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30(2020.3.29)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20-03-27 , 조회 (30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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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생명의 체험과 성장과 사역 - 30

다스림의 정의

   다스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권위를 사용하여 만물을 지배하고, 특히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이중적인 의도와 갈망을 갖고 계셨다고 거듭 말한 적이 있다. 한 면으로 하나님은 사람이 그의 형상을 지니도록 하사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게 하셨고, 또 한 면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도록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을 때, 한 면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닮을 수 있도록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셨으며, 또 한 면으로는 사람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26).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권위를 주어 사람으로 하나님을 위해 다스리도록 하셨음을 말한다. 
   수세대에 걸쳐서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권위를 주어 그들이 만물을 통치하도록 하시기를 갈망하셨다. 이 문제가 신약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다. 신약에서 하나님을 위해 다스린 첫 사람은 주 예수님이다. 그는 병을 명하여 떠나게 하고(마 8:8-9), 더러운 영을 쫓아내고(막 1:27), 폭풍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셨다(마 8:26-27). 이 모든 사례들은 그분의 다스림을 말하는 것이다. 후에 사도들이 주님의 일을 이어 나갈 때에도, 그들은 병을 고치고 악한 영들을 쫓아냄으로써 하나님을 위해 다스리는 체험을 많이 했다(행 3:6-7, 14:8-10, 19:12, 16:18). 오늘날에도 이러한 체험은 교회 안에서 흔히 거듭되고 있다. 그리고 장차 왕국에서는 이기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며 열국을 지배할 것이다(계 2:26-27). 마지막으로 영원 가운데 구원받은 모든 자들은 왕으로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이다(계 22:5).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다스리는 축복을 진실로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사례들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한 가지 목적이 사람을 얻어 이 사람이 우주 가운데서 그분 자신을 대신하여 다스리도록 하는 것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의 한 방면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속하신 의도의 한 방면이다. 그러므로 권위의 관점에서 볼 때, 다스림은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이다. 그것은 우리 영적 체험의 절정이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우리가 하늘의 영역에서 그분을 대신하여 다스릴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구원의 목적이 온전히 이뤄진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다. 
   더욱이 이 다스리는 문제가 왕국과 영원 세계에 이르기 전에는 완전히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시작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편에서 볼 때, 만일 어느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표준에 도달한 그리스도인은 죄에서 벗어나고,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처리하고, 타고난 성분을 깨뜨리고, 성령으로 충만되어 하늘의 영역에 앉아 있을 뿐 아니라, 더욱이 그리스도와 함께 만유 안에서 다스리고 있다. 하나님의 일에서든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환경 가운데의 어떠한 만남에서든 간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가 지배하기 원하시는 것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얻으신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야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위가 수행되고 하나님의 왕국이 땅 위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스림의 체험

   우리는 다스리는 체험을 갖기를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사항이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

