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결정연구(예레미야/애가서)-메시지2(2020.8.9)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20-08-07 , 조회 (261)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2020년 여름 예레미야/애가서 결정 연구 

메시지2 

예레미야서의 핵심
성경: 렘 2:13, 17:9, 13:23, 23:5-6, 33:16, 31:33-34

 외면과 핵심

  예레미야서는 호두에 비유될  수 있다. 바깥에는 딱딱한 껍질이 있고 속에는 알맹이가 있다. 나는 젊었을 때 몇 번이나 읽었지만, 단지 이 책의 “껍질” 만 만지고 ‘알맹이’ 에 속한 것은 어떤 것도 보지 못했었다. 점차적으로, 주님은 예레미야서의 껍질을 벗기고 나에게 핵심을 보여주셨다. 

  이 핵심은 세 가지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과 타락한 상태 안에서의 우리의 어떠함과 우리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다. 예레미야서는 이 세 가지 문제를 강하게 제시하지만, 그것들은 껍질 속에 숨겨져 있다. 이 세 가지 것들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예레미야서의 껍질을 내면의 핵심에 주의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로 2장 13절에 언급되어 있으며, 그 구절은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심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위해 그분을 생수의 근원으로 취하기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을 우리 존재의 근원, 원천으로 취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근원으로 취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날마다 그분을 마시는 것이다. 마심으로써 우리는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우리 안으로 받아들인다. 예레미야 2장 13절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자기들을 위해 저수조들을 팠는데 그것들은 물을 담아 둘 수 없는 새는 저수조들이었다.” 고 말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악한 일은 생수의 원천이요 근원이신 그분을 버리고 다른 어떤 근원을 의지하는 것이다. 다른 근원들은 모두 우상들이다. 이 구절에서 우상들은 새는 저수조들과 같으며, 이것은 물을 담을 수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각종 저수조들을 파기에 바쁘다. 사실상, 이러한 저수조들은 우상들이다. 우리는 이 상황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우리 생명과 우리 존재의 원천, 근원으로 취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타락한 상태 안에서의 우리의 어떠함

  예레미야의 핵심의 또 다른 방면은 타락한 상태 안에서의 우리의 어떠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예레미야는 매우 깊으면서도 아주 단순하다. 17장 9절에서 그는 사람의 마음에 관하여 말하면서 이르기를,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치유될 수 없는 것이 마음이니 누가 그 것을 알 수 있으랴?”라고 한다. 우리의 마음은 극도로 거짓되며 치료될 수 없다. 그래서 13장 23절에서 예레미야는,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다면 악을 행하는데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타락한 상태 안에서의 우리는 오염되고 부패하여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개선할 길이 없다. 타락한 사람인 우리는 치유될 수 없고 바뀔 수 없다.

우리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예레미야서의 핵심 안에 있는 세 번째 문제는 우리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다.

다웟의 가지

  예레미야 23장 5절과 6절은 “여호와의 선포이다. 그때에 내가 디윗에게 의로운 한 순을 일으키리니... 그가 ‘여호와 우리의 의’라 불리리니 이것이 그의 이름이라‘ 고 한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실지라도, 그분은 다웟의 가지, 순이 되셨다. 이것은 그분이 육체 되시어 다윗의 자손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다윗의 가지, 순이신 그리스도는 부드럽고, 생생하며, 신선하시다.

여호와 우리의 의

  타락한 상태 안에 있는 우리는 부패했고, 죄악 되며, 거짓되고, 치유될 수 없고, 바뀔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겠는가? 우리 자신 안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의롭게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죄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구속을 성취하셨다. 더 나아가서,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함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 되어 우리의 의가 되셨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신성한 생명

  우리에게는 신성한 생명이신 그리스도, 곧 우리의 내적 존재 안으로 역사되시는 신성한 생명이 필요하다(렘 31:33). 이 생명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하나님의 부요하심 안에서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는 법이다. 이 분배하심,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으로 주입하심의 결과로 우리는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도리어 우리는 분배하시는 삼일 하나님으로 충만하다. 결국 신성한 생명 안에서, 신성한 생명의 법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 안으로 역사되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을 살고, 그분의 신격에서가 아닌 그분의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으로 조성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 복음의 구조와 목양의 실행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실행함의 생명 맥박은 
가정들임 - 사도들의 시대에 교회들은 
성도들의 가정에서 세워졌다

  새 길에 대한 중점은 주님의 구원이 모든 성도들에게 실질적인 방식으로 실재화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이라도 인간 사회에서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이 각 가정에서 수행되게 하는 것임을 안다. 가정은 사람의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이 유지되는 곳이다. 만약 우리에게 가정이 존재하지 않고 다만 사회 속의 개인만 있다면, 인간 생활과 관련된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을 것이며, 사회는 그 사회를 함께 붙들어 주기 위한 그릇이 부족할 것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이며, 그것은 국가의 기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집, 가족 혹은 가정이다(딤전 3:15). 그 후에 교회는 하나님의 왕국이다(롬 14:17). 하나님의 왕국은 가정의 존재 없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기본인 가정이 없이 개인이 존재하기 어렵고, 국가나 왕국이 세워지기는 힘들다.

