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12(2019.11.17)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11-15 , 조회 (22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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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12
  
건축을 위한 변화

   성경은 하나님의 의도가 그분 자신을 사람 안으로 역사하여 그분이 사람의 생명이 되어 사람이 그분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임을 분명히 계시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또한 영이 있게 창조되었다. 이로써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그의 영 안으로 영접해 들일 수 있다. 우리가 알듯이 사람은 타락했다.
   뒤에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사람으로 오셨다. 그분은 땅에서 삼십 삼년 반을 사셨다. 인생의 끝에 그분은 십자가로 가서 사람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 그 죽음을 통해 그분은 또한 사탄을 멸하시고 옛 창조를 끝내셨다. 무덤에 있은 지 사흘 후에 그분은 부활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분은 부활하셨을 때 인성을 신성 안으로 이끌어 타락한 인성을 높이셨다. 이렇게 높여진 인성은 이제 부활 안에 있는 그분 안에 있다. 이와 동시에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로 들어갈 수 있게 준비 되셨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이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 생명주는 영은 그 안으로 들어가 그의 영을 거듭나게 한다. 계속하여 그 신성한 영은 믿는 사람의 영 안에 거하여 그의 영과 하나 된다. 그는 구원받고 구속되고 거듭난다. 그는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한다. 그는 주님과 연합하여 그분과 한 영이다.(고전 6:17) 이제 그가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살고, 주님과 한 영됨을 사는 것뿐이다.

대치된 하나님

   사람은 타락했을 때 하나님을 잃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치하는 것들이 들어왔다. 결국 타락한 사람 안에서 하나님은 다음의 것들로 대치되셨다.

선과 악의 지식

   선과 악의 지식이 들어왔다. 사람은 선과 악의 차이를 알기 시작했다. 사람은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성공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그는 이 지식을 얻어 선을 택하고 악을 거절하려 했다.

문화

   문화는 선과 악의 지식이 발전된 것이다. 이집트 문화, 바벨론 문화, 유대 문화, 헬라 문화, 유럽 문화, 미국 문화, 중국 문화, 일본 문화, 인도 문화 등등과 같은 많은 문화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모든 문화들은 선을 권장하고 악을 비난한다. 각 종족과 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그들의 문화가 가르치는 바이다.

철학

   철학은 문화의 전진된 발전이다. 그것은 더 높은 단계이나, 그 원칙은 문화와 동일하다. 철학은 선을 격찬하며 악을 비난한다.

윤리

   윤리는 도덕성을 강조한다. 사람이 만들어 낸 각종 윤리적인 가르침 중에서 공자의 가르침은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윤리는 사람에게 어떤 행위의 원칙에 따라 살라고 권장한다. 이러한 원칙 역시 선과 악의 지식에 근거한다.

