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13(2019.11.24)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9-11-22 , 조회 (14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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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13

교회

   사도 바울의 사역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하여도 분명한 이상이 부족했을 것이다. 사복음서에서 교회는 오직 두 번 언급되는데 두 번 다 마태복음에 있다. 16장에서 주님은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실 것과 음부의 문이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는(18절) 것을 말씀하신다. 18장에서 그분은 지방 교회를 언급하신다(17절). 
   사도행전은 교회의 시작과 교회가 어떻게 각지에 세워졌는지를 묘사한다. 교회의 정의에 관하여는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보는 것만을 기초로 해서는 결론을 얻기 어렵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가 사도행전만 의존한다면 우리의 이해는 상당히 모호할 것이다. 
   교회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에클레시아’로, 부르심 받아 나온 회중 혹은 무리를 의미한다. 고대에 헬라인들은 도시에서 국가 대사를 논의하기 위해 함께 모였다. 그 시민들의 모임을 일컬어 에클레시아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택된 백성을 불러내어 함께 모으셨다. 이것이 교회이다. 그러나 문자적인 것만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교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바울의 글에서 우리는 교회가 가장 분명하고도 철저하게 제시되는 것을 본다. 

그리스도의 비밀

    에베소서 3장 4절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비밀이라 일컫는다. 사람의 지성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는 그분을 완전히 정의한다. 그리스도는 또한 하나님의 체현이시며, 하나님의 표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비밀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비밀이신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비밀이시다. 지난 이십 세기 동안 그분과 비교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등장하지 못했다. 그분의 이름은 온 땅에 퍼졌다. 분명 그분은 능력 있고 지혜로우시다. 그러나 누가 그분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분은 비밀이시다. 지금까지 그분이 누구인지를 깨달은 사람은 극소수이다. 바울은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할지라도 이 비밀은 정의를 갖고 있는데 이 정의가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교회는 그분의 체현이다. 그리스도를 보려면 우리는 교회에 와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은 교회 안에 계신다.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 자는 다 그리스도를 접촉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보기 원하는 자는 다 교회에 와야 한다. 
   여기에 모인 우리조차도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외견상 우리는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모임이다. 여기에 독일 사람, 프랑스 사람, 이탈리아 사람, 스페인 사람, 노르웨이 사람, 덴마크 사람, 스웨덴 사람, 네덜란드 사람, 영국 사람, 미국 사람, 그리고 동양에서 온 여러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각종 국적으로 분류되어 여기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일부이다. 우리는 유엔(UN)과 같지 않다! 교회는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국적은 장사되었다. 우리의 어떠함은 장사되었다. 교회 안에 남은 것은 그리스도뿐이다. 
   에베소서 3장 2절부터 11절까지는 그리스도의 비밀이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이 모든 풍성들은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다. 교회에는 미국 철학이나 중국 윤리나 독일의 과학적인 탐구를 위한 여지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위한 여지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알려진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는 것은 심히 위대한 것이다. 그것은 철학이나 종교나 과학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다. 이 비밀은 다름 아닌 측량할 수 없는 모든 풍성을 지닌 그리스도이다. 나는 당신이 이 구절들을 상고하고 기도하기 바란다. 당신은 그 구절들이 말하는 것을 당신의 지성이 아닌 계시에 의해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 계시는 당신의 생각이 아닌 영으로 온다. 당신이 당신의 영을 사용하여 이 구절들을 기도한다면 이 비밀을 볼 것이다. 이것은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분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지혜를 알리는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다(엡 1:22-23). 바울의 글에서만 우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묘사한 것을 본다. 이 용어는 복음서들이나 사도행전에서는 볼 수 없다. 사람의 몸은 놀랍다. 의과대학생들은 그 구조를 배우기 위해 몇 년을 소비한다. 결국 광범위한 탐구 후에 그들은 이 우주 배후에 전능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모든 복잡 미묘함을 다른 말로는 합당하게 설명할 수 없다. 
   교회는 한층 더 놀랍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어떤 성경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이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나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그렇게 가르치곤 했었다. 그러나 성경을 더 연구한 후에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사실이며 실재이다. 
   몸은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그것은 의자와 같지 않다. 의자는 나무 조각을 어떤 방식으로 짜 맞춘 것이다. 몸은 뼈를 함께 이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해골일 것이다. 사람의 몸의 각 부분은 유기적이다. 거기에는 생명이 있다. 우리의 이(齒)는 유기적이다. 가짜 이만이 생명이 없다. 우리의 귀는 유기적이다. 나는 가짜 귀를 달고 있는 형제를 아는데 그는 그의 귀를 떼어낼 수 있다. 그의 원래 귀는 종양 때문에 제거되었다. 그의 모조 귀는 유기적인 것이 아니다. 나의 안경은 유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내 수정체를 대신하고 있다. 내 눈에 있었던 원래의 수정체는 유기적이었다. 지금 내가 착용하고 있는 것들은 다 생명이 없는 것이다. 유기적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거짓 이와 거짓 팔다리와 기계적인 동작들이 많다! 그 느낌은 나무나 철로 만든 로봇과 같다. 살아 있는 사람이 서거나 그의 팔을 들거나 구부릴 때, 그의 모든 행동들은 생명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조립한 기계 장치가 아니다. 그는 살아 있다! 교회도 이러하다! 교회는 살아 있는 방식으로 그분을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이 유기체의 어떠함은 모두 생명에 기인한 것이다. 형제자매들의 어떠함은 연기가 아닌 생명의 결과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분의 표현이다. 
   이 구절들(엡 1:22-23)에서 그리스도께서“만물 위에 머리가 되게 하시어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라는 말을 주의하라.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이며, 그분의 머리 되심에 참여하고 누린다. 그분은 만물 위에 머리가 되셨으며, 그분의 몸인 우리는 그분과 하나이므로 그분의 머리 되심을 누린다.  