 1. 우리의 위치를 앎

   먼저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 능력을 얻는 것은 사람의 상태에 달려 있지만, 권위를 얻는 것은 사람의 위치에 달려 있다. 우리가 승천의 위치에 있다면, 권위를 가지고 다스릴 수 있지만 승천의 위치에 있지 않다면, 권위도 없고 다스릴 수도 없다. 심지어 주 예수님의 경우에 있어서도, 다스리는 근거는 승천의 위치에 달려 있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얻었으며(마 28:18), 만유를 다스리시게 되었다(엡 1:20-22).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다스리고자 한다면, 승천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승천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고자 한다면,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에 이름으로써 승천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십자가의 모든 처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다스리는 체험은 앞에서 말한 모든 체험의 결과이다. 우리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다스리는 체험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 중 극소수만이 다스리는 실재를 갖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우리가 승천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땅에 속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죄와 세상에 관련되어 있으며 육체와 성질을 벗어 버리지 못했다. 그들은 자아와 타고난 성분을 거절하지 않았다. 비록 이러한 것들을 벗어 버리고 승천을 조금 체험한 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이 체험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옛 창조에 속한 것들로 더럽혀지게 되어 이로써 승천의 위치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다스리기 위해서 우리는 승천의 위치를 알고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다스림의 근거는 승천의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순서의 위치에도 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기 원한다면, 승천의 위치에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하신 순서의 위치를 지켜야-우리가 복종해야 할 권세에 복종해야-한다. 
   마태복음 8장 5절부터 13절까지에서는 주님께 자기 종의 질병을 고쳐 달라고 찾아온 백부장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백부장의 믿음은 순서의 위치를 아는 데 있었다. 백부장 자신이 권위 아래 있었기 때문에 또한 자기 아래 있는 자들에게 명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주께서 그분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여 명령하시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다. 그는 참으로 순서의 위치와 권위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는 다스리기 위해서 먼저 다스림에 복종해야 함을 안 것이다. 권위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모세가 하나의 실례(實例)이다. 모세는 권위에 복종하였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다스린 자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반역과 다툼에 직면할 때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했다. 특히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이들과 함께한 자들이 함께 모여 모세를 대적했을 때, 그는 한층 더 그렇게 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공격하면서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 16:3)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은 모세의 권위의 문제를 겨냥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의도는 모세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때에 모세는 자신을 권위자로 여겨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서 그를 변호하시도록 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댄 것은 그 자신이 순서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었다. 모세는 권위가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 그가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다른 사람 역시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매번 이렇게 처신한 결과, 하나님의 권위가 그 위에 머물러 있었음이 한층 더 분명히 나타나게 되었다. 
   다윗을 생각해 보자. 일평생 동안 다윗은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했으며, 절대적으로 순서의 권위에 복종했다. 그는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고, 왕의 위치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자기 위의 권위자임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다만 사울에게 복종해야 함을 알았던 것이다. 따라서 사울이 아무리 핍박하고 대적 같이 미워해도 다윗은 결코 사울을 대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항상 순서의 위치를 지키고 권위에 복종한 자였다. 결국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신 날, 그는 이스라엘 나라 안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한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결점과 연약함을 지니고 있었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체가 되어 오셨을 때에야 이 거스르는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한 자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주 예수님의 생애는 말과 행사와 모든 움직임과 멈추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며,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한 것이었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께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그를 주라 시인하여 만유가 그 권위에 복종하게 하셨다(8-11절). 주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시어 순서의 위치를 지키셨으므로 이제 그분은 권위를 얻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주님도 또한 이제 이 권위를 교회 곧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위의 순서, 곧 하나님을 대표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인 우리는 주님의 권위를 사용하여 만유를 다스리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오늘날 거스르고 혼돈된 우주 가운데서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가르치는 자들에게 순종하며, 우리 모두가 서로 순복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의 뒤를 이어 권위에 복종하는 간증이 된다. 
   우리가 각자의 순서의 위치를 지킨다면, 하나님의 권위가 우리 가운데 나타날 것이며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교회 안에서 권위는 스스로 취하거나 자처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복종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로들은 줄곧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성숙하거나 연장한 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자주 자신들의 지위와 칭호를 사용하여 형제자매들을 처리하거나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세와 같이 되어야 한다. 형제자매들 가운데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순서의 위치에 복종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한다면, 하나님의 권위가 그들과 함께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 자신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은 채 장로의 지위를 내세워 다른 이들에게 순복하기를 요구한다면, 이것은 육체에서 나온 파괴이지 다스림이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그들에게 순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스리는 체험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위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승천의 위치를 알고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순서의 위치도 알고 지켜야 한다. 승천의 위치를 아는 것은 승천을 인식하는 것의 체험이며, 순서의 위치를 아는 것은 몸을 인식하는 것의 체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을 때 얻게 하신 승천의 위치와 그분의 몸 안에서 우리에게 정하신 순서의 위치를 알아야,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대신해서 다스릴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는 다스리는 체험을 지니기에 앞서 승천의 위치와 몸 안에서의 순서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2. 다스리기를 갈망함

