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건축 - 2(2020.4.12)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20-04-10 , 조회 (33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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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교회의 건축 - 2

   “내가 새 계명을 여러분에게 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이것으로써 여러분이 내 제자인 줄을 알 것입니다.”(요 13:34-35)

서로 사랑함

   어떤 형제나 자매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그들 안에 건축의 일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사람들을 향하여 참된 사랑을 가질 수 없다. 사람이 갓 구원받을 때 그는 형제자매들을 향하여 사랑을 갖는다. 이 사랑은 초기적인 것으로서 비록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요한복음의 이 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의 이 부분에서 가리키는 사랑은 사람이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과 지속적으로 교통을 가질 뿐 아니라 주님께 속한 사람들과 함께 완전히 하나 됨을 통하여 산출된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사랑은 바로 하나님으로 건축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서신서에서 우리는 바울이 주님께 처리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으로 건축된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각지 교회들과 형제들과 동역자들에 대해 각별한 사랑을 갖고 있었는데, 그 사랑은 사람의 천연적인 감정이나 사람에 대한 호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서로 뜻이 맞아 생겨난 것도 아니다. 바울의 사랑은 주님 안에서 건축됨을 통해 가진 사랑이다. 바울 서신에서 우리는 그가 교회를 대하든, 개별적인 믿는 이들을 대하든, 동역자들을 대하든, 책망하는 말을 하든, 칭찬하는 말을 하든 상관없이 말과 태도와 행동에서 그 안에 사랑을 만질 수 있다. 바울은 동역자들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며,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만일 어떤 동역자에게 어려움이 생겼거나 특별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바울은 속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교회 안에 어려움이 있거나 혹은 어떤 한 성도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바울은 속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후 11:28-29).