  사탄에게 속임 당한 기독교는 가정을 완전히 간과했다. 그들은 단지 큰 집회만 가졌지 가정 집회는 갖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서는 사람들이 보존될 수 없고 그들의 간증과 진리도 또한 보존될 수 없었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면, 로마서 16장의 예와 같이, 사도 시대에 의심할 여지없이 교회는 성도들의 가정에 세워졌다. 우리는 로마서가 그리스도의 영적인 생명과 교회의 영적인 생활에 대해 말하는 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끝 부분에서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기 위해 하나의 장 전체를 사용한다. 바울의 문안으로부터 우리는 교회에게 열려진 성도들의 가정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성도들에게는 그들의 가정을 여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것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기독교는 가정에서의 영적인 분위기를 무시하도록 사탄에게 이용되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힘과 역량과 시간을 가정을 회복하는 데에 완전히 드려야 한다. 첫째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성도들의 가정을 집회를 위한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자신의 가정을 열고자 하는 부담을 가진 성도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커다란 진보이다. 그러나 우리는 만족해서는 안 된다. 부담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가정을 열어야 할 뿐 아니라 부담이 없는 가정에도 집회를 이끌어 주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이 집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가정을 열기를 바란다. 하나의 가정이 더 열린다면 집회할 수 있는 장소를 하나 더 갖게 된다는 뜻이다. 한 교회에서 가장 작은 집회 장소는 그 교회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의 가정들이다. (사역지 3권 5호 영문판 4-5쪽)

복음의 대변자는 사람이고
복음의 출로는 가정들이다

  무엇이 복음의 대변자인가? 복음의 대변자는 사람이다. 우리가 복음의 대변자이고, 복음의 출로는 가정들이다. 우리의 가정들이 복음의 출로이다. 당신의 가정이 주님의 용도를 위해 드려지지 않았다면, 당신은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며 대변자는 가지고 있지만 길은 가지고 있지 않다. 사도행전은 베드로 시대에 제자들이 '집집마다’ 떡을 땠을 뿐 아니라(2:46), ‘집집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5:42). 헬라어에서 ‘전하다(announce)’ 라는 단어는 복음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동사이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집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한다면 모든 집들이 그리스도를 말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도 열어야 한다.

복음을 전해야 할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도록 
예수님을 위한 큰 잔치를 베풀기 위해 
우리의 가정들을 열어야 한다

  누가복음 5장은 훌륭한 예를 준다. 주 예수님이 돈에 사로잡힌 노예인 세리 레위를 보았을 때, 주님은 그를 불러 주님을 따르게 하셨다. 레위가 주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주님을 따랐고, 구원받았다. 레위가 구원받았을 때, 그는 주 예수님을 위해 그의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는 예수님 한 분만을 초대하거나 저명한 관료나, 특출한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고 세리들과 죄인들을 초대했다(27-29 절). 자기 자신이 죄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도 좋은 사람들이 아닌 불량한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을 믿게 하려고 그들을 초대했다. 주님은 명예로운 손님이었고, 다른 손님들은 죄인들이었다. 이것이 복음 전파를 위해 가정을 여는 좋은 실례이다. 우리가 한 번 집을 열면, 복음은 하나의 출로를 얻을 것이다. 가정들이 없다면 복음은 출로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많은 대변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로이다. 따라 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가정들을 열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할 때 축복이 우리에게뿐 아니라 
다음 세대들에게도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열어서 ‘죄인들’을 손님으로 초대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가정들을 열기 바란다. 여러분의 가정들을 연다면, 어떤 손해도 없을 것이고, 도리어 축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가정을 열어야 하고 주님의 복음을 위한 출로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축복이 우리에게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올 것이다.(복음 전파를 위해 일어남 중문판 76-77, 79~80쪽)

다음세대를 얻고 온전케 함 - 어린이와 청소년 봉사자

교회를 위해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양육함

  데살로니가전서 1장은 두 가지 주된 요점, 즉 교회를 위한 거룩한 생활의 구조와 교회를 위한 거룩한 생활의 기원을 다룬다. 그 구조는 믿음의 일과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구성된다. 1장의 생활은 복음 전파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그 결과는 바로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과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하늘들에서 오시는 그분의 아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제 2장에서 우리는 교회를 위한 거룩한 생활의 세 번째 방면인 양육에 이른다.

  비록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양육’이라는 말씀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양육의 사실은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사도들을 젖을 먹이는 어머니와 권유하는 아버지처럼 생각했다. 이것은 사도들이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들이나 아버지들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믿는 이들을 그들의 자녀같이 보살피고 양육하면서 마치 부모가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고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것처럼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을 관심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우리는 교회를 위해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양육하는 본을 본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가 새 신자, 즉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젊은 사람들이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이들은 이 책에서 따라야 할 지침과 개요를 얻을 수 있다. 만일 그들이 이 개요와 지침을 따른다면 그들은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이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일에 있어서 좋은 기초를 놓게 될 것이다.

