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건축 - 4(2020.4.26)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20-04-24 , 조회 (24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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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교회의 건축 - 4

하나님의 건축이 교회의 참된 필요임

교회가 건축될 필요가 있음을 봄

   교회는 단지 교화될 뿐 아니라, 교화되는 것보다 더 전진된 단계인 건축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 문제를 더 강조해야 한다고 느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러한 메시지들을 듣고, 교회가 건축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며, 건축되지 않으면 과거에 많은 교화를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필요를 충족시키는 거처가 될 수 없음을 볼 수 있기 바란다.
   신약의 사도들의 서신 가운데 특별히 교회의 건축과 관련된 두 서신이 있다. 이 두 책이 에베소서와 고린도전서이다.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건축에 대하여 많이 말한다. 에베소서도 마찬가지이다. 에베소서 2장과 4장은 건축의 문제를 매우 특별하게 언급한다. 2장은 우리가 구속받은 것에 대하여 말하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함께 건축되어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가 된다고 지적한다(22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거처로 건축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4장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2장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거처인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다양한 은사들을 주셨다고 말한다(8, 11-12절).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몸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교회는 그분의 몸으로 건축된다. 또한 하나님과 관련하여 교회는 하나님 자신께서 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거처로 건축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님의 거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건축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원받은 이들인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거처가 되기 이전에 먼저 건축되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은사 있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한 것임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단지 교화의 일만이 아니라 건축의 일을 해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건축의 조망이 부족함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건축의 조망이 부족하다. 주님을 열심히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고 죄를 멀리하고 세상을 버리고 주님과 더 많은 교통을 갖고 주님 앞에서 사는 것을 배운다면,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또한 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하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영성과 교화에 따른 것임을 기억해야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 여러분의 상태가 아닌가?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해 목마르고,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어느 정도의 실제적인 처리를 배웠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의 추구의 목적을 진지하게 점검해 본다면,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의 자기 교화일까 염려된다. 나는 여러분에게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건축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망이 전혀 없을까 두렵다. 분명히 여러분은 형제자매들 주위에 있을 때 겸손하고 온유하고 사랑하고 관용하고 사려 깊은 것이 필요함을 자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러한 종류의 생각을 하는 것은 다만 여러분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함께 지내는 데 어려움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모든 성도들과 함께 건축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반적으로 이와 같을 뿐 아니라, 오늘날 주님을 위해 일하는 이들조차도 거의 건축의 조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주 복음을 전하고 몇 명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건축의 유무는 관심의 대상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사람들을 이끌어 주님을 사랑하게 하고 그분을 추구하게 하면 모든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건축의 유무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일의 목표는 다만 사람들을 구원하여 영적이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영성을 추구하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위하여 살도록 어떻게 그들을 돕느냐이다. 그들은 결코 교회의 건축이나 성도들 가운데 한 집을 얻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갈망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는 건축의 이상이 부족하다.