사람을 관심하는 것을 배움

   비록 우리가 봉사할 때의 상황은 세상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보다 조금 더 낫고 진보했지만, 봉사자들 서로 간의 사랑의 느낌과 사랑의 관심은 너무나 부족하다. 어떤 사람은 아무개 형제를 매우 좋아하고 그 형제와 많이 동역하는데,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주님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응당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감정에서 나온 사랑이 아니고, 우리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실로 사랑스러운 부분이 없고 주님께 대해서도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잘 한 것이 있어서 사랑받을 만하다면,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감정에서 나온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참으로 사랑스러운 부분이 아무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감정에서 나온 사랑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다.
   함께 봉사하거나 함께 형제자매가 된 이들 가운데 반드시 이러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형제나 혹은 저 자매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잘해 주기 때문에 그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처리를 받았기 때문이고,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주님으로 건축된 사람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동역자이고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논할 때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가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만일 우리 가운데 건축의 요소가 많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가운데 형제를 사랑하고 관심하는 성분이 많아지는 특징을 갖게 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사람이라면 교회의 행정에 있어서나 말씀의 사역에서 반드시 한 가지 결과를 산출할 것인데, 그것은 형제자매들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교회는 일 년 동안 서로 사랑하는 것을 주제로 말씀을 전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서로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언급조차 한 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집회에서 말씀을 들은 결과 자연스럽게 형제자매들을 사랑한다. 이는 매우 기이한 일이다. 거기에서 행정을 책임진 장로들은 결코 특별하게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도록 인도한 적이 없지만 그들이 돌보는 가운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형제자매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것은 행정을 책임진 형제들이 주님 앞에서 건축된 이들이고, 말씀의 사역을 하는 형제들이 또한 주님 앞에서 건축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 안에는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들을 관심하고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역자들의 집에 거하는 어떤 형제가 병에 걸려 이틀 동안 몸져누워 있는데도 형제들 중에 아무도 그를 보러 가지 않았다하자. 평상시에 다섯 명이 아침 식사를 하는데, 지금 한 사람이 자리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이것은 마치 한 사람이 안 보여도 ‘이것은 나의 일이 아니니 관심하지 않고 마음 편히 밥을 먹고 내 할 일을 할 뿐이다.’라는 태도와 같다. 조금 심한 말을 하자면, 당신은 이런 사람이 주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으로 건축된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관심하는 것을 배운 사람이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다섯 명이 식사를 할 때 앉자마자 한 사람이 부족한 것을 발견할 것이며, 만일 그가 몸이 안 좋다면 즉시 우리는 식사를 멈추고 이 형제를 심방하고 그를 관심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형제의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을 보았다면 그에게 바꿔 신을 다른 양말들이 있는지를 주의할 것이고,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빠른 시일 내에 누군가는 그 형제 모르게 그 형제의 침대머리 위에 새 양말 한 켤레를 가져다 두어야 한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제사랑의 광경이 우리 가운데 부족하다면 우리는 이미 타락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단지 듣기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다. 어떤 형제가 언제나 똑같은 옷을 입고, 심지어 더럽기까지 한데도 다른 옷으로 바꿔 입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갈아입을 옷이 있는지 혹은 어떤 다른 어려움이 있는지를 관찰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사람을 관심해야 한다.
   만일 우리에게 이렇게 관심하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좋은 전도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될 수 없다. 표면적으로 우리가 교회를 합리적으로 잘 돌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이 돌봄 안에는 건축이 없다. 우리가 무엇이 옳은지를 말하는 메시지 한 편을 잘 전할 수는 있지만 그 메시지는 사람을 건축할 수 없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오직 사랑만이 사람을 건축할 수 있다(고전 8:1).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말씀의 사역을 할 때 다른 것을 말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말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반드시 주님께 처리를 받고 주님으로 건축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사람들을 관심하고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이 구두를 사려고 할 때, 당신은 함께 봉사하고 있는 형제를 생각하고 그의 구두가 너무 닳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옷 한 벌을 사려고 할 때 당신은 당신의 형제에게도 동일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운데 이러한 광경이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만을 돌보아서는 안 되며, 주위에 있는 형제들을 돌보아야 한다. 이것은 크고도 엄숙한 문제이다. 전에 어떤 사람이 직접 나에게 “위트리스 리 형제님, 당신은 돈으로 다른 사람들을 통제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나를 매우 괴롭게 했다. 나는 그 말이 나에 대한 모욕이자 형제들에게 대한 모욕이라고 느꼈다. 주님은 내 마음속에 형제들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아신다. 나는 주님께 “주님 하실 수만 있다면 형제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내 속에 있는 원함을 말씀드린다. 나는 참으로 함께 주님을 섬기는 형제들 가운데 생활의 어려움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만 감정적인 교제일 뿐이다.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을 관심하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랑이다. 만일 우리의 형제가 병이 났거나 우리의 자매에게 어려움이 생겼다면 이러한 어려움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가?우리는 반드시 형제들의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신발을 살 때 형제의 신발이 어떤지를 생각해야 하며, 옷을 살 때 형제의 옷이 얼마나 낡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반드시 이러한 광경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함께 봉사할 때 다른 이들을 돌보는 것을 손실로 여겨서는 안 된다. 설사 손실을 입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언제나 자신만을 돌보는 사람은 가련한 사람이고, 가장 가련한 사람은 바로 자신 외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다. 이와 반대로 늘 다른 사람을 돌보기를 배우는 사람은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당신이 늘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우리는 자신의 짐만 짊어지지 말고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지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의 긍휼로 우리는 이것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지기를 배울수록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져 주신다는 것을 보게 되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지기를 배울수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더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돌보면서 그 돌봄을 통해 건축을 이끌어 오기를 바란다면 그는 반드시 사람을 사랑하고 관심하는 공과를 철저하게 배워야 한다. 언젠가 특별집회 기간 중에 유행성 감기가 돌아 많은 사람들이 앓아눕게 되었다. 집회소를 청소하던 형제도 이 병에 전염되었다. 