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27(2020.3.8)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20-03-06 , 조회 (32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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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27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성장

   이제 우리는 영적인 체험의 네 번째 단계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것은 영적 생명의 가장 높은 최후의 단계로서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성장이다. 
   우리가 앞 단계들을 통과한 후에는, 우리 안에 모든 죄와 세상과 양심의 송사와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성분에 관련된 모든 어려움을 처리하고 일소하여 우리 안에는 오직 하나님만 계시게 된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 안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시고, 우리 안과 밖 전체는 전적으로 성령으로 충만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온전히 자람으로 성숙함에 이르는 영적 생명의 가장 높은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가장 높은 단계를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성장”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간 기록을 통해 구약의 예표를 보기로 하자. 그들은 여행 초기에 홍해를 건넘으로써 속박의 땅 애굽을 떠나 홍해에서 바로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장사지냈다. 따라서 탈취하는 힘을 가진 세상을 벗어 버렸다. 그 후 그들은 아말렉과 더불어 싸웠는데 그것은 곧 육체를 처리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간을 방황했다. 성경에서 사십이라는 숫자는 시험과 고통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여 사십 년 동안 광야를 걷게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시험과 고통을 통해 그들의 육체의 각종 사악함을 드러내어 처리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의도는 육체를 철저히 처리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체험도 마찬가지이다. 침례 받은 후 단 한 번만 육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수개월, 수년 동안 하나님의 손안에서 처리받아야 한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광야에 행하게 하시며 우리의 생활이 어려움을 당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영도 고갈되고 억압되며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하신다. 이렇게 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시험과 고통을 통하여 우리 육체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방황하던 세월을 마치자 하나님은 그들을 요단강으로 인도하시어 길갈에서 할례를 받게 하셨다. 한 면으로 그들은 실제적으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며, 또 한 면으로 그들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맞서 그들을 진멸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영적인 광야에서 시험받는 날이 차고, 우리의 육체가 어느 정도 처리되는 것을 배운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영적인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며, 거기서 육체가 완전히 걷히고(길갈은 ‘걷히다’는 의미임) 제거되게 하신다(골 2:11)는 것을 예표한다. 따라서 우리는 실재적으로 하늘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고, 이로써 그리스도의 모든 충만을 상속하게 된다. 더욱이 우리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영적 전쟁을 체험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때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행을 하는 동안, 홍해와 요단강이라는 두 물을 통과했다. 홍해는 바로와 그 군대를 장사하기 위한 곳이었고, 요단강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장사하기 위한 곳이었다. 그들이 요단강을 건넜을 때, 그들은 열두 개의 돌을 취했고, 또 열두 개의 돌을 강바닥에 세워 놓았다. 이 두 종류의 열두 개의 돌은 열두 지파를 나타낸다. 그것은 옛 열두 지파가 요단에서 끝나고, 새 열두 지파가 강을 건너 약속하신 땅에 들어갔음을 나타낸다. 그들이 통과한 이 두 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 홍해의 물은 세상 권세를 끝내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방면을 상징하며, 요단강 물은 우리 옛사람을 끝내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방면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는 아말렉과만 싸울 수 있었지만, 그들이 요단강을 건넜을 때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싸울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침례를 받은 후 영적 생활을 시작할 때에 우리는 육체와 싸울 수 있을 따름임을 의미한다(갈 5:17). 우리의 영적인 생명이 절정에 달할 때에 비로소 육체가 완전히 장사되고 걷혀지며, 속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게 되고, 밖의 적을 처리하기 시작하며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영적 생활의 처음 세 단계는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일어난 것임을 이 모든 예표로 말미암아 알게 된다. 네 번째 단계는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에 일어난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은 요단강 저편과 요단강에서 처리되었다. 이제 우리는 강 이편에 와서 하나님의 어려움을 처리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탈취한 가나안의 일곱 족속―하늘에 있는 영적인 어두움과 악의 권세(엡 6:12)―과 싸워 그들을 전멸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영적 생명의 최후 단계이자 최고 단계이다. 각종 처리를 통과하고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우리는 영적 전쟁에 가담할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그분의 구속하신 모든 자들을 위해 이중의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 자신으로 충만되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다스리며 하나님의 대적을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 생명의 셋째 단계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성령, 곧 하나님 자신으로 충만하게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첫 번째 목적이 이뤄진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의 대적을 처리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심으로 그분의 두 번째 목적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라신다. 
   이것이 우리가 영적 생명의 네 번째 단계에서 체험하게 될 일이다. 이 네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다섯 가지 체험, 곧 1) 몸의 인식, 2) 승천의 인식, 3)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림, 4) 영적 전쟁, 즉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옴, 5)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생명의 체험 하권 175-177쪽)