종교

   종교는 윤리나 철학보다 월등하다. 그것은 문화나 선과 악의 지식보다 훨씬 높다. 그것은 다른 것들을 능가한다. 이는 그것이 하나님을 끌어오기 때문이다. 종교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한다. 종교는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하며,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종교는 철학을 버리거나 문화를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는 문화의 적극적인 방면을 수용하고 윤리적인 가르침들을 그 교훈 안으로 가입시킨다.
   이들 다섯 가지 - 선과 악의 지식, 문화, 철학, 윤리, 종교 - 가 타락한 인류를 통제하는 요소들이다. 우리가 어디서 태어나 자랐든지 우리는 이러한 다섯 가지의 노선을 따라 교육을 받아왔다. 서양에서 왔든 동양에서 왔든, 한 종족에게서 왔든 여러 종족에서 왔든 우리는 어려서부터 선과 악의 지식으로 가르침을 받아왔다. 우리의 문화적인 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문화적인 배경과 아주 달라 보일지라도 그 차이점은 피상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모두 부모를 공경하라, 정직하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 등의 가르침을 받아왔다. 유럽이나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배웠을지라도 이것이 우리의 공통적인 문화유산이다. 철학과 윤리도 사실은 마찬가지이다. 비록 그것들이 멀리 떨어진 세상 한구석에서 일어났다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모든 철학과 윤리적인 가르침은 선을 권장하고 악을 배격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들은 원칙적으로 같다.
   종교에 있어서 주축이 되는 것은 단 세 가지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천주교이다. 이슬람교, 즉 회교는 유대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실 코란, 즉 회교 경전은 많은 부분이 구약과 비슷하며, 어떤 부분은 신약과 비슷하다. 기독교 안에서 천주교는 종교로 발전했다. 유대교와 회교와 천주교는 모두 그 기원이 성경에 있다. 그들은 같은 하나님을 경배한다.
   인도에는 불교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종교라 하지 않는다. 이는 부처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주로 공자의 윤리적인 가르침을 따른다. 이 역시 종교가 아니다.
   모든 종교는 하나님을 이용한다. 종교는 문화를 조장하고 높이는 데, 사람의 선과 악의 지식을 개발하는 그들의 철학을 강화하는 데, 윤리적인 가르침을 따라 살도록 그들을 능하게 하는 데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바란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우리는 선과 악의 가르침에 의해 살도록 가르침을 받아왔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는 철학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윤리적인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우리의 종교적인 양육에 의해 통제받고 지시받는다.
   구원받기 전에 당신의 행동은 아마 무절제하고 죄악이 가득했을 것이다. 구원받는 순간 당신은 회개하고 당신의 지난날들을 후회했다. 당신은 그릇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당신은 죄를 범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온전히 옳게 살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당신은 항상 그분의 임재 안에서 행하기를 원했다.
   우리의 배경과 우리 그리스도인의 체험의 결과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그 방식은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행하고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것은 잘못된 삶의 방식이다! 이것은 사탄의 간교한 술책이다. 우리로 옳게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종교적으로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에 대한 그분의 의도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그분의 의도 밖에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분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이 그분의 의도이다. 그분이 우리와 하나 되고 우리가 그분과 하나되어 우리가 그분을 사는 것이 그분의 의도이다. 우리는 선을 위해 있지 않고 하나님을 살기 위해 있다! 그분은 선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과 본성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표현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선한 것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악한 것을 표현하는 것도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있다. 이것이 그분의 의도이다.
   바로 이 하나님이 그분의 의도를 성취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그분은 육체 되심과 인간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힘을 통과하셨다. 그런 후 그분은 부활 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육체 되심을 통해 그분은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다. 부활을 통해 그분은 사람을 그분 안으로 이끄셨다.
   이제 그분은 우리 안에, 우리는 그분 안에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선과 악의 지식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문화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있지 않다. 철학은 우리의 발아래 있다. 윤리적인 가르침을 우리는 무시해야 한다. 종교는 우리를 위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에 우리에게는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완성인 바로 그 영이 있다!
   우리가 자라나고 교육받은 이러한 다른 것들로부터 돌이킬 때 우리는 오직 모든 것을 포함한 이 영과 함께 머문다. 종교, 윤리, 철학, 문화, 선과 악의 지식은 다 사라진다.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남는다. 우리는 그 영이신 그분을 안다. 그분은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는 그 영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실행하기보다는 주님과의 한 영을 실행한다. 우리가 살 때 그분이 살고, 그분이 살 때 우리가 산다. 우리와 그분은 하나이다.