나는 거의 이틀 동안이나 그 형제를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야 그가 아픈 것을 알고 그를 보러 갔다. 그의 집에 가서 알게 된 것은 아무도 그 형제를 돌보러 오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웃에 사는 사람조차 그를 관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홀로 침대에 누워 고열에 시달리며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을 보면서 매우 마음이 아팠다. 만일 우리의 상태가 이러하다면 우리가 전하는 말씀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말씀을 듣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 형제가 지금 침대에 누워 고열에 시달리며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를 찾아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것은 어떤 상황인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장로가 된다면 그런 사람이 교회를 돌볼 때 교회를 건축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말씀의 사역을 할 때 그가 전하는 말씀이 사람을 건축할 수 있겠는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사람을 약간 온전하게 할 수 있을 뿐 사람을 건축할 수 없다. 온전하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유익을 얻게 하지만, 건축하는 것은 사람들을 함께 건축되게 한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서 개인을 얻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얻기 원하신다. 만일 당신과 나의 일이 단지 개인적인 결과만을 산출한다면 하나님께는 길이 없으시다. 당신과 나의 일은 반드시 단체적인 결과를 산출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수 있다.
   어떤 형제는 그다지 비범해 보이지 않고 말씀의 사역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그가 교회를 돌볼 때, 사람들은 하나로 모이고 건축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길을 얻으신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단체적인 것이고 건축된 것이다. 아마도 수천 명이 함께 모일 수는 있겠지만 교회가 없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수천 명이 개별적이고 함께 건축된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수만 명의 영웅호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하더라도 건축되지 않았다면, 각 사람이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길을 얻으실 수 없다.
   오늘날 하나님은 길을 얻으셔야 하는데, 그 길은 건축의 길이며 단체적인 길이다. 삼십에서 오십 명 가량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봉사할 때 사람들은 그 집회가 강하며 복음을 전파하여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매우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떤 지방은 사람들의 수는 매우 많지만 하나로 건축되어 있지 않다. 집회소에 와도 사람들은 서로 차갑고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어서 조금도 건축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해도 복음의 능력이 매우 약하고, 집회할 때에도 그 속에 강함이 없다. 만일 우리가 어떤 지방 교회를 볼 때, 그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형제들이 사람들을 관심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교회는 미래가 밝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을 관심할 수 있다면 조만간 건축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권면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들 안에서 건축의 일을 하시어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계속해서 관심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나를 잘 대해 주고 나는 당신을 잘 대해 주며, 당신이 나를 좋아하고 나는 당신을 좋아하여 모두가 함께 의기투함해서 몇 시간 동안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식의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다. 결코 이런 것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병으로 눕거나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는 아마도 두 달 정도 당신의 집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병에 걸렸거나 다른 필요가 생겼다면 나는 반드시 당신을 찾아볼 것이다. 참되게 서로 사랑하는 광경은 바로 당신이 나를 관심하고 내가 당신을 관심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직면하는 가정의 어려움이나 봉사의 문제나 영적인 문제에서 서로를 관심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일 뿐 아니라 당신이 주님으로 건축된 적이 있는지의 문제이다. 주님께서 많이 일하시도록 허락해드린 사람일수록, 주님으로 건축된 분량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다른 사람을 관심하고 돌보며 사랑할 수 있다.
   죽었거나 생명이 없는 물건들은 함께 모아 놓아도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집 안의 목재는 벽돌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고 벽돌 또한 기와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이는 그것들이 죽은 것들이고 생명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데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같이 살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지방의 형제들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함께하지만 사실상 내면적으로는 결코 함께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이 함께하지만 내적으로는 서로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지 않으며, 건축되지 않는다. 심지어 서너 명의 형제들이 한 방에서 생활하지만 서로 간에 내적으로 전혀 하나 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서로 다투지는 않지만 내적으로 건축되지는 않았다. 같이 한 방에서 살지만 내적으로는 하나 되지 않고 서로 불만이 가득하다. 이것은 실로 우리를 괴롭게 한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또 다른 상황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형제가 다른 형제의 양말이 뒤꿈치에 구멍이 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양말만 세 켤레를 사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이다. 만일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면 당신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어떤 형제가 양말을 몇 켤레 샀는지는 몰라도 되지만, 그 형제의 양말에 구멍이 나 있다면 그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일 때 비로소 당신의 일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고 자매를 사랑하며 그들을 관심해야 하지만 그것은 결코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필요가 있기 때문이어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당신에게 필요가 있는 것이므로 당신은 마땅히 그들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각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교회의 행정과 말씀의 사역을 통해 놀라운 건축을 이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건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을 구원받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을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공과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사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공과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무리의 사람들을 함께 교회로 건축되게 하려면 공과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장로들은 조금 더 겸손하고 주의 깊어야 하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도 말씀을 전할 때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겸손하고 주의 깊으며 신중한 것은 실지적인 것을 대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들이 당신과 오랫동안 함께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어떻게 주의 깊게 행동 하든지 그것 때문에 그들이 당신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당신의 그러한 태도 때문에 건축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주의 깊거나 겸손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실지적인 몇 가지 중점들에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중점들과 실지적인 공과를 배워야 하고 구비해야 한다.(교회의 행정과 말씀의 사역 134-145쪽)