하나님의 건축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을 갖게 함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우리가 자란다고 말하는 골로새서 2장 19절 하반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증가만이 참된 성장임을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성장함에 따라 결국 어떤 단계, 곧 완전히 성장한 사람,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에까지 도달할 것이다.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엡 4:13)라는 말은 매우 의미가 풍성하다. 어떤 사람이 이 단계에 이를 때,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안에서 살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갈망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내적 느낌을 주의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을 가진 사람은 느슨하게 교회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불쾌한 일을 겪는 즉시 비판하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그들의 말에서 엄격하지 않다. 그들의 입은 할례 받지 못했다. 그들은 성도들 가운데서 계속 한담과 느슨한 말을 한다. 그들은 전화 교환원과 같다.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자신을 숨길 수 없다. 여러분은 일정 기간 가장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폭로될 것이다. 종종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처음에는 그가 매우 점잖고 훌륭하고 신중하다고 느낄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람이 참으로 좋은 형제이고 좋은 자매라고 결론지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좀더 오래 그와 함께 있으면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이 부족한 그의 상태가 드러날 것이다. 여러분은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거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야생마나 거친 나귀 같아서 제한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표현하며, 느슨하게 모든 것을 행한다. 그럴 때 여러분은 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안에 하나님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한편 나는 어떠한 가장도 없이 매우 솔직한 사람을 보았다. 여러분은 그와 함께 있을수록 그가 무게 있다는 것을 더 느끼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멋대로 행동할 때, 그는 장중하게 처신한다. 다른 사람들은 비판하지만, 그는 침묵을 지킨다. 다른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말하며 논쟁할 때, 그는 “형제자매님들, 우리 모두 주님께 돌이켜서 다시 기도해 봅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열심과 선의를 가진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 빈번하게, 하나님의 건축에서 나오지 않은 열심과 선의는 하나님의 일을 가장 많이 파괴하고 교회를 손상시킨다. 오늘날 교회에 부족한 것은 하나님의 건축의 일을 통과하여 하나님으로 조성되고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을 가진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한 지방에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요소의 증가와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의 증가를 가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곳에서 길을 얻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고 그분의 대적을 처리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건축을 통해 
그리스도는 사람 안에 거처를 정하실 수 있음

   나는 이 건축이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서 가장 필요한 것임을 거듭 말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열심을 갖거나 추구하거나 기도하거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건축하시도록 허락했느냐이다. 어떤 사람은 그들의 돈과 시간을 헌신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건축하시도록 기꺼이 허락해 드리지 않는다. 이러한 종류의 헌신은 쓸모가 없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열심히 전파하고, 또 다른 사람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건축하시도록 기꺼이 허락해 드리지 않는다. 이러한 종류의 열심과 추구는 거의 유익이 없다. 
   여러분과 내가 참으로 하나님에 의해 건축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여러분 지방의 교회 안에 거처를 정하셨는가? 아니면 여러분은 그분을 막고 문 밖에 서 계시게 하는가? 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에 보낸 서신에서 여러분은 주님께서 문 밖에서 탄식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분은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20절)라고 말씀하신다. 이 문은 여러 사람의 마음의 문이 아니라, 교회의 문이다. 주님께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 드리지 않은 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황이었다. 나는 여러 지방의 교회에서 봉사하고 책임을 맡은 이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 지방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가, 아니면 그분을 문 밖에 세워 두는가?” 여러분이 의견과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보아야 한다. “교회가 나의 생각을 받아들인 결과,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거처를 정하실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교회 밖에 서 계실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다. 
   이것은 여러분의 관점이 옳은가 그른가, 좋은가 나쁜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여러분의 생각이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는가 아니면 허무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또한 여러분의 관점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가 아니면 교회 밖에 그분을 세워 두는가의 문제이다. 교회를 돌보고 섬기는 모든 이들은, 심지어 모든 형제자매들은 이 문제에서 매우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에서 우리 가운데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도록 채워질 것이다(엡 3:19하). 하나님으로 충만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시는 것에 달려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정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건축을 체험하는 것에 달려 있다. 우리가 더 건축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거처를 정하시도록 더 허락해 드린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거처를 더 정하실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도록 채워진다. 이러한 것은 서로 정비례한다. 하나님의 요소가 증가되면 여러분은 성장한다. 여러분이 더 성장하면 여러분은 더 건축된다. 여러분이 더 건축되면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 안에 거처를 더 정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거처를 더 정하실수록, 여러분은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요소로 더 채워지게 된다. 건축되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을 가진 이러한 교회는 하나님으로 충만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고 그분의 대적을 처리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도달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하나님의 건축의 일 60-63쪽)

기도의 부담, 금주의 추구  

■ 기도의 부담
1. 모든 성도들이 매일매일 부흥되는 생활을 살게 하십시오.
   (1)매일 아침, 시간을 분별하여 참되게 주님 자신을 접촉하고 임재 안에 머물러 있게 하십시오.
   (2)매일매일 새롭고 살아있는 말씀의 공급을 통하여 다양한 은혜를 누리게 하십시오. 
2. 2020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2020년 300명
   (3)구역별 목표 1년 50명, 소그룹별 목표 1년 5명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민 28:1 ~ 신 4:43
2. RSG(신약 회복역) : 눅 1:1 ~ 눅 5장
3. 라이프-스타디 : 로마서 M11 ~ M12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행 26

 알리는 말씀

■ 주일 헌금 관련 안내
  헌금은 따로 모아 두셨다가 소그룹별 지역실행이나 각 구역 연합 집회를 할 때에 헌금함에 넣어주실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 중고등부 섞임 집회 취소 안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 하기 위해 3/21(토)~22(주일)로 예정되었던 중고등부 섞임 집회는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각 구역별로 다음세대에 대한 돌봄이 약해지지 않도록 전화나 SNS을 이용한 목양에 신경써 주시기 바랍니다.

■ 1구역(남구학생센터) 승강기 교체 관련 헌금 안내
  1구역(남구학생센터)이 소재한 산암빌딩 승강기의 잦은 고장과 노후로 인해 신형 승강기로 교체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14개 층 균등 분담 원칙에 따라 11층, 12층의 분담금이 약 1천 만원 정도가 됩니다. 11층은 성경 세미나와 각종 교회 모임에 자주 사용되고 있고, 12층은 다수의 대학생 형제자매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교회의 많은 필요가 채워지고 있음을 감안하여 볼 때 모든 구역에서 헌금에 동참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봉사교통이 있었습니다. 필요 금액이 충당될 수 있도록 형제자매님들의 적극적인 기도와 동참을 바랍니다.
▷ 예상 공사기간 : 3/25(수) ~ 4/16(목)
▷ 헌금방법 : 특정헌금란에 ‘1구역승강기’라고 쓰신 후, 3/29(주일)까지 헌금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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