오늘날 이 땅에는 교회의 건축이 부족함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상황이다. 큰 도시에서 여러분은 많은 그리스도인 단체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볼 수 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있을 뿐 아니라 참되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으며, 더욱이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이 이상이 있다면,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영원 안에서 무엇을 갖기 원하시는지 보았다면, 여러분은 “오늘날 이 땅에서 건축된 교회를 찾기가 매우 어렵구나! 한 지방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영적인 집으로 건축된 그리스도인 모임을 보기가 너무 어렵구나!”라고 말하며 탄식할 것이다.
   나도 이전에 이렇게 탄식하였으나 그때 나의 느낌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이끄셔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이곳저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접촉한 후에, 놀랍게도 이 느낌은 내 안에서 점점 더 깊어졌다. 매번 어떤 곳에 이를 때마다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곳의 기독교의 상황을 보아라! 이곳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보아라! 너는 구원받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추구하고, 주님을 위해 살고, 영적인 것에 주의하는 사람들은 보지만, 내가 안식할 수 있는 거처를 이곳에서 볼 수 있느냐? 영적인 집으로 건축된 믿는 이들의 모임이 있느냐?” 어떤 곳에서는 성령께서 심지어 이렇게 물으셨다. “너는 참으로 함께 건축된, 구원받은 두 사람을 볼 수 있느냐?” 나는 내 속의 이러한 물음에 직면할 때마다, 주님께 슬픈 대답만 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추구하고, 영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있지만, 함께 건축된 두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내가 한 지방의 상황을 약간 묘사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한 형제가 다른 형제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나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 그 두 형제가 서로 매우 겸손하고 부드럽고 사랑하는 것을 보았다. 나를 초대한 형제는 나를 매우 잘 대해 주었고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보여 주었으며, 나와 함께 초대된 그 형제도 매우 예의가 발랐다. 두 사람 모두 즐거웠다. 그러나 저녁 식사 후에 앉아서 대화를 할 때에, 나는 그 두 사람이 지구의 양극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한 사람은 북극에 있었고, 다른 사람은 남극에 있었다. 그들은 어떤 것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북극에 있는 사람은 나를 북극으로 끌고 가려 했고, 남극에 있는 사람은 나를 남극으로 끌고 가기 원했다. 나는 매우 난처했다. 나는 그들과 정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으며 어느 쪽도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후에 나와 함께 초대받은 형제가 떠났을 때, 나를 초대한 형제는 “위트리스 리 형제님, 당신은 저 사람을 잘 모르십니다. 그는 말할 때에는 매우 영적인 것 같지만, 그의 보이지 않는 상태는 매우 형편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형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며칠 후에 나는 나와 함께 초대받았던 그 형제를 보게 되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위트리스 리 형제님, 우리 셋이 함께 있던 그날에는 제가 형제님께 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둘만 있기 때문에 몇 가지 할 말이 있습니다. 형제님, 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 형제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며칠 후에 그 형제가 나와 처음 나를 초대했던 형제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였다. 그들은 함께 있을 때, 다시 매우 예의 있고 친절했다. 한 사람이 “저는 정말 좋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은 “위트리스 리 형제님, 주님 앞에서의 이 형제의 상태는 정말 놀랍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았을 때 속이 메스꺼웠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완전히 문둥병자입니다. 처음에 여러분이 나를 초대했을 때에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참된 상태를 알지 못해서 나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 안의 문둥병이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은 서로를 비판하고 불쾌해 합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은 가면을 썼군요. 겉으로는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천거하고 저 사람이 이 사람을 칭찬하지만, 여러분 모두 속으로는 완전히 다르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위선입니다. 이것은 문둥병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가운데서 전혀 길을 얻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 가운데 어떤 건축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매우 깊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어디에 하나님의 거처가 있는가? 어디에서 함께 건축된 두 사람을 찾을 수 있는가?”
   한 형제가 나에게 이렇게 질문하였다. “위트리스 리 형제님, 마태복음 18장은 두세 사람이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다고 말합니다. 우리 중 두세 명은 여기에서 함께 기도하며 모여 왔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그다지 많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주님의 축복을 많이 얻지 못합니까?” 그때 나는 그 형제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당신은 참으로 한 마음 한 뜻 안에 있습니까?” 내가 이렇게 묻자 그 형제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들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성도들이 기도할 때에는 한 마음 한 뜻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적으로 함께 봉사할 때에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들은 한 마음도 한 생각도 갖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세 사람이 복음 전파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한 형제는 “오, 주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소서.”라고 기도하며, 다른 두 형제는 “아멘.”한다. 이것은 한 마음 한 뜻의 참된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 일어나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 이야기하면, 그들은 하나 될 수 없게 된다. 그들 세 사람이 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오전 6시 반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다른 한 사람은 “아닙니다. 가장 적합한 시간은 오후 7시 반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머지 한 사람은 “가장 좋은 시간은 오후 4시 반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결과, 그들 세 사람은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오전 6시 반이 좋다고 말한 사람은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난다. 오후 7시 30분이라고 제안한 사람은 항상 밤늦은 시간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난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이라고 제안한 사람은 오후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와 같이 세 사람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시간에서조차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때때로 이와 같은 형제들은 나에게 와서 “위트리스 리 형제님, 형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만일 내가 이러한 상황에서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어렵군요. 나는 한 가지 관점만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결코 세 가지 관점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의견으로는 새벽 12시 반이 가장 적당한 시간입니다!”라고 답변했을 것이다. 내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의 의도는 그들에게 그들의 관점이나 나의 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의 모든 개인적인 의견을 제쳐 두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모두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교회를 건축할 수 없다.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오늘날 어디에서 이러한 건축을 볼 수 있는가? 직접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몇 마디 더 말하겠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은혜는 함께 건축된 이들에게 온다. 함께 건축된 교회가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이다. 건축이 없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은 전혀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여러분은 어떤 지방에서 주님께서 일으키신 여덟에서 열 명의 형제자매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다만 주님 앞에서 산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같이 보이지만 한 마음 한 뜻 안에 있다. 그들은 진리를 잘 제시하지 못하고 복음을 분명하게 전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모두 한 마음 한 뜻 안에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사람을 주님께로 이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올 때, 그들은 주님의 임재를 느낄 것이다. 한편, 어느 곳에는 메시지를 아주 탁월하게 전하며 복음을 전하는 데 매우 유능한 사람들이 있으나 그들 가운데 참된 한 마음 한 뜻이 없고 그들은 함께 건축되지 않을 수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상황이 있는 곳에는 보통 참되게 구원받고 주님께로 인도된 사람들이 단지 몇 사람밖에 없다. 그러한 곳에서의 복음 전파는 매우 호소력이 있으나 그것을 들으려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영접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여러분이 그곳에 갈 때, 여러분은 주님께서 그곳에 계시다고 느끼지 못하며 주님의 임재를 볼 수도 없다. 나는 모든 형제자매들이 과거에 이러한 체험들을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가 우리가 함께 건축되는 데 달려 있음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나는 이번에 해외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건축된 교회들을 많이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구원받은 이들이 있었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고, 열심이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함께 건축된 이들은 없었다. 나를 가장 슬프게 한 것은 여러 곳에서 내가 주로 본 것은 불만과 불평과 불일치라는 것이다. 나는 건축된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동시에 나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나에게 “위트리스 리 형제님, 우리가 어디에 가야 합니까?”라고 묻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이 묻고자 한 것은 “집회를 하기 위해 우리가 어디에 가야 합니까?”였다. 거의 모든 곳에서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답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왜냐하면 건축이 있는 곳을 참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곳을 보면 의견들이 있다. 여러분이 저곳을 보면 비판이 있다. 조화되고 건축된 곳을 한 곳이라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에게 어느 장소에 가야 하는지, 하나님의 집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지적해 주기가 어려웠다. 여러분이 나에게 기독교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간 곳 대부분에서 어디에 기독교의 경배의 장소가 있는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서 모이는지를 지적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집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에 가야 안식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디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까? 어디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참으로 그러한 질문에 답변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건축된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은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필요임