교회의 기도 사역

1. 주님께서 동역자들과 인도하는 형제들을 공급하시고 그들    에게 지혜를 주시어 지금 같은 시기에 그분의 백성을 잘    인도하고 목양하여 전진시키도록

2. 성도들이 매일의 생활에서 영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행    하도록,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도록, 그리스도   의 몸으로 함께 짜여 지고 건축되도록

3. 2020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2020년 300명
  (3)구역별 목표 1년 50명, 소그룹별 목표 1년 5명
  (4)복음의 구조를 세우고 가정집회에서 목양하도록

성도들 소식

1. #3
①장례 - 정미숙 자매님의 부친 정두갑 형제님의 장례를 4/7(화), 김해전문장례식장(김해시 지내동)에서 무사히 치뤘습니다.
②이사(전출) - 이상윤 형제님(권은주 자매님) 가정이 4/8(수)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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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차 21일간 파수꾼 기도
   21일간 파수꾼의 기도에 신실하게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1구역(남구학생센터) 승강기 교체 관련 헌금 안내
▷ 목표 금액 : 1천만원
▷ 헌금 현황(4/5기준) : 전체 35건 4,200,000원
   1구역 19건 2,200,000원   2구역 4건 550,000원
   3구역  3건   300,000원   4구역 1건 100,000원
   5구역  2건   400,000원   6구역 7건 650,000원
  *목표 금액이 충당될 수 있도록 형제자매님들의 기도와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 헌금 방법 : 특정헌금란에 ‘1구역승강기’라고 쓰신 후, 4/26(주일)까지 헌금하시면 됩니다.

대만 오유성 형제님 장례 헌금 안내
  대만 오유성 형제님 장례 헌금으로 부산교회에서 5,000USD(한화 약 630만원)를 선 송금하였고, 부산교회 성도들께서 총    2,460,000원을 헌금해 주셨습니다. 헌금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변경 안내
  4/13(월)부터 2020년 봄 양식(아가서)으로 변경됨을 알려드립니다.

한국복음서원 안내

2020년 봄 장로들과 책임 형제들을 위한 국제 훈련 집회 양식 신청 안내
▷ 전체 주제 : 하나님의 뜻
▷ 한글 - 7,500원 / 영어 ? 9,500원 / 미니스트리 다이제스트 - 10,000원 / 집회 녹취 음성 SD카드(한글, 영어) - 각 16,000원
※ 각 구역 도서봉사자들께서는 4/20(월)까지 한국복음서원으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금주의 추구

Lord's

4/12

Mon()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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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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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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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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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54

5:1-30

5:31-6:15

6:16-51

* 라이프-스타디 추구 : 로마서 M21 ~ M22

*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 : 로마서 3

부산교회 통계 2020년 3월 30일 ~ 4월  5일

구역

20

목표

주일

주 일 집 회

어린이

아침

부흥

기도

집회

소그룹

복음

실행

침례

합계

청소년

대학생

.

장년

1 구역

196

104

4

16

6

78

1

101

54

62

1

1

2 구역

206

151

12

9

24

106

10

124

76

110

2

4

3 구역

170

100

6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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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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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 구역

84

28

2

1

3

22

6

48

17

24

 

 

5 구역

156

85

5

2

2

76

 

85

12

13

1

 

6 구역

188

105

1

5

3

96

1

130

53

70

3

3

합계

1,000

573

30

40

45

458

24

566

246

33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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