  회복 안에서 우리가 생명보다 일을 더 높게 여긴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렇지 않다. 우리는 생명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집일 뿐 아니라 또한 농장이나 정원에 비유할 수 있다. 가정은 자녀들이 자라나는 곳이며, 과수원은 나무들이 자라 열매를 맺는 곳이다. 2장에서 바울이 관심하는 것은 그의 자녀들이 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린 믿는 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그들을 양육했다. 우리는 그가 연하고 어린 식물들이 생명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그것에 물을 주고, 양분을 공급하여, 보살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믿는 이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대신 생활의 본을 제시한다. 이러한 합당한 생활의 본은 사실상 바울 자신이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안에서 복음을 전파함

  데살로니가전서 1장 5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왜냐하면 우리의 복음이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는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살았다. 사도들의 복음 사역은 단지 말로만 수행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살았다. 사도들의 복음 사역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생활, 즉 성령 안에 있고 믿음의 확신 안에 있는 생활로 수행된 것이었다. 사도들은 그들이 전파한 기쁜 소식의 본이었다.

  2장 1절은 “형제님들, 우리가 여러분에게로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도는 자신의 일행이 믿는 이들에게로 들어간 것을 거듭하여 강조했다. 이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이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안으로 복음을 주입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도들의 생활 방식은 그들이 한 말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떠한 사람인지도 포함한다.

  사도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확신하는 이러한 방법으로 복음을 가지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들어갔다. 사도들은 헛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주님을 믿으며 그분을 따르는지에 대한 본이었다. 많은 이들이 사도들을 통해 주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므로 한 달이 채 못 되어 교회가 일어났다. 이것은 주로 전파와 가르침의 결과가 아니라, 데살로니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도들이 가졌던 그러한 들어감을 통해서 발생한 것이다.

  2절은 계속해서 말한다. “여러분도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을 받고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심한 반대 속에서도 우리의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을 누려 담대함을 얻음으로써, 하나님을 체험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 안에서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심지어 빌립보 사람들에게 무례한 대우를 당한 뒤에도 담대했다. 고난과 박해가 그들을 패배시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삼일 하나님과의 유기적인 연합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2절에 의하면 그들은 많은 싸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복음을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전파하는 동안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박해가 여전히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 면으로 싸우며 한 면으로는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말하였다.(교회생활을 위해 다음세대를 양성함 9장 어린이와 청소년을 양육하는 본)

교회의 기도 사역

1. 주 예수님께서 속히 다시 오시도록(빌 3:20, 딤후 4:8, 딛 2:13, 계 22:20). 

2.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 그들의 온 존재를 열어 주님께서 하나님의 중심적인 일을 수행하실 수 있도록,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건축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건축해 넣으시고 우리를 그분 자신 안으로 건축하시도록(갈 4:19, 엡 3:14-21, 마 16:18, 엡 2:21-22, 고전 12:27).

3. 2020년 부산교회 봉사 목표를 위하여
   (1)2020년까지 1,000명의 인수 목표를 위하여
   (2)2020년 300명
   (3)구역별 목표 1년 50명, 소그룹별 목표 1년 5명
   (4)복음의 구조를 세우고 가정집회에서 목양하도록 

성도들 소식

1. #3  
① 장례 - 엄경진 자매님의 장례를 8/4(화), 대동병원 장례식장에서 무사히 치렀습니다.
② 침례 - 장전부곡2소그룹 감철우 형제님이 8/2(주일), 침례 받았습니다

부산교회 광고

◈ 중고등부 온라인 특별집회 안내 
   ▷ 일시 : 8/9(오늘) 오후 3:00 ~ 5:30
   ▷ 장소 : 각 구역 집회소 및 가정
   ▷ 준비물 : 개요집, 필기구, T셔츠
   ▷ 참여방법 : 줌(zoom) 화상회의 앱에 접속하여 전체집회와  분반 모임에 참석함
   ※ 주의사항 : 공동구매한 T셔츠를 반드시 착용하고 참석해야 함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인 여러분,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나는 다시 여러분을 위하여 
해산하는 진통을 겪습니다.

금주의 추구

Lord's

8/9

Mon()

8/10

Tue()

8/11

Wed()

8/12

Thu()

8/13

Fri()

8/14

Sat()

8/15

34-36

37-38

39-41

42-45

46-49

50-52

53-58

고후 9

고후 10

고후 11

고후 12

고후 13

1

2

라이프스터디 추구 : 로마서 M55 ~ M56

금주의 소그룹 추구 : 고린도전서 4


인수통계(2020.7/27-8/2)

구역

20

목표

주일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청년

직장

기도

집회

소그룹

아침

부흥

복음

실행

가정

집회

침례

1 구역

196

117

6

4

22

11

49

64

117

4

30

6

2 구역

206

134

11

12

6

21

60

95

112

5

32

4

3 구역

170

118

9

8

11

12

34

69

104

3

5

 

4 구역

84

44

11

7

1

3

21

38

50

 

14

3

5 구역

156

99

5

11

1

11

36

72

86

 

5

 

6 구역

188

125

5

6

8

13

54

67

129

15

9

3

합계

1,000

637

47

48

49

71

254

405

598

27

95

16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