변화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세 부분으로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영과 함께하는 그 영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로 놀랍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한 혼과 몸이 있다. 영은 우리의 존재의 중심이다. 반면에 몸은 둘레이다. 그 사이에 혼이 있다. 혼은 우리 존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그러나 우리의 혼은 그리스도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혼은 자아로만 가득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영이 내 영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혼의 주요 부분인 생각은 여전히 자아로 가득하다. 혼의 다른 부분인 우리의 감정은 온통 우리의 수중에 있다. 혼의 세 번째 부분인 우리의 의지는 다루심을 받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우리의 영은 거듭났으나 우리의 혼은 여전히 낡았고 변화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로마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이 시대를 본받지 마십시오. 오직 여러분은 생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한 뜻,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은 현대식으로 되는 것이다. 현대식으로 되기 원하는 것은 혼에서 나온다. 가령 당신이 신문 광고를 본다 하자. 당신의 흥미는 그것이 보여주는 유행에 의해 꿈틀거린다. 당신의 감정은 눈길을 끄는 어떤 스타일을 찾고, 당신의 생각은 얼마의 돈을 지불할 수 있을까를 셈하기 시작하고, 당신의 의지는 가서 어떤 것을 사기로 결정할 것이다
   이것이 당신의 실행이라면 당신은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은 혼을 만족케 하는 것들을 사는 것이다. 혼은 의상과 다양한 색상을 좋아한다. 혼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생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되어.”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은 변화가 혼 안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생각이 혼의 주도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혼이 변화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생각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다른 두 단어는 본받음과 변화이다. 본받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 존재 안으로 더해지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적인 문제이다. 반대로, 변화되는 것은 새로운 요소가 우리에게 내적으로 더해지는 것을 요구한다.
   같은 형상이 됨은 대부분 외형의 문제이다. 약 십 오 년 전에 많은 청년들이 캘리포니아에 있었던 히피 운동에 끌렸다. 그들은 히피가 되는 데 어떤 노력도 필요 없었다. 그들이 한 일은 고작 머리를 길게 기르고 목욕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 안에 특별한 요소가 더해질 필요가 없었다. 단지 어떤 생활 형태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은 본받았다.
   변화는 같은 형상이 됨과 같이 외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얼굴이 아주 창백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변화될 필요가 있다. 그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화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 음식이 소화되어 핏 속으로 흡수될 때 그 요소가 그의 피부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요소는 점차적으로 그의 창백한 얼굴을 건강한 모습으로 바꿀 것이다. 합당하게 먹음으로 그의 존재는 바뀐다. 낡은 것은 감소되고 새로운 것이 대치되어 더해진다. 아무런 색깔도 외적으로 그의 얼굴에 더해지지 않았다. 색깔의 변화는 내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변화는 이 같은 것이다. 
   이러한 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스도, 삼일 하나님, 그 영이다. 처음에 이 요소는 우리 영 안에만 있었다. 그분은 그곳에 갇혀 있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만일에 우리가 그분이 확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은 그분께 감옥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는 것에 관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 영은 우리의 혼으로 확장되어 우리의 자아를 대치하는 새로운 신성한 요소를 더해주기 원하신다. 옛 것을 대치하는 이 새로운 요소가 우리의 혼에 더해질 때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변화될 것이다.
   성경에 있는 모든 책들 중에서 오직 바울의 글만이 변화를 말한다. 우리가 변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완성시키는 사역의 부분이다. 우리의 내적 존재 안에 있는 이 변화는 신성한 요소가 자아를 대치하기 위해 우리에게 더해짐에 의해 발생한다.