충만

   교회는 또한“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23절)이다. 이것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가령 두 형제를 비교한다 하자. 한 형제는 다른 형제보다 더 무겁다. 무거운 사람은 가벼운 사람보다 더 충만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이다(4:13). 이 그리스도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실 정도로 충만하시기 때문에 위대하고도 우주적인 몸이 필요하다. 이 몸은 그분의 충만, 즉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상상해 보라. 그것은 온 땅에 퍼져 있다. 유럽, 북미, 극동, 호주, 아프리카, 남미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몸은 얼마나 광대한지! 
   1958년에 나는 영국 런던에 머물렀었다. 어느 날 한 형제가 여왕의 포도나무를 나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나를 거대한 온실로 데리고 갔다. 그 포도나무는 온실 전체를 뒤덮었다. 그 형제는 이렇게 말했다.“이 형제님, 이렇게 거대한 포도나무를 본 적이 있습니까?”그는 그 포도나무가 영국 여왕에게 속했다는 것을 자랑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예, 나는 이보다 더 큰 포도나무를 보아왔습니다.”나는 그에게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포도나무를 상기시켰다. 여기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이 참 포도나무요 믿는 이들은 가지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 포도나무가 얼마나 큰지를 나에게 말할 수 있는가? 여왕의 포도나무는 그에 비교할 것이 못 된다.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포도나무는 우주적으로 위대하다. 온 우주가 그 온실이다. 얼마나 충만한지! 주 예수님은 땅에 계셨을 때 한 시각에 한 곳 외에는 계실 수 없었다. 사마리아에 계실 때 갈릴리에 계시지 않았고, 베들레헴에 계셨을 때 예루살렘에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 모든 제한이 사라졌다. 지금 그리스도는 땅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는 포도나무이시다. 독일에 계시는 동안에도 그분은 일본과 아프리카 어느 곳에나 계신다. 
   그리스도의 충만이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이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당신의 교회가 어디 있는가?”대답하기 곤란하다! 나는 나의 교회가 우주적으로 크다고 말하기 원한다. 자랑처럼 들리는가? 당신은 회복 안에서 우리에게 교회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는가? 이 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에 시작되어 지금 온 땅으로 퍼지고 있다. 이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 4:10).
 