   우리는 중요한 모든 문제는 우리가 건축되었느냐 건축되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메시지를 전하는 문제도 아니고 은사들의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영적인 처소로 건축된 한 무리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건축된 무리 가운데 올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뿐 아니라 그곳에 따스함이 있음을 느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이러한 곳이 그들이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영적인 집임을 느낄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것이 여러분이 함께 모이는 곳의 상황인가?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있는 곳은 분명 건축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말이 오늘날 모든 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건축된 교회임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는 데 충분하다고 믿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큰 도시에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더욱이 전 세계에 걸친 복음 활동이 있고, 거의 모든 곳에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으로 건축된 한 무리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 곳은 한 곳도 찾기 어렵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건축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여러분이 건축되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없다고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축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 건축에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 모든 사람은 건축되는 것이 필요하다. 형제자매들이여,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건축되는 것이다.(하나님의 건축의 일 80-90쪽)

교회의 기도 사역

1.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도록,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도록,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2. 하나님의 크신 기쁨이 이뤄지고, 그분의 목적이 성취되고,  그분의 경륜이 수행됨으로서 그분을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건축된 몸이자 온전히 자란 새사람인 교회를 얻으시고, 사랑 안에서 그분을 만족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예비된 신   부인 교회를 얻으시도록

3. 2020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2020년 300명
  (3)구역별 목표 1년 50명, 소그룹별 목표 1년 5명
  (4)복음의 구조를 세우고 가정집회에서 목양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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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차 전 세계 성도들의 24시간 기도 9일 연장 안내
   5/1(금)까지 기도에 신실하게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 1구역(남구학생센터) 승강기 교체 관련 헌금 안내
▷ 목표 금액 : 1천만원
▷ 헌금 현황(4/19기준) : 전체 54건 7,410,000원
   1구역  27건  2,810,000원   2구역  7건  2,200,000원
   3구역   6건    550,000원   4구역  1건    100,000원
   5구역   3건    500,000원   6구역 10건  1,250,000원
  *목표 금액이 충당될 수 있도록 형제자매님들의 기도와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 헌금 방법 : 특정헌금란에 ‘1구역승강기’라고 쓰신 후, 4/26(주일)까지 헌금하시면 됩니다.

에베소서 5:15-17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자세히 살펴서,
지혜 없는 사람처럼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사람처럼 하여, 시간을 아끼십시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금주의 추구

L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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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28-31

삼하 1-2

11:1-40

11:41-12:24

12:25-50

13

14:1-14

14:15-31

15:1-16:4

* 라이프-스타디 추구 : 로마서 M25 ~ M26

* 금주의 소그룹 추구 진도 : 로마서 5

 부산교회 통계 2020년 4월 13일 ~ 4월 19일

구역

20

목표

주일

주 일 집 회

어린이

아침

부흥

기도

집회

소그룹

복음

실행

침례

합계

청소년

대학생

.

장년

1 구역

196

97

1

17

5

74

1

100

51

63

 

1

2 구역

206

141

13

9

20

99

9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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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2

4

3 구역

170

106

6

11

9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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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56

1

 

4 구역

84

33

3

1

7

22

7

49

17

26

 

 

5 구역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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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2

72

2

86

21

31

1

 

6 구역

188

102

1

5

4

92

 

130

47

80

7

3

합계

1,000

573

34

43

57

439

27

587

230

37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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