변화되는 길

   “더구나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이신 그 영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됩니다.”(고후 3:17-18)
   여기에서 언급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선과 악의 지식으로부터, 문화로부터, 철학으로부터, 윤리적인 가르침으로부터, 종교로부터의 자유이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이러한 것들의 묶임이 없을 것이다. 바울 당시에 많은 믿는 이들이 율법의 묶임 아래 있었다. 그들은 율법과 유대적인 종교로부터 자유케 될 필요가 있었다. 우리 시대에 중국의 믿는 이들은 공자의 가르침으로부터 자유케 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자유케 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해방될 필요가 있다. 우리 안에 낡은 선과 악의 지식이나 낡은 문화나 낡은 철학이나 낡은 윤리적인 가르침이나 낡은 종교가 조금도 없어야 한다.
   18절은 우리가 수건을 벗은 거울과 같다고 말한다. 모든 수건들은 치워졌다. 다섯 겹의 수건이 제거될 필요가 있다. 한 겹의 수건이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의 이상은 손상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글자 너머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눈은 이 모든 수건들로 가려져 있다.
   모든 수건들이 제해질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수건을 벗은 거울로서 주님을 보고 반사하는 우리는 변화된다. 변화되는 길은 선과 악의 지식과 문화와 철학과 윤리적인 가르침과 종교의 수건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보고 우리 존재 안으로 비추시는 그분을 가질 수 있다.
   사진을 찍으려면 카메라 렌즈 뚜껑을 열어야 한다. 그 후 셔터를 누를 때 광선이 들어와 사진이 찍히게 된다. 당신에게 있어서도 그러하다. 당신의 얼굴에 수건이 없이 주님을 바라본다면 그분 자신은 당신의 영에서와 같이 당신의 생각, 감정, 의지 안으로 비추실 것이다. 신성한 무언가가 우리 안으로 비추어져 옛 것을 대치하고 변화되게 할 것이다. 이 바뀜을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에서는 변화라고 한다. 이것은 혼의 각 부분을 점령하고 적시기 위해 우리의 영에서 우리의 혼 안으로 퍼지는 그 영이다.

변화의 목적

   변화는 건축을 위한 것이다. 변화가 없다면 하나님은 건축을 얻을 가능성이 없게 된다. 우리의 영이 거듭났다 할지라도 우리의 혼이 자아로 가득한 한, 하나로 건축될 길이 없다.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가 표현된 것이 의견이다. 우리가 다른 의견들로 가득한 한, 우리는 하나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영이 퍼질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우리의 의견은 하나하나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다 변화될 때 우리는 하나 된다. 점차적으로 변화를 통해 우리 모두는 우리 의견들로부터 구출되어 우리의 영에 서뿐 아니라 우리의 혼 안에서도 하나 된다. 이 하나가 건축이며, 이것이 변화의 목적이다.(바울의 완성하는 사역 76-85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금주의 추구

■ 기도의 부담
1. 모든 성도들이 참된 제사장 직분을 회복하도록
   (2) 하나님으로 충만되고 적셔지고 흘려보내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성도들 소식
1. #2 - 득남 
봄삐 형제님(로안 자매님)이 11/11(월), 득남 했습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겔 16:1 ~ 겔 26장
2. RSG(신약 회복역) : 요일 1:1 ~ 요일 4:6
3. 라이프-스타디 : 사도행전 M51 ~ M52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행 10

알리는 말씀

■ 단기훈련 제 2기 졸업식 안내
▷ 일시 : 12/7(토) 오후 2시
▷ 장소 : 성경진리사역원 중강당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11/29(금)까지 집사실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부산교회 소그룹 확대 봉사자 모임 안내
▷ 일시 : 11/24(주일) 오후 7시 ~ 9시(오후 6시 저녁식사)
▷ 장소 : 남구학생센터(경성대부경대역 5번 출구)

■ 2019년 겨울훈련 실시간집회 안내
▷ 일시 : 12/25(수) 오후 2시 등록 ~ 12/29(주일) 오후 2시
▷ 장소 : 성경진리사역원
▷ 내용 : 2019년 겨울훈련 ‘신명기 결정 - 연구’
▷ 대상 : 19세 이상의 모든 성도들
▷ 비용 : 숙박 211,500원 / 출퇴근 89,500(부분참석 신청 불가)
▷ 계좌번호 : 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12/13(금)까지 상기 계좌로 입금 후 집사실로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감일 이후, 숙박은 추가신청이 없으며, 출퇴근은 집회 당일 현장에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취소 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으니 신중히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 한국복음서원 안내
▷ <신명기 개관> 출시 및 예약 안내
▷ 예약가 : 10,500원(정가 14,500원)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에게 12/9(월)까지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정기 구독자들에게는 12월 신간으로 발송됩니다. 따라서 정기 구독을 하시는 분들은 별도로 신청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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