새사람 

   교회는 또 새사람이다(엡 2:15, 4:24, 골 3:10). 어떤 의미에서 온 인류도 오직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한 사람 안에 포함된다. 성경은 이 한 사람을 옛사람, 혹은 아담이라 부른다. 태초에 하나님은 두 사람을 창조하지 않고 오직 아담만을 창조하셨다. 이 한 사람이 인류였다. 온 인류는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에서 창조되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다른 사람, 즉 새사람을 창조하셨다! 이 사람 역시 단체적이다. 우리는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아담은 옛사람이었다. 교회와 함께하는 그리스도는 새사람이시다. 이 새사람은 단지 그리스도일 뿐 아니라 교회이다. 그리스도는 이 우주적인 사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몸이 머리의 표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표현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표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새사람인 교회는 하나님의 표현이다. 온 교회는 단체적이지만 한 사람이다. 유럽 전역에 많은 지방 교회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이다. 오늘날 온 땅을 통해 이 우주적인 한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한다.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새사람인 교회는 하나님을 표현한다.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利器)는 이십 세기 후반을 사는 우리에게 회복을 확산시키는 데 큰 촉진제 역할을 해 왔다. 많은 나라들에서 온 성도들이 함께 모일 수 있으며, 서신이나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 최근, 어느 날 오후에 나는 홍콩과 대만과 텍사스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 모든 통화가 이십여 분 안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유용품들이 새사람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여기에서 주어지는 메시지조차도 비디오로 녹화되어 오대륙의 모든 곳에 신속히 전달될 수 있다. 남미, 아프리카, 호주, 극동, 북미에서 곧 받아볼 수 있다. 백 년 전만해도 선교사가 미국에서 중국을 가는 데에는 육 개월이 걸렸다. 그들 중 얼마는 도착한 후 곧 죽었다. 현재는 이십사 시간 내에 중국 베이징에 갔다가 이십사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다. 그분의 주권적인 통치로 인해 주께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할지! 그분은 새사람의 유익을 위해 모든 것들을 안배하셨다!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가 사람임과 동시에 신부인 것은 얼마나 놀라운지(엡 5:23-27, 29-32)! 우리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남성이어야 한다. 나는 자매들에게 눈물에 관해 말하고 싶다. 새사람의 지체들로서 당신 자신을 여성으로 간주하지 말라. 눈물을 흘리지 말라! 눈물은 약한 그릇이라는 표시이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혹은 그 이상을, 주님의 일을 위해 서양으로 온 이래 나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는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을 더 이상 눈물로 특징짓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새사람의 지체들이다. 이제부터 더 이상 눈물이 없다! 
   그러나 그분을 사랑하는 문제에 올 때 교회는 신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형제들은 또한 여성이어야 하며, 남자들처럼 행해서는 안 된다. 날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부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우리의 이중적인 위치가 있다. 남자로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이렇게 말한다.“아버지, 우리는 이 땅에서 당신을 표현하는 남자입니다.”신부로서 우리는 예수님께 돌이켜 이렇게 말한다.“주여, 우리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신부입니다.”남자의 위치는 표현의 문제이며, 여자의 위치는 사랑의 문제이다. 
   당신이 첫째 부부를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그 뼈로 하와를 건축하셨다. 그녀는 아담의 일부였다. 이와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일부이다. 그 둘은 본성과 생명과 존재에 있어서 하나이다. 교회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와 그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한 육체가 되었다(창 2:21-24). 교회와 그리스도는 한 영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와 그분께로 돌아간다. 이 관계는 사랑의 하나이다. 사랑은 참된 하나를 낳는다. 만약 둘이 하나가 아니라면 그것은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교회와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나이며, 한 영이다. 이 하나 됨은 그들의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신부이다. 