   두 번째로 우리는 다스리기를 갈망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다스리며,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함을 뜻한다. 일단 우리가 승천의 위치와 순서의 위치를 얻게 되면 다스릴 수 있다. 만일 우리의 체험이 이 단계에 이르렀다면 우리는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어떤 형제자매들은 다스리려는 생각도 갈망도 없다. 그들의 영은 느슨하고 게으르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에 관심하지도 않으며, 주님의 일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문의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사탄이 일하고 마음대로 파괴하도록 내버려 둔다. 이렇게 할 때 그들은 생명이 성장함에 따라 다스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방종하고 다스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다스리는 체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스리고자 한다면, 그의 영이 느슨하거나 소심해서는 안 되며, 자원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하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적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자 해야 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권위가 즉시 교회 안에 나타나 교회 안에 있는 많은 거스르고 불의한 문제들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스리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따라서 존재해서는 안 될 많은 상황이 흔히 일어나곤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교통하고 떡을 떼는 어떤 집회가 약하고 혼란스러운 것을 본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기도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으며, 말을 해야 하는데도 말하기를 꺼려한다. 오히려 많은 불필요한 기도와 무의미한 간증이 쏟아진다. 이로써 집회는 혼란스럽고, 형제자매들은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집회에 대한 마음이 식어 버린다. 이 상태는 주로 다스려야 하는 자들이 다스리지 않으므로 발생되는 것이다. 그들은 수수방관하고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집회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들은 심지어 그러한 것이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라 영감에 의한 매우 영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 결과 그들은 교회로 큰 손실을 당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어떤 집회가 죽었고 약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억압은 사탄에게서 오는데, 이는 사탄이 죽음의 권세를 지닌 마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회가 죽거나 억압당할 때는 항상 사탄이 거기에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에 어떤 사람이 일어나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고, 말로나 찬송으로나 기도로써 집회를 조정하고 분위기를 바꿔 하나님의 생명을 해방하도록 함으로써 사탄의 죽음을 삼켜 버려야 한다. 
   사탄은 집회에서 움직일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서도 움직인다. 때때로 그는 불필요한 빈곤이나 질병을 보내기도 한다. 만일 우리가 승천의 영역에서 산다면, 우리는 어떤 빈곤과 질병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인지 혹은 사탄이 가져다준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우리가 이 문제를 분별한다면, 사탄이 가져온 빈곤과 질병을 부인하고 대적함으로써 다스리기를 배워야 한다. 
   더욱이 우리가 영적 전쟁을 체험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거나 교회를 어지럽히는 모든 것이 마귀의 소행임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집회 중에서 어떤 이는 졸고, 또 어떤 이들은 생각이 번잡하며, 어린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마귀가 하는 일이다. 심지어 어떤 기도나 메시지조차도 마귀의 일일 수 있다. 사실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것도, 성령께서 움직이신 것을 제외하고는 악령 곧 마귀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원하여 일어나 승천의 위치와 순서의 위치에 서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권위를 사용하여 모든 혼돈되고 불법적인 상황을 다스리고, 대적의 대항하는 일을 파괴시킬 사람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는 늙은 엘리와 같아서는 안 된다. 사무엘상 3장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냉담하며 깊은 잠을 자고 있었는지 보게 된다. 냉담하고 깊은 잠에 빠진 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릴 수 없다. 만일 우리가 다스리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영이 강하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다스리는 영은 강하고 활발하며,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느슨하지 않고 부지런하다. 그런 영을 소유한 자는 순서의 위치를 지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뿐 아니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승천의 위치에 서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하는 자이다. 이로써 그 사람은 환경과 자신의 일과 모든 집회와 교회 안의 일들을 다스리게 된다. 
   다스리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께 대하여, 둘째로 사탄에 대하여, 셋째로 사람과 사건과 사물에 대하여 세 방면으로 자신의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형제가 교회 안에서 올바로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다스리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태도를 표명하고, “주여, 교회 안에서 이렇게 그릇 행하는 이 형제에 대하여 우리는 동의하지도 승인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이 일이 사탄의 방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사탄에게 선포해야 하며 그를 대적하고 심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관련된 사람과 사건과 사물에 대하여 자신의 태도를 엄히 표명하고, “우리는 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동의하지도 허락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태도를 표명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고 운행하실 것이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대해 표명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사람이 죄와 세상 가운데 살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람이 승천의 위치에 이르렀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의견을 대단히 존중하실 것이다. 사람이 승천의 영역에 이를 때, 그의 의견은 거의 하나님의 생각과 동일하다. 따라서 그 사람은 다소 능동적으로 그의 태도를 표명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그를 통하여 다스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려야 한다. 생명의 성장에서 또한 우리는 다스리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사탄의 불법에 대하여 우리는 한층 더 일어나서 다스려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이 공과를 잘 배워야 한다. 비록 이 체험이 상당히 높고 깊더라도 우리가 이미 둘째와 셋째 단계에서 어느 정도 시도해 보았기 때문에 우리가 만일 꾸준히 추구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다스리는 영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바란다!(생명의 체험下 219-231쪽)

기도의 부담, 성도들 소식

■ 기도의 부담
1. 정상적인 집회생활의 회복을 위하여 코로나19를 속히 퇴치하여 주십시오.
2. 모든 성도들이 사역의 말씀을 추구하게 하십시오.
   (1)매일 아침 부흥되게 하십시오.
   (2)매일 성경(신구약)을 읽도록 격려해 주십시오.
3. 다음세대를 더욱 관심하게 하십시오.
4. 2020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2020년 300명
   (3)구역별 목표 1년 50명, 소그룹별 목표 1년 5명

■ 성도들 소식
1. #3 - 결혼
서동희 형제님의 아들 서현덕 형제와 조채미양의 결혼식이 4/12(주일) 낮 12시, 메리움웨딩홀 2층 리츠프린스 홀(부산진구 신천대로 246)에서 있습니다.
2. #6- 이사(전출)
이용주 형제가 3/22(주일), 밀양으로 이사했습니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제 3차 온 땅을 위한 24시간 파수꾼의 기도 안내
코로나 19의 심각한 상황으로 인하여, 온 땅을 섬기는 한 무리의  사역자들은 주의 회복 안의 교회들이 하루를 정하여 ‘제3차 온 땅을 위한 24시간 파수꾼의 기도’에 동참할 것을 요청합니다. 다음은 앤드루 형제의 글입니다. “우리는 3/31(화) ‘제3차 온 땅을 위한 24시간 파수꾼의 기도’를 실행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더 많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음으로 그 에너지가 기도를 받는 사람에게 나타나기 원합니다. 우리는 한 나라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이의 생명을 보존해주시기를 기도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이 시대를 끝내고 주님을 모셔오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기도일시 : 3/31(화), 부산교회 ☞ 16:00 ~ 18:00
1구역 : 16:00 ~ 16;20  2구역 : 16:20 ~ 16:40
3구역 : 16:40 ~ 17:00  4구역 : 17:00 ~ 17:20
5구역 : 17:20 ~ 17:40  6구역 : 17:40 ~ 18:00

■ 금주의 추구
1. 구약 성경 읽기 : 수 6:1 ~ 수 21장
2. RSG(신약 회복역) : 눅 16:1 ~ 눅 22:6
3. 라이프-스타디 : 로마서 M17 ~ M18
4.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신약 회복역) : 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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