에서 사람과 함께 걷고 계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후에 나는 그 형제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강조점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에덴동산은 낙원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거기에서 사람과 함께 걷고 계셔서만이 아니라 거기에 생명나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명나무는 어느 날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이 되기 위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과 음식으로 사시는 것보다는 훨씬 낮은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아담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행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그 이상이었다.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담 안에 들어와 아담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삶’이라는 책에서 로렌스 형제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것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구약에 따른 것이다. 신약에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산다는 용어가 없다. 신약은 우리에게 영 안에서 행하라고 말한다(롬 8:6). 하나님의 임재를 실행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분과의 한 영을 살아야 한다(고전 6:17). 차이점을 아는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약의 관념이다. 신약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이다. 내가 행할 때 그분도 나와 함께 행하신다. 그분이 행할 때 나도 함께 행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작은 목소리를 귀히 여긴다. 그들은 이것이 주님이 그들을 인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반복하거니와 이것은 구약의 관념이다(왕하 19:12). 우리는 세미한 음성을 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안에 거하심(롬 8:11)과 기름 부으심이 있다. 이는 우리 안에 거하신다(요일 2:27). 이것은 작고 세미한 음성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 안에 아직 들어오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은 이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하나이며, 우리를 그분 자신과 한 영이 되게 하셨다! 당신은 하나님과 함께 행하기를 추구하라는 메시지를 들을 때 큰 도움을 받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 당신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당신은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의 중심이상으로 가까이 오는데서 빗나가도록 도움을 받은 것이다. 만일 바울이 그 메시지를 들었다면 그는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형제여, 더 이상 계속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에덴동산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나는 내가 말하는 바를 당신이 붙잡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안다. 낡은 관념이 당신의 눈을 덮었고, 당신의 생각을 점령했고, 당신의 생활 방식을 지배한다. 당신은 그러한 배경으로부터 왔다. 당신은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삼백 년 동안 동행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당신은 엘리야가 어떻게 작고 세미한 음성을 들었는지를 기억한다. 당신은 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당신은 얼마나 그들처럼 되기 원하는지!
   엘리야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여! 너희를 사모하는 것은 나다. 침례자 요한도 나보다 더 위대했다. 너희는 침례자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너는 왜 나와 같이 되려고 하는가? 침례자 요한이 나보다 더 위대했던 것은 그가 그리스도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가까운 것만이 아니라 그분과 한 영이다! 내가 너희보다 더 위대하냐? 나는 너희를 따르기 원한다. 나는 작고 세미한 음성을 포기하기 원한다. 나는 안에 거하심에 따라, 기름부음에 따라 그 영에 따라 행하기 원한다. 