 하나님의 걸작품
 
    에베소서 2장 10절은 이렇게 말한다.“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걸작품’에 해당하는 헬라어는‘포이에마(poiema)’로서 그것은‘걸작품’, 혹은‘시(詩)’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것은 작자 혹은 저자를 표현하는 작품의 사상을 전달해 준다. 교회는 한 편의 시이다! 온 우주 안에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의 표현으로 드러나 있다. 그 설계를 고칠 수 없다.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이나 사랑스러운 시와 같다. 이 얼마나 비할 데 없는 신성한 계시의 나타남인가! 누가 하나님의 이 뛰어난 작품을 고칠 수 있겠는가! 건축물을 설계할 때에는 항상 설계가 바뀔 수 있으며, 개선할 수 있다. 건축가는 부족한 점이 발견될 때 그의 설계를 수정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것에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 사람은 그것을 모방할 수 없다. 좋지 않은 것에는 어떤 정정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몸이 고안된 방법을 생각해 보라. 얼굴의 모양 하나만도 어떠한 예술 작품인지! 우리의 두 눈과 귀와 코와 입술의 위치는 아름다운 외모를 이룬다. 두 어깨와 사랑스런 두 손이 있는 우리의 몸은 감탄할 만하다. 교회는 사람의 몸보다 훨씬 위대하며, 더욱 웅장하게 설계되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와 설계를 선포하고 전시하는 한 편의 시이다.(바울의 완성하는 사역 52-62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금주의 추구

■ 기도의 부담
1. 만 명의 다음세대 제사장들을 얻도록
   (2) 다음세대들이 신성과 인성과 지성을 갖추도록
2. 2019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 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 2019년 150명, 2020년 150명
   (3) 구역별 목표 1년 25명, 소그룹별 목표 1년 3명

■ 성도들 소식
1. #2 - 장례
손동석 형제님의 모친 김순애 자매님의 장례를 11/20(수), 부산전문장례식장에서 무사히 치렀습니다.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겔 27:1 ~ 겔 38장
2. RSG(신약 회복역) : 요일 4:7 ~ 유 1:25
3. 라이프-스타디 : 사도행전 M53 ~ M54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행 11

알리는 말씀

■ 부산교회 소그룹 확대 봉사자 모임 재 안내
▷ 일시 : 11/24(오늘) 오후 7시 ~ 9시(오후 6시 저녁식사)
▷ 장소 : 남구학생센터(경성대부경대역 5번 출구)

■ 국제 추수감사절 특별 집회 비디오 집회 안내
▷ 일시 : 12/3(화) ~ 5(목) 오전 10시 ~
▷ 장소 : 남구학생센터(경성대부경대역 5번 출구) 
▷ 회비 : 5,000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각 구역 전시간 봉사자들을 통해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현장 접수 가능)

■ 2019년 겨울 훈련 비디오 집회 안내
▷ 제목 : 신명기 결정 연구
▷ 경비 : 1인당 22,000원 (기부금, 개요 및 소책자, 경비 포함)
※ 비디오 훈련은 12/30(월)부터 시작 가능하며, 각 구역별 상황에 따라 실시하시기 바랍니다.
※ 각 구역 도서 봉사자들께서는 12/23(월)까지 취합하시어 한국복음서원으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미니스트리, 미니스트리 다이제스트, SD카드(한/영)는 별도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한국복음서원 안내
▷ <사역의 말씀 다이제스트> 연간 정기 구독 안내
▷ 연간 구독료 : 86,000원(정가 108,000원)
▷ 세부 내역 
   - 2019년 12월까지 신청 시 2020년 1월호부터 12월호까지
   - 2019년 12월 이후 신청하면 신청일로부터 1년간 발송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에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함양교회 집회소 건축 헌금 안내
▷ 건축 규모 및 공사비
  1. 대지 : 200평
  2. 건평 : 35평(1층)
  3. 총 비용 : 2억2천4백만원
     (준비된 금액 : 1억8천만원, 부족 금액 : 4천4백만원)
  4. 입주 예정 : 2019년 12월말
※ 함양교회 집회소 건축을 위한 필요 금액이 충당될 수 있도록 형제자매님들의 적극적인 기도와 동참을 바랍니다.
▷ 헌금방법 : 특정헌금란에 ‘함양교회’라고 쓰신 후, 12/29(주일)까지 헌금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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