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합니다. ...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을 향하여 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고후5:14-15)
'강권하다'에 대한 헬라어는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에서처럼
사방에서 압박하고, 한 끝으로 밀어부치며
강하게 제한하여, 하나의 노선과 목적을
향하도록 가두는 것을 의미한단다.
그 사랑의 강권함을 깨닫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오늘 우연히 그동안 궁금했던
'오징어 게임'을 시사해 주는
유튜브 동영상 한 편을 접하게 되었다.
오늘날 돈이 신이 되어버린 인간들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 가두고
모든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강권됨으로써
비열한 경쟁 사회에 몰두하는
허무한 인생을 풍자한 드라마였다.
미 골든글로브 시상식 유력 후보에 오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자기 자신만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상을
적나라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 반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인간의 삶을
조금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그분을 향하여 살도록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그분을 향하여 살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만 산다면
사는 주체가 우리라 할 수 없을 것이나
우리가 그분을 향하여 산다면
사는 주체가 우리가 되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가 단정하는 것은'이라는 말이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기에
나도 죽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살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향하여 살고
나 자신도 그 안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
그분을 향하여 살도록 강권한다.
생명이 무르익어 휴거될 준비가 된 사도들은
이렇게 주님을 향하여 살므로써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한 가지 열망만을 가지고 있었다(고후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