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5- 이기는 이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비결
7차집회개요
작은감자 2022-07-25 , 조회 (27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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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5- 이기는 이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비결

―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누리는 길을 취함


성경: 창 2:9, 계 2:7, 요 6:57, 63, 렘 15:16, 시 119:15, 겔 3:1-4


Ⅰ. 이기는 이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비결은 우리가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누리는 길을 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유일한 갈망은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시는 것이다. 오직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길을 취한 이들만이 그들의 생활과 일이 새 예루살렘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창 2:9, 계 2:7.


Ⅱ. 우리는 온갖 기도로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읊조림으로 영과 생명에 속한 주님의 말씀을 먹는 것을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그 영이신 그분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누림을 위한 영적 양식이신 주 예수님을 먹을 수 있다 ― 요 6:57, 63, 렘 15:16과 각주1, 엡 6:17-18, 시 119:15과 각주 1, 마 4:4, 시 119:103.


A. 우리는 영과 생명에 속한 주님의 말씀을 먹음으로써 주 예수님을 먹을 때, 그분으로 ‘말미암아(because of)’ 산다(요 6:57-63). 즉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서(by)’가 아니라, 우리에게 힘을 주는 요소이시자 공급을 주는 요인이 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그리스도를 산다(갈 2:20, 빌 1:19-21상).

B. 주 예수님의 말씀을 먹음으로 그분을 먹을 때, 우리는 합당한 영적 소화력을 가져야 한다 ― 겔 3:1-4, 렘 15:16, 계 10:9-10.

1. 우리에게 좋은 소화력이 있다면, 음식이 우리의 내적 존재의 각 부분 안으로 도달할 수 있는 통로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먹음으로써 소화하고, 소화함으로써 동화한다. 또한 동화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의 실질적인 자양분을 우리 존재 안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엡 3:8, 16-17상.

2. 소화 불량이란 영적인 음식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내적 부분들 안으로 도달하실 길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음식이 우리의 내적 부분들 안에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없을 때, 우리는 소화 불량에 걸릴 것이다 ―히 3:12, 15, 4:2.

3. 우리는 우리의 전 존재와 함께 우리의 모든 내적 부분들을 주님께 열어두어야 한다. 그럴 때 영적인 음식이 우리 안에서 통로를 갖게 될 것이다.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합당한 소화와 동화를 하게 될 것이고, 영적인 자양분이신 그리스도를 흡수할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우리의 조성 성분이 되실 것이다 ― 엡 3:16-17상, 골 3:4, 10-11.


Ⅲ. 우리는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 또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여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함으로써 그분을 먹을 수 있다 ― 마 24:45-47, 빌1:19-21상.


A. “나에게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먹을 음식이 있습니다. …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 요 4:32, 34.

B.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내가 완성하여,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 17:4)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비교 골 1:9-11).

C. 주님은 그분의 인간 생활에서 버터(가장 풍성한 은혜)와 꿀(가장 달콤한 사랑)을 드셨다. 이것들은 주님께 힘을 주어 항상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시게 했다― 사 7:14-15, 1901년판 미국 표준역 성경.

D.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안에 있는 실재’는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일생의 실지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그분의 일생에서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어 그분의 믿는 이들을 위한 모형을 세우셨다 ― 엡 4:20-21.

1. 예수님의 생활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삶이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생활 안에 계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셨다. 예수님은 부활안에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타고난 생명에 의해 그분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분(골3:4, 벧전 2:21)에 의해 그분의 본을 따라 그분께 배운다(마 11:29).

2. 주 예수님은 결코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셨고(요 5:19), 자신의 일을하지 않으셨으며(4:34, 17:4), 자신의 말을 하지 않으셨고(14:10, 24), 자신의 뜻을 행하지 않으셨으며(5:30),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다(7:18).

3.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라는 틀 안으로 넣어져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는 것이다. 내주하시는 영 곧 생명의 영의 법이신 그리스도 자신께서 그분의 생명의 모든 풍성을 가지고 우리 안에 그분 자신을 재생산하신다 ― 롬 8:2, 28-29.

E. 이사야서 43장 7절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이들을 / 내가 창조하고 지었으며 심지어 내 영광을 위해 만든 이들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봉사는 그분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이다 ― 고후 3:18, 롬9:23.

F. 고린도전서 6장 20절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시고 여러분을 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요일 4:13)께서 그분의 성전인 우리 몸(고전 6:19)을 점유하시고 적시시며 그분 자신을 우리의 몸을통해 표현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여러분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라고 말한다.


Ⅳ. 우리는 합당한 사람들을 접촉함으로써 그분을 먹을 수 있다 ― 레 11:1-3, 9, 13, 21.


A. 먹는 것은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을 접촉하고 그것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결국 우리의 내적 조성이 된다. 레위기 11장에서 모든 동물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상징하며, 먹는 것은 우리가 사람들을 접촉하는 것을 상징한다(행 10:9하-14, 27-29).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종류의 사람을 접촉할지를 주의해야 한다(레 11:46-47, 고전 15:33, 고후 6:14-18, 딤후2:22).

B. 굽이 갈라져 있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레 11:3, 비교 레 11:4-8, 26-28)은 분별력 있게 행동하며(빌 1:9-10)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숙고하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상징한다(시 119:15).

C.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수중 동물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활동하는 동시에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상징한다(지느러미는 물고기가 물속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돕고, 비늘은 물고기를 보호하고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가 소금에 절지 않도록 지켜 줌) ― 레 11:9.

D. 날 수 있는 날개가 있고 생명의 씨를 음식으로 먹는 새들은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세상을 초월한 생명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생명에 속한 것들을 그들의 생명 공급으로 삼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 레 11:13.

E. 날개가 있고 또 땅에서 뛸 수 있도록 그 발 뒤에 다리가 있는 곤충은 세상을 초월한 생명 안에서 살고 움직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그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 레 11:21-22.

Ⅴ. 우리는 하나라는 터 위에서 갖는 집회들 안에서 그분을 잔치로 누림으로써 그분을 먹을 수 있다.

A. 이스라엘 자손은 좋은 땅의 풍성한 소산을 두 가지 방식으로 누릴 수 있었다. 일반적이고도 개인적인 방식의 누림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사람과도 그것을 일반적인 몫으로 누리는 것이었다(신 12:15). 특별하고도 단체적인 방식의 누림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정해진 명절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유일한 장소에서 최상의 몫인 첫 열매와 첫 새끼를 누리는 것이었다(신 12:5-7, 17-18).

B. 마찬가지로 신약의 믿는 이들도 두 방면으로 그리스도를 누린다. 한 방면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일반적이며 개인적인 방식으로 누리는 것이고, 다른 한 방면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인 유일한 하나의 터 위에 있는 합당한 교회생활의 집회들 가운데에서 최상의 몫이신 그리스도를 특별하며 단체적인 방식으로 누리는 것이다.


Ⅵ.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생명나무이신 그분 자신을 사람에게 주어 사람이 누리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것과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문제라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의 관념이 바뀌어 이 두 중점을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누리는 생활을 하기가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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