중심 이상에 집착함

   사도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의 중심 이상은 우리의 내용이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이다. 종교적이든, 윤리적이든, 경건한 것이든, 영적이거나 거룩하든, 독실한 것이든 우리의 천연적인 관념은 모두 제쳐 놓아야 한다. 심지어는 좋은 집회를 하거나 강한 봉사를 하는 것도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집회들과 봉사는 근원으로부터 나와야 하고 그 결과는 교회이다.
   주님의 회복은 중심 이상이다. 1970년, 성공적인 이주를 한 뒤 우리는 회복의 확장을 관심하기 시작했으며, 중심 이상을 어느 정도 소홀히 하게 되었다. 회복이 빗나갔기 때문에 이로 인해 나는 주님께 많이 회개했다. 그분의 긍휼로 그분은 일들을 깨끗이 청산하셨고 우리를 다시금 올바른 노선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주님은 회복의 확장과 인수의 증가에 대해 너무 많이 격려하지 말라고 나를 책망하시고 권면하셨다. 나는 이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아왔다. 회복을 생명 안에서 자라게 두라. 우리의 행함이 아닌 생명으로부터 난 자연적인 확장과 합당한 증가가 있을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지적하셨다. “작은 자여, 내가 땅에 있었을 때 나는 사역의 확장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한 것은 다만 나 자신을 소수의 무리 안으로 생명으로 뿌린 것이었다. 결국 사도행전 1장에서 내게는 단지 백 이십 명밖에 없었다. 많지 않았다.” 주님이 삼 년 반 동안 수고하신 후에 백 이십 명밖에 거두지 못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확장하고 증가시키려고 총력을 기울인 이래, 백 이십 명은 어디 있느냐? 네가 간 후에 백 이십 명은 어디에 있느냐? 누가 올바른 노선에서 주님의 회복을 수행하겠느냐? 백 이십 명이 없다면 네가 가자마자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회복은 가련한 기독교 역사의 일부, 즉 성경적이고 영적이나 그리스도가 없는 그 많은 일을 하는 기독교의 반복이 될 것이다. 만일 네가 확장하여 온 땅을 얻는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최근에 대만에서 방문한 형제와 대화를 가졌다. 나는 그와 이제부터 그곳의 일은 확장과 증가를 너무 관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교통했다. 당신의 모든 노력은 백 이십 명을 얻으려는 곳으로 방향이 잡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십 년 안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확장으로 인해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미 대만에는 많은 숫자가 있고 대북만 해도 이만 삼천 명이나 된다. 아마 섬 전체에 사만 정도는 될 것이다. 이들 중 얼마의 사람들을 백 이십 명에 포함시킬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이것을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일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 노선에 관해서는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회복하는 대신 우리는 뒤로 떠내려가게 될 것이다. 더 많은 확장을 가질 때 우리는 더 기독교의 반복으로 떠내려갈 것이다. 사람들이 그처럼 많은 것으로 인해 나는 기쁘다. 그러나 그들이 중심 이상을 보지 못했다면 나의 기쁨은 무익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바울에게 보여주셨던 것과 같은 중심 이상을 나에게도 보여주소서.”라고 일어나 말할 신실한 몇몇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여러분 젊은이들, 특히 이십 대의 청년들이 이렇게 하기를 바란다. 그럴 때 십 년 후 당신은 주님의 회복에 유용하게 될 것이다.(바울의 완성하는 사역 99-125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 기도의 부담
1. 새 길을 실행하여 새로운 부흥에 이르도록
   (1) 모든 이들이 사역의 말씀을 추구하고 조성하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3. 대입 수험생들을 위하여
   1구역 - 이재민, 김가은, 장영주, 박지현, 황수연
   2구역 - 탁준오, 오유경, 김수언, 이채린, 박욱태
   3구역 - 문서원, 김종욱
   5구역 - 정연수, 송다은
   6구역 - 노재연, 김준성, 손세민, 남재현, 서혜성

■ 성도들 소식
1. #3 - 개업 
금다래 자매님이 10/17(목), 다래재가복지센타(금정구 금강로 445번길 10-6)를 개업했습니다.(연락처 : 051-513-1253, 010-8515-7739)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전국 청년?직장인 특별집회 신청 마감 안내
 11/15(금)~17(주일)까지 성경진리사역원에서 전국 청년?직장인 특별집회가 있습니다. 11/3(오늘)까지 각 구역별로 취합하셔서 허진성 형제(010-9667-9558)에게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신청은 총 3가지로만 분류됩니다.
   - 전참(2박6식) 82,000원.
   - 부분(1박4식) 55,000원.
   - 출퇴근 21,000원.
▷ 계좌번호 : 국민은행 104302-04-085820 허진성 

■ 부산교회 11월 일정 안내
① 소그룹 확대 봉사자 모임 [11/24(주일), 남구학생센터]
※ 시간, 석식제공 여부는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렘 44:1 ~ 렘 52장
2. RSG(신약 회복역) : 벧전 1:13 ~ 벧전 5:14
3. 라이프-스타디 : 사도행전 M47 ~ M48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행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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