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잔잔한 시냇가
생명강가 2021-07-10 , 조회 (12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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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글/생명강가(2021.6.29)



오늘 낮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남부 지방까지 모내기는 다 끝나고

이젠 심겨진 모가 뿌리를 내린 터라

잠간 멈췄던 물대기가

논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이다.


초여름 더위도 식힐 겸

기분 좋게 쭉쭉 내리는 단비를 보니

정겹고 기분마저 편안해진다.

그런 기분 탓일까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책장을 뒤지며

비 오는 날, 모처럼 집 안에서 뒹굴며

책이라도 읽고 싶다.


나는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제 멋대로 흐트러진 책들을 정리하다

낯선 책 한 권을 발견하고

오후 한나절을 독서에 심취해 있었다.


때마침 아내도

그러한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던지

요즘 시장에 나가면 흔한

애호박, 감자, 부추 등을 사다가

얼마 전 손녀딸이 먹다 남긴

햄 조각까지 찾아서 잘게 썰어 넣고

바삭바삭하니 부침개를 부쳐 준다.


책 제목은

'데이비드 그레고리'라는 사람이 쓴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라는 책이었다.

내가 돈 주고 산 책도 아니고

누구에게 선물 받은 것 같지도 않은

낯선 책 한 권을 발견하고

다만 책 제목에 눈길이 끌려

이 작은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책장에서 약간 빛이 바랬을 뿐

거의 새 책과 다름없는 것이

혹시 예수님께서 나에게 선물한 것이 아닐까?

호기심에 고급스런 표지를 넘겨본 순간

속표지에 적힌 예쁜 펜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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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14

강은영 샘이

사랑하는 대옥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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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십년 전

강은영 선생님이 대옥이라는 사람에게 준 선물일 텐데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니

틀림없이 주워 온 책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기저기 다니며

가끔씩 버리는 가구나 책들을 잘 주워오기 때문이다.


책의 서두에는

하루 열두 시간 넘는 근무 시간으로

가족들의 원성은 커지고

자신의 꿈과 삶의 목적마저 잊은 채 살아가는

평범한 샐러리맨 닉,

어느 날 그는 각종 신용카드 청구서와 광고 전단지 사이에서

정체모를 한 통의 초대장을 발견한다.

초대장에는 반송 주소도 회신 요청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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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수와의 만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영광 레스토랑

6월 30일 수요일 저녁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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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아는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만찬에

만약 내가 그 초대장을 받았다면

과연 나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책 속의 주인공 닉처럼

동네 어느 예배당에서의 전도 행사나

짓궂은 직장 동료들의 저녁 술좌석 모임 정도로

치부해버리지는 않았을까?


한편 나는

책 제목이 주는 경이로운 설레임과는 달리

너무나 원칙과 현실에만 입각하여

인본주의적인 내용의 전개과정은

솔직히 약간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였던지

어느새 나는 책의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책 속의 주인공 닉과는 다른 시각에서

그 만남의 장면 장면마다 나 자신을

닉의 자리에 캡처해 넣고 있었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예수님께서

그분에게 항상 있었던 기적 같은 방문하심으로

나와 단독으로, 그것도 저녁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순간을 갖게 된다면

그분과 나는 반가워할까? 서먹하지는 않을까?

무슨 이야기부터 꺼낼까?


왜? 나는

처음 참석했던 교회 집회에서

신언할 때처럼 머릿속이 하얘지는 거지?

그동안 환경 속에서 체험한 바로는

그분의 품에 안겨 펑펑 울고 하소연해도 모자랄 텐데

이상하게 부끄러움을 동반한

아쉬움이 몰려오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물론 내가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주님께서 책망하시지는 않을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분이 더 잘 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 친히 십자가에 오르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예수님과의 만남을 앞두고

왜 내게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몰려오는 것일까?

내가 지금 느끼는 부끄러움과 아쉬움이

약혼자 즉 그분의 신부로서

처음 대하는 신랑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분께 매료되어

영원히 내 자신을 그분께 맡기고 싶고

그분과 헤어지기 싫은 아쉬움이었으면 좋겠다.


그분은 만유를 포함하시고 크고 놀라우시며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가지신 분인데

나는 얼마나 그분을 사랑하고 의지했던가?

나는 얼마나 그 주님을 믿었고

그분과 주관적인 사귐을 갖고 있었는가?


왜 나는 다만 착한 사람이 되어

주님께 아무런 누를 끼치지 않고

대부분의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하려고 했을까?

주님은 불가능이 없는 분이신데

매사에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 안에서 안식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한국복음서원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출판한

<하나님은 계시는가?>

라는 책을 읽었던 것과 비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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